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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Mar 04. 2018

파리 #8

파리에서 맞이하는 새해.

전날 밤 샹젤리제 거리의 어마한 인파 속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함으로써 이번 파리 여행의 목적 달성을 하였다. 더 이상 파리에서 서두를 필요도 없었고, 파리 그 자체를 그냥 즐기면 되었다. 새해라는 설렘이 가득한 단어와 다르게 파리의 아침은 어제와 같은 흐림이었다.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오랜만에 점심으로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처음 여행 올 때 계획은 1일 1 미슐랭이 목표였으나, 식사 한번 하는데 3시간이란 아까운 시간이 소비되는 파리에서 여행의 시간이 아까워 나머지 레스토랑은 다 취소를 했었으나 새해맞이 겸 맛있는 한 끼를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디너보다, 시간 절약할 수 있는 런치로 말이다.


이미 비가 한번 지나간 파리 시내를 걷다가, 유명한 카페로 들어가서 오랜만에 모닝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얼마 남지 않은 파리 여행을 파리지앵처럼 지내기로 했다. 크기에 비해 쉽게 주문하기 어려운 가격 때문에 한 번쯤 고민을 하게 만든 디저트와 커피를 주문하고, 파리 생활에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여유를 가졌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원래 오늘의 가장 큰 목표는, 아침에 시작되는 새해 퍼레이드를 보는 것이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진행하는데, 폭우가 오는 날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봐도 시작할만한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차량 통제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 멀리까지 계속 쳐다보며 퍼레이드를 하는지 보기 위해 한참을 탐색했지만 이미 내 바지단을 다 적셔버린 비 때문에 퍼레이드는 취소되었다고 생각하며, 혹시라도 문이 연 곳이 있는지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새해에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 그냥 눈에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우버택시로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잡히지 않는 택시 때문에 구글 지도에서 친절히 20분만 걸으면 도착한다는 정보 덕분에 비를 최대한 피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나름 비 오는 파리 시내를 느껴본다는 생각으로.



이런 판단이 틀렸다고 느낀 것은 발걸음을 뗀 지 5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혼자 쓰기도 작은 우산을 2명이서 쓰면서 서로 반은 이미 다 젖어버린 상태로 걷고 있었다. 낭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가끔 불어오는 강풍에 우산은 뒤집어지며, 물이 묻어 뿌옇게 보이는 핸드폰의 지도를 보면서 그냥 걸을 뿐이었다. 


곧 센강이 나왔지만, 이미 흙탕물이 되어버려서 범람한 하천처럼 보일 뿐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오늘의 목적지인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반은 젖은 상태여서 혹시나 입구부터 거절 장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뷰라는 말에 예약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실내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래도 보이는 에펠탑이 기분 좋게 해주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회색빛 파리가 아쉬웠지만, 잠깐 동안 파란 하늘을 허락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으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첫날 저녁 디너의 3시간 악몽 때문에 점심으로 예약했지만, 점심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일부러 코스가 아닌 단품의 메뉴로 주문했지만 음식 간의 텀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애피타이저가 나오고, 메인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음식 맛은 정말 좋았다. 미슐랭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디저트까지 마무리를 지었을 때 이미 식사를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난 뒤였다. 와이프와 나는 밥 먹다가 하루가 다 지나간다는 얘기를 하며, 다음부터는 그냥 간단간단하게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에펠탑 뷰가 보이는 레스토랑 'Les  Ombres (레종브레)'


점심 식사로 많은 시간을 소비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에펠탑으로 걸어갔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밑에서 보기 위해서였는데, 다시 한번 에펠탑에 올라가 볼지 말지 고민하는 자리에서 결국 안 오르기로 결정했다. 점심시간이 뺏어간 시간이 많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외로 좋은 곳을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못 봐서 아쉬워했던 와이프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아직 여기에는 마켓이 열려있었다. 새해였지만 다행히 작은 규모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 신이 난 발걸음으로 구경을 하면서 따뜻한 뱅쇼도 한잔 마셨다. 몽마르뜨 언덕 주변에서 마셨던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었다. 


에펠탑 밑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뱅쇼로 몸을 녹이고, 생제르맹 거리로 가기로 했다. 파리에 유명한 거리들이 있는데 이 곳도 그런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비포 선셋>에서 남자 주인공이 서점에서 자신의 책에 사인회를 하면서, 여자 주인공을 만났던 곳이 이 거리에 있는 서점이다. 파리에 오면 꼭 가봐야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 곳을 놓쳤다는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것도 한 블록만 옆으로 지나가면 되었는데 그걸 바로 앞에서 놓쳐버린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 설레고,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집중을 하면서 보는 유일한 영화가 <비포 시리즈>였다. 그래서, 이 서점을 꼭 와보고 싶었는데 그 순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새까맣게 까먹어버린 것이었다.


유명한 카페였지만, 자리가 없어서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에펠탑 아래에서 마신 대용량의 뱅쇼 때문인지, 급하게 화장실을 찾던 중 겨우 어느 한 카페에서 해결하고 나오면서 서점에 대한 것 기억도 다 비우고 나온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오늘 문을 안 연 곳이 대부분이었던 생제르맹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파리 시내 자체만을 느끼는 여행을 즐겼다. 비가 와서 조명이 반사되는 도로들과 읽을 수 없는 간판들, 평소의 일상을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든 모습들이 나에게는 좋은 피사체들이 되어 사진을 찍는 재미가 넘치는 것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걷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좋은 여행이 되는 이 곳이 너무 좋았다.


걷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생제르맹 거리


오늘 저녁은 와이프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은 날이다. 처음으로 파리 가정집에 방문을 하는 날이라서 나름 기대도 되었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한 교토 숙소 외에 현지인이 사는 집에 들어가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밖에서 보면 예쁘기만 했던 건물들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과연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에 여러모로 궁금했다.


호텔에서 간단히 재정비를 하고, 와이프 친구 집으로 갔는데 한국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아파트가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창밖으로 보이는 몽마르뜨 언덕과, 저 멀리 등대처럼 빛나는 에펠탑이 전망으로 보이는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올리브와 샴페인으로 간단히 스타터를 하고, 전통 오리 요리와 또 다른 와인,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디저트까지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다. 


오늘이 파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오전을 잠깐 즐긴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파리 여행도 이제 끝이 보인다. 항상 여행의 마지막 밤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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