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에 잡히는 복주머니
단순히 감기일까?
날이 좋아서 햇볕을 느끼며 좀 걸었다. 차 안에서 맞이한 따스한 영상의 온도와 걸으며 맞은 차가운 바람은 햇볕과 별개로 겨울이라는 계절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두 발로 직접 걸어본 것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구례에 살면서 바빠서, 추워서, 더워서 등등 여러 이유로 걷는 날이 생각보다 적다.
시간으로 기록해 보면 하루에 20분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일하면서 업무상 움직이는 것, 그것이 걷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업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 역시 걷는 거라 말하기는 어렵다.
온전히 필요한 물건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목적지를 향해 20분 이상 걷는 것 그것이 진정 걷는 것 아닐까.
겨울바람 안에는 칼이 들어 있는 것일까 봄의 시작이 들어 있을까.
다가오는 봄에는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예전 같으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먼저 연락하고 먼저 비전과 계획을 제시하고 대화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내가 여기에 살고 있음을, 도시에서 구례로 돌아왔음을 알리고 있다.
호기 넘치게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집에서 목적지까지 5분도 되지 않는 거리, 영상의 기온인데 추워봐야 얼마나 춥겠어. 생각보다 많이 추웠다. 손도 시리고 볼도 차갑다.
호기 넘치게 여유롭게 걷다가 종종걸음으로 달리듯 걸었다.
할 일도 많은데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의 구례현상점에 가지 않았다.
어젯밤 오랜만에 아주 긴, 멍을 때렸다. 기나긴 버퍼링처럼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져오는 쉬어가는 휴식처럼 그렇게 아주 긴 멍을 떄렸다. 차가운 바람은 핑계였고 겨울의 바람은 차가운 것이 당여 하니 그냥 피곤했나 보다. 밤잠을 설쳤고 오랜만에 두 발로 걸었다. 원초적인 피로가 몰려온다.
타이레놀 한 알과 낮잠은 달콤했다.
오후 약속을 잊고 잠들 만큼 달콤하고 개운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과 건조한 히터 사이에 커피 냄새.
약속장소에서 만난 반가움은 서로의 안부와 공통된 주제를 이야기한다. 책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목적이 명확해지고 계획이 확실해질수록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휴식만큼 좋은 것은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만남이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창작열.
감기로 인한 열기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 전체가 노란 미세먼지로 가득 차 있단다.
지난해 말부터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 토끼와 따스한 감촉.
2023, 올해 구례현상점의 목표는 인형 전시와 디지털 디자인이다.
머릿속에 가득 찬 것들을 풀어내는 것, 하나의 주제로 한시 간이상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이든 써내려 갈 수 있다고 했던가.
머릿속에 가득 찬 것들은 어떤 것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표현하지 못할 것은 없다.
검은 토끼로 주제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참 많다. 인형, 열쇠고리, 가방, 수건 외에도 무엇이든 가능하다.
모든 일에는 열정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열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코바늘의 일정한 간격을 만들어내기 위해 1년에 하나씩 블랭킷을 만들었다. 원하는 모양이 나오기 10번, 20번을 풀고 또 풀어서 다시 뜨고 완성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 이제는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
어떤 것을 보고 싶어 할까.
휴식 같은 소품은 별로일까.
손안에 잡히는 열쇠고리는 어떨까.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검은 토끼가 가져오는 복을 떠올리며 검은 토끼는 계속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