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석 Myste Lee May 01. 2018

나는 자주 눈먼 잉어가 되었다.

이 시대의 멜랑콜리

몇 개쯤 먹어 봤을까?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저주받은 몸을 지닌 나는, 누군가 조금 좋다고 하는 다이어트 식품들은 죄다 사다 먹곤 했다. 가르시니아, CLA 기타 등등 먹으면 살 안 쪄요. 아니면 먹으면 살 빠져요.라는 슬로건을 건 대부분의 다이어트 식품들이 나를 거쳐 지나갔었다. 분명히 나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많은 것을 먹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결과라도 좋았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뱃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다이어트 식품들은 그저 배안에서 또 다른 소화의 대상이 되어 사라졌다. 먹고 찌운 살을 다시 먹고 뺀다는 이상한 커리큘럼에 갇히게 되었다.


‘혹시나’했다. 이번 식품은 댓글이 확실했다. 이 것을 먹고 살을 뺐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너무 적나라해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았는데 입술 근육이 실룩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에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것만 먹으면, 잘 꾸준히 먹으면 나도 드디어 찐 살을 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써 장바구니에 담았고 과감하게 결제했다. 약은 늦지 않게 정확하게 택배 아저씨와 함께 도착했다.


‘역시나’였다. 이번 식품도 사기당했다. 이 것을 먹고 살을 뺐다는 인간들을 찾아가고 싶었다. 너무 적나라한 거짓말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약은 반도 먹지 않아서, 집에 있는 약 바구니에 고스란히 있다.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의 주인공들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마케팅이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정말 이들이 이 다이어트 식품만 먹었을까 의심스러웠다. 설마 굶은 건 아닐까, 아니면 하루에 2시간씩 달리면서 이 식품을 먹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부질없다. 결국 살은 안 빠진다.


나는 이 ‘혹시나’와 ‘역시나’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며 담아 놓은 수많은 장바구니의 다이어트 식품들이,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우리 집 약 바구니 안에서 ‘역시나’를 외치고 있다. 이쯤 되면 나는 눈먼 잉어 꼴이다. 어쩜 그렇게 매번 낚이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 다이어트 식품 업계는 전부 강태공이 틀림없다.


작은 ‘혹시나' 곁에는 언제나 큰 ‘역시나'가 따라다닌다. 실패하고 절망하고 넘어지고 다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든,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로또를 사면서 이번에는 ‘혹시나’ 입사원서를 쓰면서 이번에는 ‘혹시나’, 맛집을 돌아다니며 이번에는 ‘혹시나’ 열심히 준비한 시험을 치르고 ‘혹시나’ 간절한 만큼 늘 따라다니고, 간절한 만큼 ‘역시나'가 배신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혹시나’와 ‘역시나’에 뒤에 다시 ‘혹시나’가 오는 것은 아니다.


100번의 ‘혹시나' 뒤에 99번의 ‘역시나'가 따라다닌다. 그리고 우리는 겨우 ‘혹시나'를 거쳐 ‘역시나’를 지나, 그러니까 100번에 한 번쯤 ‘그러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러나’ 뒤에 있는 달콤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뒤에 우리는 언제나 스몰 사이즈고, ‘그러나’ 뒤에 우리는 언제나 웃고 있다. ‘그러나’ 뒤에 우리는 누군가의 존경의 대상이고, ‘그러나’ 뒤에 우리는 언제나 성공의 아이콘이다. 사실은 눈먼 잉어라 100번의 ‘혹시나'가 가능해지고, ‘역시나'를 견뎌내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그러나’를 만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눈먼 잉어의 승리다.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


https://www.facebook.com/inseok.lee.980

https://www.instagram.com/inseok.lee/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는 '멜랑콜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