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Snap Mar 08. 2018

파리 #9

파리, 안녕!

여행의 마지막에 시리듯 다가오는 아쉬움은 조금 더 부지런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피곤하더라도 그때 조금 더 볼걸, 택시가 아닌 버스를 이용해볼 걸 등 수많은 후회들이 과거의 나를 질책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떠나기 전에는 괜히 아쉬워서 조금 더 부지런하게 돌아다닌다. 마치 작별 인사하듯.


오늘은 궁금했던 호텔 뒤편을 가보기로 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두고 엘리제 궁전까지 무작정 걸으면서 천천히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냥 구경하고 싶었다. 회색빛 파리는 조용했다. 관광지와 먼 곳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가끔 골목 사이로 열린 작은 장에만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끔 상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봉주르'란 인사를 나누면서, 마치 이 곳에 오랫동안 거주한 듯한 여유로움도 뽐냈다.



아침부터 나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커피였다. 창밖이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향을 맡으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때마침 스타벅스가  보여서 기쁜 마음에 커피 한잔과 함께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이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가끔 지나가는 올드카와 슈퍼카들은 나의 눈을 호강하게 만들었다.



생각 없이, 목적지가 없이 그냥 걷는 것이 평소 일상생활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꽤 좋았다. 서두를 것 없이 발길 닿는 데로, 눈길 가는 데로 보고 즐기다가 엘리제 궁전에 도착했는데 삼엄한 경비들 때문에 괜히 오해받을까 봐 오랜 시간 바라보지는 못하고 다시 근처를 둘러 걸어갔다.



오랑주리 미술관 앞에서 봤던 관람차부터 오벨리스크가 있는 콩코드 광장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해주는 크레페 맛집으로 갔다. 와이프가 파리를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더 먹고 싶다고 한 것이 크레페와 시트르였기 때문이다. 매번 읽기 어려운 메뉴판에서 영어단어를 찾아 음식을 주문하고, 한입 먹을 때마다 달달함과 느끼함이 공존해오는 이 맛을 얼큰한 짬뽕 한 그릇으로 달래고 싶은 나의 속마음을 숨긴 채, 파리의 마지막 맛이라는 생각으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든든해진 배가 여행의 마지막을 말해주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밖에 없어서 썰렁한 콩코드 광장부터 호텔이 있는 개선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우버택시를 부르던지, 지하철을 탔을 법한 거리였지만 아쉬움이 주는 마지막 미련 때문인지 발걸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 여행 중인 사람들, 일상생활 중인 사람들이 섞인 샹젤리제 거리 속에서 그동안 지나가면서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며 조금씩 파리를 보내줘야 했다. 마지막 기념품 샵에서 집에 걸어둘 만한 그림을 한 개 샀다. 한 동안 이 그림을 바라보며 파리 여행을 생각하겠지. 냉장고에 붙어있는 수많은 자석들처럼.



호텔 앞에서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중국인 관광객을 도와주기 위해 몇 차례 영어로 중국 대사관 가는 길을 알려주고, 버스 번호를 알려주었지만, 버스 번호 조차 알아듣지 못하던 그 중국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잘 해결되었길 바라며,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 캐리어를 이끌고 파리 공항으로 향했다. 파리의 첫인상은 회색빛이었으며, 마지막 인상도 회색빛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파리는 회색이란 색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에 온다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