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출근합니다.
본업과 N잡 그 중간은 없다.
띠링~
띠링~
[구례군청] 대설주의보 발효 중이며 토요일 새벽까지 많은 눈이 예상됩니다. 현재 구례군 관내 교통통제 현황을 알려드립니다.
며칠 전부터 오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결국 대설주의보, 그래도 머 몇 년 동안 따순 겨울이었는데 설마? 오면 얼마나 오겠어.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장난이 아닌데.
구례군청에서 알려온 대설주의보 안내 문자
창작가라고 늘 배고프진 않겠지만 시작이 순탄치 않았고 하고재비 같은 창작열, 절실함,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기획력뿐인 나. 밤새 내린 눈은 뜨거워 팔팔 끓어 넘칠 것 같았던 나조차 차갑게 가라앉혔다.
길은 아직 얼지 않았다.
배고픈 창작가보다는 기본적인 생활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 조건들을 충족하는 선택지.
최저시급을 받는 직장인이었다. 서류 정리하고 라벨링 하는 일, 사무행정상 단순처리와 심부름과 같은 부재료 같은 일이지만 성실함은 필수인 직장인, 여러 면에서 아주 좋은 선택지였다. 4대 보험도 해결되고 정리되지 않는 스케줄도 한 번에 해결되며 월급도 나오고 틈틈이 기획하고 구상했다가 저녁과 주말, 공휴일에 작업실을 운영하면 된다. 근무 기간은 24개월, 아마도 조금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도 기간이면 습관 만들기에 아주 좋다.
몇 번의 실패 경험, 작업실에서 혼자 고민에 고민만 눈덩이처럼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여러 가지 걱정만 안고 우는 것보다는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안정감과 또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장점. 물론 바쁘겠지.
사실 많이 바쁘다. 새벽과 저녁 틈틈이 책 읽고 구상하고 또 글 쓰고 구상한 것 실체를 만들고 또 뜯고 다시 만들고 스터디 운영하고 사람들 만나고 낮시간에는 또 직장생활, 그 중간중간에는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정말 바쁘다.
'구례현상점'은 이름이 상점일 뿐 물건을 파는 곳보다는 나의 창작물들이 모아놓은 쇼케이스 같은 곳이다. 좋은 말로 쇼케이스일 뿐, 그냥 조금 정리된 창고 같은 작업실. 그래도 좋았고 나의 노력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나의 열정이 눈이 녹아 없어지듯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보여줄 수 있음에 열광했다.
"문은 언제 열어요?"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상점이라는 간판의 글자만 본 이들은 질문한다.
스터디하는 날과 프로젝트성 디자인 제품들이 만들어질 때면 불이 켜지는 '구례현상점',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거리의 상점들처럼 어두워지면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출근길,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는 눈 쌓인 길
대설주의보, 사무실로 출근했다.
구례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했던 N잡러. 컴퓨터강사일을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한 창작가로서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다른 이름들을 유지하기 위한 직장인, 출근길 논두렁 밭두렁에는 흔한 고양이 발자국조차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발자국이 없지만 땅은 겨울에도 쉬지 않는다.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봄을 준비하고 있다.
'구례현상점'은 불이 꺼져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이 아니다.
대설주의보 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구례현상점'의 구상은 꽤 오래되었지만 이름을 가지고 외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이다. 그 사이에 많은 결과물들이 완성되었다. 한솔제지의 3회 인스퍼어워즈에서 '마술 같은 계단형 달력'으로 입상도 했고 간판을 가진 작업실도 생겼고 문화대장간과 함께 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굿즈도 만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브런치에서 지속적인 글도 쓰고 2023년에는 새로운 활동 영역을 준비 중이다.
물론 핸드메이드 상품의 판매도 전략적 변경 중이다. 판매의 중단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선택 중이다.
지금처럼 주문 제작도 좋지만 펀딩 같은 것은 어떨까.
게으르고 바쁘지만 조건을 충족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신중한 결정 중이다.
가을, 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구례현상점'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계약직 사무직으로서 근무 중이지만 컴퓨터강사로서 고용노동부 수업을 진행할 자격도 된다. 핸드메이드샵을 운영할 수 있고 컴퓨터강사로서 경력도 있는데 왜 '구례현상점'을 운영하고 직장생활을 하는지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구례현상점'은 앞으로 계속적인 투자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다.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려면 조금 멀리 출근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 때때로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조건에 맞는 집합수업은 언제나 진행 중이며 현재 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 컴퓨터강사이긴 하나 기존에 해왔던 수업 대상과 수업 과목이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NCS(고용노동부) 교육강사로서 승인 과목은 두 가지, 사무행정과 디자인 분야이다. 수업 과목과 실무경력은 자신 있다. NCS수업을 진행하며 실무에 대해 받는 질문들 중 20대 직장생활 경험을 통해 답변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한 분야에서 5년 이상 특히나 사무행정직으로서 업무를 알고 싶었다. NCS에서 원하는 직업능력은 다양하고 현재 나이와 상황에 맞는 실무경력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커리어지만 사무행정 분야 특히 서류를 관리하는 분야의 사무원으로서 경험을 갖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단순 사무직의 업무분야는 그리 단순하지 않고 문서 작성은 더욱더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엑셀만 잘해야 하거나 한글타이핑만 해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정확한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아 작성 및 수정하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정확한 전자문서로 만들고 보관해야만 한다. 몇 개월의 계약근무. 한두 달 근무했다고 직장인의 마음을 이해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를 채우는 것은 나의 생각과 실행력이다.
구례현상점은 나의 창작가의 일부분이다.
집시 같은 N잡러라고는 하지만 단단한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잘 정돈된 생각은 단단한 사람을 만든다.
두 번째 스무 살은 단단한 뿌리를 갖기 시작한다.
세 번째 네 번째 스무 살을 위해 깊은 뿌리를 만들고 있다.
성공한 작가들 중에는 직장생활을 지속하거나 오랜 직장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많습니다. 전업작가들 중에도 정해진 스케줄대로 글을 쓰는 분들도 많습니다. 창작가이니 대충대충 살아간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살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내일을 위해, 내뱉는 숨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