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필기구와 다이어리

설렘을 가진 선물이 행운을 가져온다.

by 연어사리

새해가 되었지만 명절은 아직 오지 않았고 2023년 1월 2일 새해의 첫 번째 일하는 월요일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다이어리를 꺼냈다. 작년에 만들어둔 야심 찬 구례현상점의 무지 다이어리 하나씩 새로운 것을 채우려다가 이번 다이어리는 책을 읽고 남는 용도로만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작년 내내 사용했던 국내 브랜드의 삼색 볼펜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볼펜의 잉크는 남아 있었지만 2022년을 함께한 볼펜은 마음의 수명을 다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틀, 삼일... 일주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볼펜이 필요하다. 기억을 더듬더듬 어딘가에 새로운 볼펜이 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거린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눈동자 굴리는 소리처럼 저 멀리 기억 어딘가에서 생각이 났다. 구례현상점에 판매를 겸한 선물용 펜이 몇 개 남아서 나를 기다린다. 생각만 하다가 실행에 옮겼지만 볼펜을 찾으러 갔다가 다른 것만 하고 출근을 했다.

1월의 첫 번째 월요일은 새 다이어리에 새로운 볼펜을 꾹꾹 눌러 표시를 하고 싶었다. 첫 장은 흔한 플러스펜으로 써버렸다.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과거의 미적지근함을 새해부터 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볼펜으로 눌러 표시하지 못함은 내일에 할 수도 있고 일주일 뒤에 할 수도 있다. 설마 일주일 뒤에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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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늘은 꼭 나를 위한 새 볼펜으로 흔적을 남기자. 나를 위한 선물. 그런 작은 바람이었다. 월요일보다 화요일이 더 피곤하다. 월요병이 대부분 있다고 하지만 내겐 월요일은 설렘이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화요일을 늘 말썽이다. 화병을 부르는 것처럼 그런 날인 것 같다.

새 볼펜만 챙기면 된다. 오늘은 꼭 새볼 펜.

구례현상점 문을 닫고 출근을 했다.


톡이 왔다.

"구례현상점 방문했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멀티유니버스인가.

"문이 열려 있어요."

독서모임의 멋쟁이 선생님께서 친절한 톡을 보내주셨다.

아마도 새 볼펜만 챙기면 된다는 한 가지 마음이 문단속을 안 했나 보다. 하긴 문단속 안 한 게 처음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신기하다. 때때로 주변 상인분들의 눈바디 CCTV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허술한 문단속과 문단속을 해도 허술한 가게가 안전했을 테다.

구례현상점에는 상품이 되기 전 재료와 책들이 가득하다.

요즘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런 것들 물건을 보아도 이게 무엇인지 완성품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그러니 문을 열어두든 닫아두든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톡이 또 왔다.

"선물 있어요."

독서모임에선 끝나지 않는 대화가 오가지만 오늘처럼 많은 톡을 하긴 처음이다. 멋쟁이 선생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손이 부끄럽게도 새해 선물을 챙겨주셨다.

확인해보니 놀라웠다. 차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보이차는 보이차를 끌어당기는 것일까.


차를 마시기로 결정한 뒤, 처음은 백화점에서 팔던 잎으로 된 홍차였다. 홍차가 사치같이 느껴져 오랫동안 멈췄다가 녹차로 마음을 돌린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보성에서 만들어진 유기농 녹차. 생각과 많이 다른 가격이었다. 오히려 너무도 합리적이라 놀라웠다. 유기농이니 가격도 프리미엄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우매한 오해가 바보스러웠다. 녹차를 마시기 시작하고 건강과 생각도 합리적으로 변했다. 녹차를 2년쯤 마시다가 보이차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지인이 알려준 보이차의 시작은 부담이었다.


무심한 생각은 행운을 불러올 때가 있다.

3년 전, 중국인 동료는 친절에 감사하며 보이차를 선물했다. 첫 보이차는 그렇게 행운이 되어 다가왔다. 밥상에서 처음 즐기게 된 첫 보이차, 중국인 친구의 마음이었다. 중국인 친구가 보여준 마음은 퇴사와 함께 멀어진 것 같았지만 보이차 덕분에 늘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보이차의 덩어리가 귤보다 작아졌을 때쯤, 보이차를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녹차만 마실까.


닭이 알을 낳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물이 선물을 낳을 수 있는 것일까?

두 번째 보이차는 정말 우연히도 아는 이모로부터 도착했다. 첫 번째와 좀 다른 깔끔한 맛이지만 매력적인 보이차. 사실 정확한 차이는 모른다. 향과 맛이 다르다는 것.

중국어를 제대로 보지 않아 어떤 곳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차인지 잘 모른다. 그저 보이차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세 번째 보이차도 굴러들어 왔다. 예상치 못한 설렘과 감사함이다.


이 모든 것은 글을 쓰기 위한 볼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볼펜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 설렘은 실수를 가져왔고 실수 덕분에 마음을 가진 보이차를 선물 받았다. 두 번이면 우연이지만 세 번이면 행운인 건가.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부적 같은 행운.


오래전, 현명한 노부인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너는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의 길을 찾을 거야."

거짓말 같은 노부인의 덕담이 이젠 진실이 되고 미래가 되었다. 글을 읽고 쓰는 이런 날들이 참 좋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우울한 어느 날 현명한 노부인의 덕담을 들으러 가는 길이 무섭지가 않고 설레기 시작했었다. 그 덕담은 막연하고 슬퍼서 한참을 펑펑 울다가 오던 날도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져 있을 때조차 책을 가까이하셨던 노부인은 이제 만날 수 없다.


고마움과 행복, 설렘, 감사, 즐거움 등등 많은 것들이 행운이 된다.

글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시작했던 작은 실수는 마음의 선물을 만나게 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씁니다.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응원도 많이 받게 됩니다.

어떻게 다 보답할 수 있을지, 선물은 측정되지 않는 커다란 무게가 있습니다. 그 무게가 너무도 포근해서 받다 보면 주고 싶고 주다 보면 또 선물로 돌아옵니다.

응원과 조언과 관심을 보여주는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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