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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Mar 19. 2018

오키나와 소확행

소소한 여행의 즐거움

여행을 하다 보면 소소한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런 기분 때문에 나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키나와 둘째 날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눈부시게 맑은 파란 하늘, 이보다 나를 더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밖에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는 직장인, 학생들을 호텔에서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키나와 하면 꼭 방문한다는 슈리성을 오를 때, 미친듯한 더위속에서 걷고 구경을 하였지만 만족스러운 장면을 마주해서 사진에 담았을 때나 시원한 커피 한잔이 목을 축여주며 순간 머리 끝이 찡하게 느껴질 때 지친 나를 힘나게 만들어주는 소소한 행복 같은 것들이다.

이 장면을 담았을 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여행기간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일정 중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 때문에 일정도 하루 줄여야 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적당한 구름 덕분에 파란 하늘은 더욱 예뻤고, 더운 날씨에 힘들게 오른 슈리성에서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보았을 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은 것도 여행이 내게 주는 소확행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행복은 귀국 후에 태풍이 도착해서 비행기 연착과 비바람이 몰아쳤다는 것이었다. 하루 차이로 피했다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뭔가 짜릿한 기분을 받았다. 마치 내 앞에서 벌칙 순번이 끊긴 것 같은 느낌처럼 말이다.



다른 호텔로 이동을 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린 라멘 맛집이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여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옆에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주는 집이 있어서 기본 장비들만 대여하고, 바로 앞에 있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다. 일정 없이 여행을 하다 보니 느낄 수 있는 일탈이라고나 할까. 원래 나의 여행 스타일상 이런 일들은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다음 일정에 영향을 미치니깐.


생각보다 별로.


시원한 바닷속에서 즐기는 스노클링은 상쾌한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발 밑으로 지나가는 바다뱀을 보면서, 허접한 수영실력으로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한심하다는 듯 유유히 지나가는 녀석을 보며 사진 찍겠다고 급하게 카메라를 꺼냈고, 또 그 장면을 찍은 것도 기분이 좋았다. 



고래 상어를 보기 위해 들린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어릴 때 아쿠아리움을 갔을 때의 동심을 오랜만에 느껴보고 한참을 구경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큰 고래상어를 바라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나이를 망각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수족관보다 더 기분 좋게 나를 만들어주는 것은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갔을 때 만난 비세자키 해변이었다. 좁은 길을 통과해서 도착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투명한 바다가 어찌나 이쁘던지. 스노클링 장비를 못 챙겨 온 것이 정말 한이 되었다. 이 곳 때문에 오키나와를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발 밑에서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소심하게 다리까지만 넣고 그냥 기분이라도 내야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곳을 이제 알았다는 것과 비록 몸으로 느끼진 못했지만 눈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과,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음번에 온다면 무조건 호텔은 이 근처로 잡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호텔로 이동했다. 짐을 맡기고 일몰을 보러 가는 길에 고양이들이 요상한 포즈로 잠을 자고 있었다. 다가가도 피하지 않는 녀석들과 놀면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일몰을 한참 바라봤다. 일정 없이 여행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느꼈다.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누군가 나눠주는 고깃집 전단지를 받았었다. 처음에 무시했지만, 근처에 갈만한 식당이 없어서 결국 여기로 왔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식당이었다. 자리도 많지 않아서 마당에 설치된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이미 옆 테이블에는 일본인 남자 둘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신경 안 쓰고, 추천 메뉴를 주문하고 먹었는데 태어나서 먹었던 소고기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감탄을 하면서 연신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 모습을 보던 옆에 일본인이 말을 걸어왔다. 서로의 짧은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도쿄의 어느 한 호텔에서 일하는데 휴가차 3개월을 오키나와에서 보내려고 왔다고 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들을 하고, 오키나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주로 어떤 것이 맛있고 구경할게 뭐 있는지였지만, 지루하지 않게 즐거운 식사를 하기에는 충분히 유쾌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 고기가 너무 맛있다고 얘기하니, 바로 직원에게 물어보면서 어느 지역의 와규라는 것도 말해주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지역이었기에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추임새도 넣어주었다. 서로의 식사가 끝날 때쯤 다 같이 사진도 찍으며 이 시간을 추억하기로 했다. 조만간 한국에 여행을 오겠다는 남자는 (이름을 들었지만 금세 까먹었다. ) 종이에 이메일 주소와 페이스북 주소 적어주며 연락을 하겠다고 했지만, 어디에서인지 그 종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연락을 하지 못했다. 


난 부끄러우니깐.



무 계획 속에서 채워나가는 하루가 주는 즐거움이 좋았다. 그냥 하는 여행.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여행이 주는 매력도 알게 되었다. 그냥 소소하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행복들이 있어서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 들었다.


하루를 완성해야만 하는 적성이 풀리는 나의 여행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60% 정도.? 아직까진 그래도 하루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예전같이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 받게 되었다. 


여행이란 이름 아래 주어지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지금도 지도를 보면서 다음 여행지를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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