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늘 인형 뜨기 문어? 주꾸미?
인형의 눈은 단추가 완성한다.
어릴 적에 엄마는 수예점을 운영했었다.
구례현상점이 있는 곳에서 20미터쯤 떨어진 곳, 3평쯤 되는 가게에서 밤늦게까지 뜨개질을 배우러 또 털실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
한쪽벽면에는 털실이 가득 차 있었고 그 털실들이 부족해지는 어떤 날은 엄마를 따라 실을 사러 가기도 했었다. 광주로 순천으로 그렇게 따라다닌 적도 있었다. 엄마가 털실로 만들었던 것은 대부분이 옷이었다.
실용적이고 쓸모 있는 하루를 보내게 해주는, 누군가의 단조로운 일상에 화려한 취미생활과 동시에 결과물은 패션니스트로 완성되었다. 춥디 추운 하루를 녹여주는 따스한 옷. 엄마가 팔던 것은 단순한 뜨개질 기술이 아니었다.
여자의 미덕은 바지런하고 조신함이라는 암묵적 메시지 속에 뜨개질을 배우고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나름의 사교문화였고 또 잠시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시장이기에 누구든 찾아올 수 있었고 시장이기에 쉽게 떠날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일부는 시장의 기억을 갖고 있다.
고지식한 공무원이었던 아빠는 시장에서 밤늦게 노는 나의 모습이 싫어서 가끔 화를 내시곤 했지만 시장을 걸어서 움직이는 날에는 그때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의 아들정도 나이였던 내가 시장에서 밤늦게 아이들과 뛰어놀며 남자아이 여자아이 상관없이 병뚜껑으로 딱지를 만들어 딱지를 치고 놀았고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했었다.
시장의 낮은 어른들이 지배했지만 시장의 밤은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많이 모여들수록 아이들은 늦게까지 놀게 되었고 아빠의 걱정과 단호한 결정은 곧 아이들의 세상이 조용해졌음을 의미했다.
시장에서 어린 시절 추억은 쓸쓸함이 되었다. 시장이 작아졌고 예전 건물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시장입구에 커다란 주차장이 생기고 시장에서 주거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없고 예전처럼 복작거리지도 않는다.
세상은 변하였다.
시장보다는 마트 배달과 택배를 이용하며 걷는 이보다는 차를 통해 움직인다.
수예점을 운영하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아졌다.
엄마는 대바늘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지만 연어는 코바늘로 소품을 만든다. 그것도 쓸모 없을 것 같은 인형과 장식품을 만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우와, 이런 것도 만들어요?"
"너무 귀엽다~"
코바늘 문어 인형은 해마다 몇 개씩 만든다. 왜 만드는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들고 나면 용왕님을 만나고 온 기분이랄까? 이상하게 상쾌해진다. 동그란 머리에 꼬불꼬불한 여덟 개의 다리. 눈은 꼭 단추로 완성한다. 그것도 짝이 맞지 않거나 단순하지 않은 그런 단추들로 완성해야 한다.
왜? 그냥 그게 예뻐서.
약간 삐뚜름한 게 나의 마음인가 보다.
반듯한 것도 좋지만 살짝 선을 벗어나 삐뚜름한 게 좋다.
반항하는 마음은 절대 아니다. 이 나이에 반항할게 무엇 있다고. 이제는 이 구역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고 다닌다고 해도 누군가 머라 하지 않을 테다.
아마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깐.
나에겐 뮤즈가 있다. 시시콜콜 똥 싼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친구, 그녀는 나의 뮤즈다.
가끔은 전화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친구와는 몇 년을 시간만 나면 몇 시간씩 통화하고 또 이야기한다.
그런 그녀는 나의 뮤즈다. 이상하게도 꼬여있던 퀴즈 같은 일들도 그 친구와 이야기하면 해결이 되고 그 친구의 문제점도 이야기하는 순간 해결된다.
서로에게 독인지 긍정인지 잘 모르지만 우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잘 통한다.
오늘의 관심사는 코바늘 문어인형.
친구의 고민은 인형 눈알이다. 비싼 인형 만들기 전용 눈알을 사겠다고 한다. 안된다고 말해주었다.
난 늘 그렇듯, 비싼 눈알을 사는데 고민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인형 눈은 짝이 안 맞는 단추면 돼."
친구와 나는 예쁜 단추가 얼마나 비싼지, 재료비보다 단추가 더 비싼 것에 놀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 시간이 넘는 전화 수다는 전화가 열받고 남편이 열받겠지만 우리는 이어폰이 있다. 짝이 안 맞는 남는 단추, 언제 사놨는지 기억나지 않는 우드 단추. 알록달록 꽃그림과 하트 단추.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유리알 같은 눈알을 달 필요는 없다.
어차피 반듯반듯한 인형도 아니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완성되는 느낌이기에 다시 못 구하는 단추로 눈을 완성시켜도 된다. 그래서 나의 인형들은 대부분 특별한 단추 눈을 가지고 있다.
반짝이는 유리알 눈동자가 아니어도 알록달록 단추눈을 달고 있어도 문어인형의 표정은 이미 다 제각각이다.
주꾸미처럼 보이지만 문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인형들의 표정은 단추눈으로 각자의 개성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