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떠올리는 말소리
설날이 지나고 남은 이틀, 오로지 자신을 위해 보내고 싶었다.
설명절 전날과 당일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보냈으니 남은 이틀은 나를 위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족이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오롯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는, 나를 빼고 다른 이는 그저 타인이 맞지 않는가.
현실은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혼자가 아닌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연휴 내내 집과 친척집 다녀온 것 외엔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나올 수 없어서 아이와 함께 집에서부터 상점까지 1킬로 정도 걸었다. 설날 다음날인데도 거리가 조용한 게 예전 같지 않음이 확실하다.
아이에게는 브런치 겸 간식으로 먹일 소시지빵과 우유를 브랜드빵가게에 구매하고 상점으로 왔다.
구례현상점에 앉아서 아이에게는 소시지빵과 우유를 먹이고 나는 앉은 채로 30분 멍을 때리다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점심시간이 되자 집으로 가서 아이와 남편의 밥을 챙겼다. 식후 잠시 휴식을 갖고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 저녁때가 되어 다시 상점에 앉았다.
어둑한 시장골목이 어둠만큼이나 조용하고 삭막하다.
아무리 명절다음날이라고 하지만 밤이어서 아무도 없다는 것도 핑계일 뿐 너무도 조용하다.
어쩌다가 들리는 것은 눈치 없는 고양이의 발정 난 울음소리뿐이었다.
문득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어릴 적 아이들과 했던 병뚜껑 딱지치기놀이.
그때 그 아이들은 나를 기억할까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을 모아서 그때 했던 병뚜껑 딱지치기를 하자고 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하려나.
티브이에서 봤던 전 세계의 어릴 적 놀이에 보면 병뚜껑을 가지고 노는 놀이들이 있던데. 우리가 했던 그 병뚜껑 딱지놀이는 그렇게 만들 수 없는 것이었을까.
병뚜껑 딱지를 만들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뒤지고 특별한 것을 위해 또 찾아다니고 돌과 망치를 이용해 납작하게 만들고 그렇게 놀았던 시간은 지금은 다시 느낄 수 없는 시간이다.
딱지치기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고 사람들 틈에 부대끼다가 작은 공간이라도 공간을 찾으면 모여서 놀았던 그때는 쨍그랑 쨍그랑 시끄럽고 건강했었던 것 같다.
바이러스를 걱정하지 않고 범죄를 걱정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은 채 몰려다니고 아는 만큼 보이기에 그저 많이 알려고 하지 않고 눈높이의 담벼락만큼만 알고 행복했었다.
생각은 상상의 저 멀리를 바라보았고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블랭킷을 뜨고 있었다. 사색은 정말 좋은 명상이다. 단순하지만 반복적인 코바늘 패턴 뜨기는 과거의 파편들을 재조명하고 조립한다.
머리와 손은 따로 노는 듯하지만 컨트롤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갑자기 들리는 말소리.
도란도란 남녀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들리는 말소리. 듣는 이가 있든 없든 중요치 않는 대화의 깊이. 명절 내내 무엇을 먹었는지 사촌이 무엇을 했는지 또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누구나 명절에 있었을법한 그런 대화내용이었다. 너무도 흔하고 늘, 주변에서 편하게 들리는 그런 대화였는데 그리웠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고 상품의 재화와 서비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이라고 한다. 물건이 오가지도 않고 서비스가 오가지도 않으며 사람이 오가지도 않는다.
그저 사색적인 추상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장은 쇠퇴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고 있을 뿐이다.
앞집에서 장사하던 어르신이 일신상의 이유로 장사를 접으려 하고 시장의 노점상들이 줄어들고 있다. 시장의 익숙한 소음들은 사라지고 있다. 시장 골목 안에 오래된 건물들이 사라지고 주차장이 생기고 건물이 확장되고 새로운 상가가 생기고 그렇게 소음도 변하고 있었다. 익숙한 대화가 가진 소리가 땅을 파고 돌을 두들기는 소리로 변하고 비가 오면 질척거렸던 길바닥의 발자국 소리가 포장된 길 위에 구둣발 소리로 변했고 젊은 남녀가 여기가 어딘지 서로 대화하며 내비게이션을 찍어본다.
해마다 블랭킷을 하나씩 만들었었다. 지난 6년간 해왔던 일이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사색의 시간이었다. 2022년에는 늦게 시작했고 2023년에는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나에게 보내는 익숙함은 지속되지만 시장이 보내오는 익숙함은 사라지고 있다.
거리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면 새로운 소리들이 가득해지길 바라본다.
그렇게 새롭고 익숙한 소음으로 가득 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