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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석 Myste Lee May 14. 2016

또 시작은 늘 그렇다.

부담스럽지만 괜찮아

온몸이 바짝바짝 마른다. 다리는 덜덜 떨려오고, 모든 것이 불안하다. 시선을 오른쪽 귀퉁이에 걸려있는 시계에 두고 1초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있다. 곧 있으면 퇴근이다. 그것도 불타는 금요일. 이번 주 일하는 내내, 주말엔 무엇을 해야지를 고민했다. 지겨운 업무를 떠나 멀리 가고 싶었고,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나야? 회사야? 선택해”라고 묻는 아내에게 “우리 바다 보러 갈까?” 하고 싶었고, 미루어 뒀던 잘 나가는 영화도 보고 싶었다. 동료들이 이야기하던 맛집도 찾아가고 싶고, 운동도 좀 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니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또 기다려질까. 숨도 쉬지 않고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6시, 초침이 지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백 차장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퇴근시간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듯, 본인의 업무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금요일 6시가 넘었는데, 불러서 일을 시킨다. 집에 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다. 우리에겐 꿀맛 같은 주말이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클럽에서의 불타는 밤이 아닌 사무실에서 불타는 화를 누르고 야근을 하고 있어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이제 곧 끝난다 라는 마음 하나 때문이다. 끝. 마무리. 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꽤 매력적이다.


그토록 많이 계획해두었던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밀린 잠부터 자기 시작할 주말이지만, 어떤 것을 마무리지었다. 나의 한 주를 마무리 지었다.라고 생각하는 시간 자체가 어쩌면 우리에게 꽤 많은 여유로움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실상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인간이 한 발명 중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가 달력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일 년을 12개월 365일로 나눠놓고, 또 그 하루를 24시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가 잘 정리되어 있는 달력의 마력은 그 안에 쉼 없이 끝과 시작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2016년 1월이 밝는다고 우리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똑같이 하루는 시작되고, 우리 삶은 연속적인 특성을 띄고 변함없이 달려간다. 하지만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시간을 떨쳐내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를 극적인 불안감에서 끌어내 준다. 그래서일까? 요란하게 해 뜨는 걸 보러 가겠다며 아침 일찍 부산을 떨기도 하고, 마지막 날 밤이라며 종각에 모여 종소리를 듣고 환호한다. 지나가버린 2015년 따위 버려버리고, 다가오는 2016년에 기뻐하고 얼싸안는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말과 함께 그야말로 축복 세례가 벌어지는 날이다. 끝과 시작의 공존. 오늘 하루 일진이 너무 사나워도, 잠자리에 들고 눈을 뜨고 난 후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이 우리를 또 움직이게 한다. 끝은 그렇게 매력적이다. 끝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의 고통스러운 일주일도 금요일 막을 내리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한다.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밀린 잠부터 잤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당연히 아침밥도 패스했다. 먹는 것 자체도 귀찮은 노동의 일종이다.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몸은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약속이나 잡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는다. 그 녀석들도 아직 잠에 노예가 되어 있는 중인 것이다. 주말만 되면 하겠다는 모든 일들이 하나 둘 씩 물거품이 되기 시작한다. 티브이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그렇게 썩 마음에 드는 프로가 하지 않는다. 결국 예전에 보았던 재방송을 틀어놓고 소파와 혼연일체의 모습을 이룬다. 점식식사는 이미 예전에 배달음식으로 정했다. 띵동 하는 반가운 소리와 만나는 배달해 주시는 아저씨는, 오늘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이다. 20초간의 짧은 만남에 돈도 주고받고 인사도 주고받고, 내 점심도 받았다. 효율적이다. 그것도 잠시, 음식을 들고 소파로 가 이미 보았던 방송을 보며 맛있게 먹자마자 배를 어루만지며 누워있다가 또 잠에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깬 시각은 7시 남짓. 토요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아직까지는 괜찮다. 우리에겐 일요일이 있으니까, 아직 하루의 여유가 더 있고 내일은 반드시, 계획했던 것들 중 일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채널을 돌리다 잠이 들었다.

한 박자 쉬어가는 순간. 즐겁다. 달리기도 잠깐 걷는 시간이 즐겁고, 등산도 바위에 앉아 숨 고르는 시간이 짜릿하다. 무슨 일이든 중간에 한 박자 쉴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힘이 드는 건 그렇게 쉬고 나면, 다시 뛰기 너무 싫다는 것, 그러게 숨이라도 고르면 다시 숨이 가빠지는 게 힘이 들어진다. 더군다나, 아예 주저앉아있다가는 답이 없다. 걷는 게 아니라 멈춰 서버리면, 바위에 앉는 게 아니라 누워버리면,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에 쿵 내려앉아 일어서기가 힘들다.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부담된다.


일요일이 그렇다. 일주일 중 유일한 빨간 날인데. 희망과 고통이 교차한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한다. 어제처럼 널브러져 우리에겐 아직 일요일이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그 일요일이 그렇게 편하지 않다. 이제 내일이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버려두었던 새로운 시작이 어느새 앞으로 다가와있다. 과장님이 퇴근 직전에 시켜놓은 일도 생각이 나고, 미처 받지 못했던 결제 건들도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결 못한 일뿐 아니라, 이제 시작해야 될 내 일들도 암담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것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생각을 하면, 내일 아침 당장 전화를 걸어 “아 과장님 제가 심한 감기에 걸려 입원을 했습니다. 오늘 연차를 내야 될 거 같습니다”라고 웬만한 주연배우 뺨치는 연기가 필요해 보인다. 기필코 계획했던 무언가를 하겠다는 일요일은,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편함을 가득 가지고서 다시 몸을 일으켜야 할 부담감과 싸우다 하루를 보내버린다. 그렇게 깨닫는다. 아! 이제 월요일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일컬어 ‘월요병’이라고 부른다. 월요병:주말에 흐트러진 생체리듬 때문에 원래의 리듬으로 적응해 가는 데 나타나는 신체적인 현상과 주말 동안의 휴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월요일은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긴장감으로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우울증이 올 수 있는데, 비단 월요일뿐만 아니라 긴 휴가 후에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병’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지만 실제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이나 정신 질환 따위는 아니다.(위키사전 참조)라고 하면서 비타민을 먹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비타민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또 시작한다라는 부담감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다. 이미 시작한 달리기고, 이미 오르고 있는 산이었는데, 잠 쉬 쉬면서 끝났다고 우리가 믿었기 때문이다. 잠 쉬 숨을 고르면서 이제 정상이다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 덕분에 우리는 꽤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과 마주하게 된다.


힘겨운 게 정상이다. 아픈 것도 정상이다.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 부담스럽다. 심지어 그것이 내가 늘 하던 반복된 일상이라도 그렇다.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쿵 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거울 속에 있는 우리를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혼잣말로 “가기 싫다..”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너무나 나약한 내가 그 안에 있고, 게으르고, 모든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는 내가 그 안에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순간이다. 이겨낸다라는 것은 오랫동안의 긴 전투가 아니라 순간순간 선택에서 부단히 나를 극복해내는 일이다. 엔진에도 예열이 필요하듯, 그저 나를 예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또 다른 시작이 부담스럽다. 그게 주말 후에 월요일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광고 카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그 작은 순간의 부담을 바라볼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세상이 잠들어 있는 월요일 새벽 일찍, 거리 어딘가에는, 나보다 좀더 일찍 부담을 이겨낸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들도 부담스러웠을거고, 우리도 그렇다. 또 시작은 늘 그렇다.


+EPISODE

Myste. Lee Said:

정준하가 쇼미더머니에 나갔다. 대중들을 향해 “웃지마”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 한마디로 가지고 있는 부담감의 반을 떨쳐내면서, 곧 이어 시작된 그의 랩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멋진 라임과 기술 호흡따위 아니다. 이 사람이 마주했을 부담감이 온몸으로 느껴졌고. 어설프게 움직이는 몸의 그루브가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눈물이 났다. 그가 견뎌야했을 부담감이 온마음으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비웃음이 어제 사라진 느낌이다. 그는 개그맨이라는, 중년이라는 타이틀을 집어 던지고 비 웃음이라는 부담감을 마주보았다. 결과는 모른다. 그런데 무슨상관인가. 그는 또 한번의 자신를 발견했다.


글_사진_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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