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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석 Myste Lee Mar 02. 2017

온전함의 아픔

이 시대의 멜랑콜리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지하철 플랫폼에는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내가 탈 지하철이 어디쯤 오는지 보고선 겨우겨우 숨을 돌린다. 여기저기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은 데칼코마니처럼 멍한 눈동자이거나,  바쁨을 온몸으로 입고 있다. 곧이어 지하철이 들어서고 지하철 안으로, 그리고 지하철 밖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사람들이 또 각기 자신들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발걸음이 똑 부러진다. 아마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다니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혀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그 길은 정확하게 우리 머릿속에 기억되어 걸어가게 한다.


학교를 다닐 때 나도 그렇게 걸었다. 그래서일까. 등하교를 하던 길은 지금 가도 낯설지 않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버렸지만, 여기엔 무엇이 있었지. 그래 저기엔 그것이 있었지. 기억에 의존할 수 있다. 사는 사람도 바뀌었을 거고, 이미 참 많은 풍경의 변화를 이루었지만, 그 길 속에 있는 기억들은 여전하다. 그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꿈을 꾸고 불안해했던 내 과거도 거기 그대로 있다. 하지만 그때 가지고 있었던 고민과 과거의 불안, 그리고 심지어 꿈 조차도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참 많이 불안해했었다. 두려워했었다. 그 길에서 세상이 무너짐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했고, 내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지금의 내게 그때의 불안과 꿈, 그리고 두려움까지 전부 사라졌다. 이제는 추억이라고 부르면서 하찮은 술안주로 삼는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라며 회상한다. 지금을 한 없이 아파하면서.


과거는 대부분 기억의 파편이다. 온전치 않다. 사람은 과거에서 좋은 것만 기억으로 남기려 하거나 좋지 않은 것들은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심지어 제대하고 난 후 군대를 아직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번쯤 가볼만하다’며 헛소리를 한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안 가볼만한 이유도 101가지는 된다. 파편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곧잘 미화된다. 군대 축구처럼. 반면에 현재는 온전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진다. 가슴을 찌를 듯이 아프며,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불안하다. 별것이 아닌 일도 별것처럼 느껴진다. 계획한 일이 모두 망쳐질까 봐, 고대했던 일이 또 미끄러질까 봐, 심혈을 기울였던 일이 실패할까 봐 두려워한다. 지나고 나면 경험이라 이야기할 현재의 아픔을 견뎌내기엔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쓰다. 



종이를 한 장을 꺼내어 놓고 써보았다. 지금 내가 불안해하는 것. 기대하고 있는 것. 한 참을 끄적여 불안해하는 것 대여섯 개, 기대하는 것도 대여섯 개. 멀뚱멀뚱 써놓은 불안해하는 일과 기대하는 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갔다. 


'이 불안한 일이 터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지?’

‘흠 이런 일이 벌어지겠네. 그럼 어떤 일이 초래하지?’

‘아.. 이렇게 되겠네..’

‘그럼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 할 수 있는 게 없네?’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쳤다. 불안함을 꺼내 들어도, 기대하는 것을 꺼내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을 지표로 두고 안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끌고 가면,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전부 의미가 없어진다. 결코 의미 없을 수 없는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머릿속에 ‘그래도 안되면?’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불안을 건드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잠자코 기다리다 무너지는 일 말고는. 


하루를 정해진대로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몇 가지 없다. 고작 지하철이 몇 분 후쯤 우리 앞에 서느냐다. 정해진 길을 걸었지만, 그 조차도 정확히 같지는 않다. 한 치의 오차는 늘 우리 삶에 끼어있다. 그래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기대가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미끄러지지 않았고,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세상에 ‘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한참이 지나 서다. 삶에서 페이드 아웃이 되는 것이지, 탁 하고 꺼지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도 우리의 불안도 그렇다. 그래서 기억은 늘 희미하게 남아있다. 파편으로. 또 그래서 우리는 좋은 것만 기억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종이를 꺼내놓고 고민하던 모든 것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재미있게도,  적어놓은 대로 흘러간 경우는 별로 없다. 어떤 것은 더 나를 괴롭혔고, 어떤 것은 오히려 너무 좋은 쪽으로 흘렀다.  우리의 삶이 너무 아픈 것은 온전하기 때문이다. 지금을 너무 아파하지 말길 바란다. 내일을 너무 불안해하지 않길 바란다. 함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그 시간을 온전히 버텨낸다. 부담스럽더라도, 이미 비슷한 길을 수없이 걸었기 때문이다.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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