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중한 사람들에게> 수록된 '오리 전골'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내 이름이 들어간 책 한 권.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지더라고요. 혼자 준비했다면 오래 걸렸을 거 같아요.
같은 주제로 여러 명의 작가가 공동 작가로 참여하면 관리나 판매 걱정 없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어요.
글에 대한 저작권은 내가 갖고 있고
언제든 내 글들만으로 글을 다시 엮을 수 있으니깐요.
어머니, 아버지라는 주제로 작가들 각자의 생각으로.
참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이렇게도 책이 만들어지는구나.
최근에 단편소설이나 글들을 몇 개 쓰긴 했었어요.
완고가 된 것도 있고 완고가 되어서 공모전에 참여했지만 다시 수정을 보고 있는 것도 있고요.
<소중한 사람들에게>에 참여한 제가 쓴 글을 여기서 보여드리려고 해요.
제가 생각한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고 딸이 본 여자의 이야기예요. 별거는 없지만 그냥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희야, 오리 전골 맛있게 됐으니깐 와서 가져가 먹어라.”
“엄마, 나 오리 전골 안 먹어.”
친정과 가까이 산다는 것은 울 엄마의 음식을 자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혼하고 보니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고 입에 맞지 않는 시어머니 음식도 최고의 만찬이 되었다. 결혼 초, 떡애기 젖 먹이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때 제일 그리운 음식은 울 엄마가 해준 미역국이었다. 아기 재우고 같이 잠들었다. 배고파 눈뜨면 생각났던 우리 엄마가 만든 배추김치, 매콤 달콤한 쥐포 무침, 달달한 간장 콩장, 사각사각한 열무김치, 알싸한 맛의 파김치, 달달하게 푹 익힌 김치찌개 등등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결혼해서 10년, 우리 아이를 기꺼이 돌봐주시던 친정엄마는 완전한 할머니가 되었다. 아이 봐주는 것, 매년 100 포기 이상의 김장김치 담그는 것, 명절 음식 준비하는 것과 집안 경조사마다 음식솜씨 빠질 수 없었던 울 엄마는 이제 힘들어한다. 한 말 또 하고 언제 했는지 다시 묻고 대충 만들어도 일품요리였던 음식은 보기만 해도 대충 만들기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충 만든 음식의 맛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까이 살고 마음속 깊은 말도 할 수 있는 딸이지만 이제는 엄마 음식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가끔은 먼저 챙겨주는 반찬들이 엄마에게 미안하고 또 불편하기도 하다. 맛있을 때도 많지만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해서 미안함과 불편함의 이상한 이중주가 떠오르는 것이다.
오리 전골, 엄마가 잘하는 대표 음식 중 하나였다. 엄마는 집안 살림에 보태고자 식당을 하셨었다. 잠시만 계획했던 것 같지만 잠시의 계획은 자그마치 20년을 하게 되었다.
엄마의 첫 번째 식당의 인기 메뉴였던 오리 전골은 식당 문을 열고 메뉴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일부러 유명한 식당에 가서 배워온 음식이었다. 그런 엄마의 노력과 애환의 결과물인 오리 전골, 그런 자랑스러운 오리 전골이 먹기 싫었다.
나는 먹기 싫었지만, 남편은 다를 수도 있었다. 뒤늦은 후회와 상관없이 남편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오리 전골 만들었다는데 먹을 거야?”
“좋지!!”
“그런데, 내가 안 먹는다고 했어.”
남편은 이 무슨 황당하고 어이없는 전화인지 나한테 버럭버럭한다. 없어서 못 먹는 걸 왜 네가 맘대로 거절하냐면서 짜증도 냈다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논리까지 펼쳐가며 네가 왜 장모님께서 나를 위해 챙겨주는 음식까지 관여하냐고 마구 화를 낸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있지. 오리 전골 나 말고 전서방이 먹는데.”
“그래 그러면…….”
엄마는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그날 남편의 저녁 반찬은 오리 전골이었다. 남편은 이런 보양식이 없다면서 장모님이 최고라면서 맛있게 먹었다. 누군가에게는 별미일 음식, 오리 전골은 다행히도 대충 만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 대화 끝에 결론은 엄마에게 단 한 번에 거절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오리 전골은 아무리 맛있어도 거절하고 싶은 음식이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오리 전골이 맛이 있든 없든 그것과 상관없이, 일류요리사가 해주는 오리 전골이라 해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남편의 조언은 수용했지만, 남편에게 오래전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있지, 엄마가 오리 전골 팔 때 말이야…….”
엄마의 첫 번째 식당이 장소가 협소한 것에 비해 꽤 잘 나가는 식당이 되었고 오리 전골 덕분에 단체 손님이 많아져 확장해야 했다. 확장하고 식당은 꽤 넓어졌다. 10명 정도 되는 단체 손님을 4팀 정도 받을 정도의 꽤 큰 식당이었다. 단체 손님들의 주메뉴가 오리 전골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리 전골의 주재료가 되는 생오리는 엄마가 직접 손질해야만 했다. 식당은 9시가 훌쩍 넘는 시간에 문을 닫았었고 생오리는 엄마만의 비법으로 삶고 토막을 내야만 했다. 토막을 내고 다 정리를 하게 되는 날엔 엄마는 12시, 1시. 어느 날인가 새벽, 엄마는 울고 있었다.
토막토막 나는 오리처럼 내 마음도 부서졌었다. 엄마가 하는 오리 손질 과정은 내 마음마저 토막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의 눈물로 준비되어 만들어졌던 오리 전골의 재료들 그런 날은 장사가 잘될수록 반복됐었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말해도, 엄마의 오리 전골 맛보고 싶다고 말해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사실 엄마가 흘리던 눈물과 감정은 단순히 손질 과정이 어렵고 체력이 고갈돼서가 아니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은 결혼생활에 대한 어려움과 힘겨운 하루에 대한 위로가 필요했던 때에 아무도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할 것 같다. 아마도 삶이 힘들어서 고단해서가 아니었을 테다.
위로가 필요했을 텐데.
알면서도 자꾸만 잊게 된다. 엄마니깐, 나도 엄마가 되어 보니깐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런데도 엄마니깐 다 이해될 것처럼 수용될 것처럼 행동한다….
사실 오리 전골을 안 먹는다고 매번 이야기한다. 그러나 엄마의 기억은 오리 전골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만 남아 있는 듯하다. 그 곁에서 먹지 않고 접시에 담기만 했던 내 모습은 없는 듯하다.
사실 일을 하다 보면 가족보다는 일이 우선이었고 가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할 시간이 많이 있지 않았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랑도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러나 가족이기에 곁에 있기에 고맙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말도 자주 전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잘해보려 하겠지만 마음과 행동이 일치될지 장담은 못 하겠다.
공동저자라는 게 참 좋은 게 있었어요. 내 글을 평가받지 않는다. 누군가의 상품이나 가치가 아닌 그저 글의 본래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모집되어진 것 같아서 좋았답니다.
이번에는 '버킷리스트'라고 하네요.
한번 더 참여해 볼까요? ㅎ
전자책으로도 만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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