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구루피플스 이창준 대표
코로나 19의 광풍이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사람들을 집단적인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적 거리’는 새삼 역설적으로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동물임을 생경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HRD는 그야말로 이 광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만 비로소 성립하는 전통적인 교실은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위험에 처했고, 실제 모든 학교는 기약 없이 문을 닫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상수로 안고 살아야는 운명에 처했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폭풍은 결국 지나갈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은 생존할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많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HRD는 코로나 19의 광풍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는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HRD’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동안의 관행을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하는 준엄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교육하는가?’, ‘지금, 이런 교육의 관행들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코로나로 상징되는 불확실성은 지금 미래의 HRD를 향해 변혁과 전복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 HRD 분야는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첫째, 대단위 인원으로 수행해오던 집합교육은 그 존재여부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함께 모여 학습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 의례적이고, 목적도 없고,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교육을 과연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스스로 HRD가 존재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처참할 것이다. 이 질문은 전염병이 갖고 오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무분별한 HRD관행의 실효성을 묻는 것이다.
둘째, 반작용으로, 온라인 방식의 교육훈련들은 그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하게 될 것이다.
온라인 교육은 오프라인 교육의 대체재가 아니다. 스스로 어떻게 진화, 발전되어야 하는지, 또 오프라인 교육과는 어떻게 차별적으로 병존해야 하는지, 그 시너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동시에 공학적인 테크놀로지들은 새롭게 개발됨과 동시에 그 가능성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과거 E-Learning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은 도리어 그 존재이유를 심각히 의심받을 것이다. E-Learning은 오프라인 교육의 보완재로, 혹은 전혀 다른 혁신적인 길을 모색하지 못한다면, 천덕꾸러기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다양한 학습매체와 도구들 역시 새롭게 그 가능성을 검증받을 것이다.
면대면의 장면을 떠나 자기주도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학습키트의 개발, 학습소스의 발굴, 또 이를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아카이브들은 학습의 주요 자원으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학습은 특정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전천후로 이루어질 것이며, 학습자들은 교실을 떠난 다양한 학습방법들을 더욱 요구할 것이다.
넷째,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HRDer의 역할, 강사의 역할은 일대 전환을 맞이할 것이다.
단순히 컨텐츠를 확보하고 전달하는 역할이 무의미해지고, 코치, 상담자, 기획자, 다양한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소개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그 와중에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내 멘토, 외부 전문가들은 도리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다섯째, 좋은 학습리더와 함께 하는 소그룹(5~10명)의 교육훈련,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이용한 1:1 코칭은 그 유효성이 점차 확장될 것이다. HRDer들은 좋은 멤버십을 가진 학습공동체(learning community)를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일을 보다 핵심적인 임무로 갖게 될 것이다. 소그룹과 1:1 학습은 교감과 연대감을 높이고, 손쉽게 심층정보를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지적,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는 점에서 더욱 각광받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차별적인 교실학습이 아니라 성숙한 개인들의 질적 상호작용임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학습콘텐츠 측면에서 보면, 불확실성이 상수화되면서 불확실성 자체를 다루는 역량, 즉 복잡성 (complexity) 스킬이 중요해질 것이다.혼돈과 불확실성을 들여다보는 렌즈,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해결력, 위기와 혼돈을 다루는 리더십, 기민함, 유연성, 탄력성, 그리고 목적의식 등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대안으로써 보다 긴요한 학습주제로 부각될 것이다.
HRD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섣불리 어떤 기술과 해법에 현혹되어 휘둘린다면 오히려 다시 길을 잃을 것이다. 다양한 전략과 기술을 통합하고 불확실성 자체를 뚫고 가려면, 언제나 그렇듯 이 혼돈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해야 한다. 먼저 경쟁과 승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온전한 조직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연대감, 일체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을 향한 ‘긍휼감’, ‘자비심’(compassion)이 발현함으로써 사람들 속에 숨겨진 고독과 상처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공동체를 지탱하고, 그 기반으로 혁신적 실험이 일어나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미래 HRDer의 최고 덕목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유포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 질문(question)을 만들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조적으로 정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바보같은 짓을 멈춰야 한다. 메토도스의 안정되고 예측가능한 시대는 정답이 존재했지만, 답이 없는 아포리아의 시대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질문으로 교실을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나아가는 발원지가 되게 해야 한다.
일곱째,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할 때 정작 중요한 것은 ‘돛’이 아니라 ‘닻’이다.
돛은 외부세계를 향한 성장과 전진을 의미하지만, 닻은 안으로 뿌리를 내려 근원을 혁신하게 하는 힘이다. 거대한 풍랑 속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은 도달해야하는 정박지, 즉 목적(purpose)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목적(사명)이 선명할수록 혼돈을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한 용기, 혼돈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여유와 탄력을 얻는다.
우리에게 몰아닥친 코로나 광풍은 예측가능성과 질서로 대변되는 뉴턴의 세계가 일찍이 끝났음을 다시 재현시켜주는 사건이다. 혼돈과 불확실성은 위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움츠러들 것이지만, 누군가는 미지의 대지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HRD가 지금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출처 : 이창준 – 구루피플스 ㈜아그막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