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멜랑콜리
지난달 우리에겐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일 저일 바빴고, 내야할 할 고지서는 쉬지 않고 집으로 도착했기에 내 아이는 내가 없는 사이에 걸음마를 배웠고 나도 모르는 사이 말을 배웠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될래요. 아빠 꼭 아빠를 닮을 거예요 언제 오세요? 아빠?"
“글쎄다. 하지만 함께 보게 될 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겠지”
내 아들이 지난달 열 살이 되었습니다.
“공 사주셔서 참 고마워요 아빠 함께 놀아요. 공 던지기 좀 가르쳐 주세요”
“오늘은 안 되겠다. 할 일이 많단다”
“괜찮아요”
내 아들은 밝은 웃음을 머금고 나가며 말했습니다.
“나는 아빠처럼 될 거예요. 아시죠? 나는 아빠 같이 될 거예요. 언제 오세요? 아빠?”
“글쎄다. 하지만 그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자꾸나”
내 아들이 며칠 전 대학에서 돌아왔습니다. 사내답게 컸기에 나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잠시 함께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자”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차 열쇠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따 봐요”
“언제 돌아오니 아들아? “
“글쎄요. 하지만 그때 함께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죠”
나는 은퇴를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아들은 이사를 나갔습니다. 지난달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습니다.
“아들아 괜찮다면 한 번 볼 수 있겠니?
“그러고 싶어요 아버지, 시간만 낼 수 있다면요. 새 직장 때문에 바쁘고 애들은 감기에 걸렸어요. 얘기하게 되어 반가워요. 아버지.”
전화를 끊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나와 똑같이 컸다는 것. 내 아들이 꼭 나와 같다는 것.
“언제 집에 오니 아들아?”
“글쎄요. 하지만 그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죠. 아버지.”
-부모가 함께 보아야 할 글, 작자미상-
일찍 장가를 간 친구는 밤에 하는 일을 했고,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에게, “아빠 갔다 올게” 그랬더니 아들이 싱그러운 얼굴로 아빠를 쳐다보고는 “응 또 놀러와” 했단다. 처음에 친구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한참 웃으며 핀잔을 주었는데 최근에 비슷한 광고를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인터넷에서 '부모가 함께 보아야 할 글'을 보고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너를 위해 바쁜데 너를 놓치는 일들이 얼마나 우리 주변에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결혼한 지 4년이 흘렀다. 나는 지금도 가끔 아침에 혹은 저녁에 아내를 보면, 푼수같이 또 반한다. 실없이 웃으며 아내에게 “왜 그렇게 이뻐?”, “뭐 먹고 그렇게 이뻐?”라고 반 장난, 반 진심으로 이야길 던지면, 아내는 “이쁘긴 뭐가 이뻐 늙었구먼”이라며 핀잔을 줄 때도 있고, “당신이 이쁘게 봐줘서 이쁘지”라며 오히려 나를 올려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쁘게 느껴질 때 이쁘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쁘다고 말해 줄일이 없어진다. 나는 곧 잘 그렇게 느끼는 순간 바로 말하는 편이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아내를 꼬셔 먹으러 나가는 편이고, 기다렸던 영화는 반드시 개봉날에 보고야 만다.
바쁜 일이 있어도, 가끔은 중요한 일도 뒤로 던져두고 그저 그 순간만을 위해 시간을 낸다. 그런다고 큰 일 안나더라.
오늘 그렇게 먹고 싶었던 ‘오징어 땅콩’은 내일 먹으면 꼭 맛이 없더라. “고마워”라는 말의 타이밍을 놓치면 꼭 그 의미가 퇴색되더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당장 해주지 않으면, 꼭 해주지 않게 되더라. 길을 가다 문득 그 사람이 떠올라 아무 생각이 없이 사서 ‘오다가 주웠어’라며 던져주면 이상하게 감동하더라. 아주 잠깐 짬을 내서 “밥 먹었어?”라고 물어봐주면 사려 깊은 사람이 되더라. “사랑해”라는 말을 오늘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하게 되는 슬픈 일도 있더라. 그럴걸. 저럴걸은 언제나 후회를 남기더라.
우리는 바쁘다. 그런데 시간은 언제나 내는 거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고 당신이 가장 이쁜 날은 오늘이니까.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