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늘로 만든 꽃과 나뭇잎

털실의 포근함이 손끝에 머문다.

by 연어사리

"언제 뜨개질을 배웠어?"

"뜨개질 배운 적 없어."

허세작렬하는 대답 그런데 사실이다. 따로 배운 적이 없다. 몇 번 배우려 했는데 그냥 보고 따라 하면 만들어지니깐 그냥 머릿속에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본다.

뜨개질 천재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 어릴 적, 여자아이라는 티를 내기 시작하던 5-6살 그 이전부터일 수도 있으나 매일 보고 또 보았던 것이 엄마의 뜨개질하던 모습이었다.


천재는 아니다. 천재라면 10번이고 100번이고 풀어서 다시 뜨지 않을 테니깐. 원하는 모양과 원하는 것들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만든다.

가끔은 병적이다. 털실과 뜨개질에 집착하는 것처럼 반복한다.

실은 잘 엉킨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면 더럽게 복잡해지는 것처럼 털실이 꼬이면 잘라내고 싶음에 현타가 온다. 그래도 잘라내지 않고 풀고 또 풀다 보면 온전한 형태의 털실로서 긴 타래에 감아 묶일 수 있다.


예쁜 블랭킷을 만들기 위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일정한 모양의 블랭킷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 인생의 일부분을 쏟아부은 것 같다. 잠자는 시간과 책 읽고 일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에 뜨개질에 집착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되면 무엇이든 완성할 수 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지만 이제는 잘 안다.

성공은 엉덩이의 묵직함이다.

무엇을 하든 멈추지 않고 잠시 쉬게 되더라도 영원히 끈을 놓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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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엄마와 딸처럼 가까이하면 싸우고 멀어지면 보고 싶어 지는 곳이다.

매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엄마와 딸처럼 극단적인 낮과 밤 같다.

인위적인 털실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포근한 나뭇잎을 만들고 시들 수 없고 말라서 떨어지지 않을 꽃잎을 만들었다. 보들보들한 촉감과 차가운 쇳조각을 붙여 열쇠고리를 만들고 날씨를 길들일 수 없는데 날씨를 길들일 수 있다고 장담하는 허풍쟁이처럼 자연을 표현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마치 조미료가 가득한 라면을 먹으면서 건강하게 먹으려면 라면스프를 반만 넣자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삶이 그런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모든 불가능과 모든 이상함에서 자유롭지 않고 기이하며 또 모든 것에 의미를 찾는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길 위에 돌멩이 하나, 잡초 하나 의미 없는 것은 없다.

AI(인공지능)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가진 이야기를 대체할 수 없다.

엉뚱하고 기이하지만 사람의 불완전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그 자체는 모든 것의 이야기이며 사람을 완성하는 과정인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을 하고 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해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길 원한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길 원한다. 사람의 마음 안에 고향이 있고 고향을 찾는 것은 귀소본능이다.

고향은 그 추억이 어찌 되었든 시간이 지나면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리움이 된다.


코바늘로 만드는 하나하나가 쏟아부은 마음과 시간이 박제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마치 나무인형 피노키오에게 삶을 선물했던 제페토 영감처럼, 연어는 제페토가 되고 연어가 만든 소품들은 살아있는 피노키오가 되는 것 같다.

피노키오가 되는 것은 좋지만 피노키오처럼 후회되고 거짓말하는 것은 싫다. 대신 누군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공을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에겐 느리지만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하는 아둔함이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선물이 멈추는 곳, 친구에게 안녕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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