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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Mar 18. 2018

오키나와 여행의 출발점

나만의 맛집이 생기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면, 가끔 여행이 귀찮을 때가 있다. 무슨 배부른 소리 같냐고 하겠지만, 나의 성격 상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광적으로 준비를 한다. 호텔부터 하루의 일정, 맛집 등을 지켜지지도 않은 방학 생활 계획표 짜듯이 짠다. 이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준비한다고 생각만 해도 벌써 여행이 질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공항 시간 맞춰서 가는 것과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헤매면서 겨우 주차하고, 출국 수속을 위해서 시간 기다리는 것, 특히 장시간 비행과 환승 경유지에서 보내는 무의미한 시간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압박으로 다가온다. 것도 여행을 떠나는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해외의 수많은 도시들과 출발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들이 모두 기분 좋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한 번쯤은 이런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여행을 하고 싶었다. 큰 계획 없이, 쉬고 먹고 놀면서 떠날 곳을 찾다 보니 오키나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던 오키나와였는데, 유달리 이번에는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 가까워서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조건이 나에게 더더욱 와 닿았다.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한 번쯤은 그냥 부담 없이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여행을 위한 렌터카도 작은 경차로 하고, 호텔도 적당한 가격에 위치 좋은 곳으로 예약을 하고 그냥 무작정 떠났다. 맛집 몇 개와 유명한 여행 포인트들만 검색해놓고 시간이 되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 불안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설렘으로 다가왔다.


오키나와에 도착해서, 예약한 렌터카를 받고 처음 하는 운전은 많이 낯설었다. 우리나라와 방향이 다르고, 핸들 위치도 좌핸들에서 우핸들로 바뀌다 보니 깜빡이를 넣지 않고 와이퍼를 작동시키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적응을 했다. 가끔 실수를 하더라도, 뒤에서 절대 빵빵거리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들을 수 있는 욕은 다 들었을 테지만..



오키나와를 여행하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지점이 대부분 국제거리이다. 서울로 치면 명동이라고 할까, 호텔들도 많이 위치해있고 쇼핑할 수 있는 곳들도 많이 모여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첫날 호텔은 멀리 까지 가기 힘들 것 같아서 나도 국제거리에 숙소를 잡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오니 이미 어두워진 저녁시간이었다. 마침 배도 많이 고파서 호텔 밑에 있는 스시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식사 후에 걸었던 국제거리는 기대와 많이 달랐다. 주변에 즐비한 기념품 가게들과 특산물 자색고구마 파이 상점들이 전부였다. 물론, 여러 식당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큰 감흥을 주진 않았다. 국제거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고 해야 할까. 오키나와를 다음에 다시 온다면 국제거리는 바로 패스할 것 같다.



더운 날씨에 덕분에 시원한 커피 한잔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국제거리를 걷다가, 이자카야에서 여행 첫날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미리 검색해서 알아왔는데, 이미 만석에 대기만 30분 넘게 걸린다고 했다. 잠시 고민은 되었지만, 그냥 다른 곳을 가보기로 했다.

유명해서 찾아왔지만, 결국 실패했다.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갔지만, 전부 만석이어서 술 한잔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간 한적해 보이는 작은 선술집이 들어왔다. 관광객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본어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그냥 무작정 들어갔다. 우렁찬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점원들의 인사를 들으며 일단 자리에 앉고 봤다. 그리고 메뉴를 달라고 했지만, 메뉴가 따로 없으며 주방에 적힌 일본어들을 가리키며 이것이 메뉴라고 했다.


계속 웃으면서, 나를 응대해줬던 점원. 덕분에 기분 좋게 먹고 나왔다.


읽을 수가 없었다. 영어 메뉴도 없다고 했다.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점원의 모습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비웃는 것이 아닌 그냥 즐거워서 웃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읽을 수 없는 메뉴들을 쳐다봐도 의미가 없어서 추천 메뉴를 주문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조금씩 접시에 담아주었다. 오코노미야끼가 먹고 싶어서 주문을 했지만 없다고 한다. 대신 비슷한 것이 있다는 말에 오케이 하며 주문을 했는데 우리나라 부추전과 비슷한 것이 나왔다. 사케를 마시고 싶었지만, 흥겨워진 기분 때문에 시원한 하이볼을 주문해서 음식들과 함께 즐겼다.



오키나와 여행의 출발점인 국제거리에 다소 실망했지만, 내가 먹었던 메뉴가 아직까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만의 맛집이 생겼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다음에 오키나와를 방문한다면 추억 삼아서 올만한 곳이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하며, 평소의 여행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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