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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석 Myste Lee May 11. 2018

온기가 있는 생명은
우리에게 의지가 되기 마련이다.

이 시대의 멜랑콜리

학교 앞에서 팔았던, 한 마리에 200원 하던 병아리들. 나는 아저씨들이 박스에 담아온 병아리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마리 혹은 두 마리를 꼭 집에 데려오곤 했다. 이번에는 닭으로 키워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서, 라면 박스를 구해다가 신문지를 깔고, 넓은 뚜껑을 찾아 모이를 넣어두고, 물을 따라 두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방울만한 병아리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귀에서 삐약삐약 환청이 들렸었다. 아버지는 또 병아리를 데려왔냐며 나무랐고, 엄마는 잘 키워보라고 했지만, 하루 이틀쯤 삐약삐약 소리가 진동을 하다가, 3일쯤 지날 때 더 이상 삐약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늘 아련한 마음으로 데려왔던 병아리는 내가 정도 주기 전에 그렇게 죽어버렸다. 어린 마음에 몇 번이나 훌쩍거리면서 그 병아리를 묻어주었는데도, 또 그 병아리 아저씨가 학교 앞에 박스 속 가득 담아온 병아리를 볼 때면, 다시 한번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데려와 며칠 모이와 물을 먹다가 힘없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울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한 번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쉽게 내 곁을 떠나는 동물이 아니라, 이름을 지어주고 일생에 일부를 같이할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강한 반대로 인해 이루지 못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곧 잘했지만 선뜻 행동하지 못했다.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오고 나면 그 아이 밥은 누가 매일 챙겨주지? 누가 씻겨주지? 내가 출장 갈 때는 누가 봐주지? 키우고 싶단 생각 뒤에, 키우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줄지어 늘어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 순간의 행복을 위해 강아지의 불행을 초래하는 것 같아 선뜻 행동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강아지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한 번씩 아주 듬직한 개를 보거나, 아주 앙증맞은 강아지를 볼 때면 한번 도전해 볼까? 하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키웠던’ 거북이들이 있었다. 꽤 정성을 들여 보살폈다. 초록색 피부에 앞발을 쉴새 없이 흔들며 헤엄을 치고, 툭하면 작을 돌 위에 올라와 목을 쭉 빼고 나를 바라보던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거북이들을 위해 남부럽지 않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물도 자주 갈아 주었다. 먹이도 때를 지켜 꾸준히 주었고, 혼자는 외로울 거 같아 둘을 함께 키웠다.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낸 생명체였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긴이' ‘숙이'였다. 그런데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수조에 얌전히 두 눈을 껌뻑이며 입을 뻐끔뻐끔하고 있어야 할 긴이와 숙이가 보이질 않았다. 꿈을 꾸는 거 같았다. 수조 속에 있어야 할 이 거북이들이 어디 갔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저 추측으로 야밤에, 둘이 합심하여 어항을 빠져나갔다는 것 말고는 알 길이 없었다. 온 집을 다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한 참 시간이 지나, 긴이와 숙이는 침대 밑에서 발견되었다. 바싹 온몸이 말라있는 거북이들을 보면서 또 한참을 울었다. 


온기가 있는 생명을 집으로 들인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언제나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애정으로 사소함까지 함께하는 용기와 더불어,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작고 큰 일에 대한 책임감을 오롯이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온기가 있는 생명체를 집으로 들이는 일에 용기를 내고 싶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어떤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온전히 견뎌 낼 수 있다면 그들에게 의지하는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책임 끝에 작고 예쁜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를 또 한 번 깨닫는다. 늦게 들어온 우리에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며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를 털어내기도 한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어떤 행동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어느 한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의 삶에 의지가 된다. 우리도 그 기쁨을 누려볼 수 있다. 


온기가 있는 모든 생명은 우리에게 의지가 되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올리브 나무가 우리 집으로 왔다. 쟤는 어떻게 해야 하지?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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