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멜랑콜리
예전에 ‘이곳’은 신촌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북촌으로 옮겼고, 잠시 진행하지 않다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초대하거나 함께 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망설였다. 사실, 나는 ‘이곳’을 쉽게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이 장소를 아꼈고, 나의 삶의 지표를 깨닫게 해주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불안감도 이 곳에서는 소용이 없었고, 세상 가장 불안한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편안하다고 느꼈다. ‘이곳’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선입견도 낄 틈이 없었다. 그저 한 발자국을 걸어가는데 온 마음을 쏟아야 했고, 그 걸음들 안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실상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나오는 ‘이곳’을 나는 언제나 인생의 온축지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북촌에 있는 ‘어둠 속의 대화’라는 보이지 않는 전시다.
아내와 나는 결혼 전에 이곳을 다녀왔다. 입장을 위해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와 같은 시간에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때부터 조금의 어둠이 시작된다. 총인원은 8명. 벽에 등을 기대고 같이 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짧은 안내와 함께 앞을 짚을 수 있는 white cane(흰 지팡이)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완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보통 약간의 빛이라도 존재하면 곧 눈이 익숙해지고, 미약하게나마 앞이 보이지만, 이곳 어둠 속의 대화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편안하게 눈을 감으라는 조언을 듣게 되고 그 후 정말 완전한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내는 조금 겁을 먹기 시작했다.
“진짜 하나도 안 보여.. 무서워..”
“괜찮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조금 있으면 모든 게 보일 거야”
나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아내는 뭐냐며 투정을 부리면서 불안의 끝을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잠시 후, 우리를 이끄는 ‘로드마스터’를 만나고서야 조금 두려움이 해소되었다. 어둠 속의 대화에서 로드마스터는, 100분간의 어둠의 여정에서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다. 앞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아주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안내한다. 그녀(실제로는 남자 로드마스터도 있는데, 나는 여자 로드마스터만 만났다.)는 아주 재미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우리의 손과 팔을 잡고 누구인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한번 들은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이름 혹은 팀 이름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조심해야 할 것, 그 속에서 느껴야 할 것, 보이지 않지만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럼에도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한 걸음 한걸음은 여전히 무섭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행여나 앞사람과 부딪힐까 봐 살금살금 걸어야 하고, 발 앞에 턱이 있는지 벽이 있는지 하나하나 더듬어 가며 길을 나아갔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아주 세세하게 들렸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내의 떨림과 동시에 두근거리는 아내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말을 크게 하지 않아도, 아내에게 모든 말이 전달되는 공간이었다. “무서워?”라는 내 물음에 “아니 괜찮아” 했지만, 아내는 100분 동안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당신 어디 있어?”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도 그랬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불안감을 쓸어내리기 위해 애썼다.
이 어둠은 사실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우리는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물리적으로 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앞으로 올 시간을 물리적으로 볼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간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뿐이다. 결국 아주 화려하고 찬란한 어둠 속에서 우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 분 후, 10분 후, 1시간 후, 한 달 후, 1년 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닥쳐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 한 걸음 조심조심 내딛을 뿐이며, 더듬더듬 손을 뻗어 내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좌절시킨다. 보이지 않는 공포가 발아래에 와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고통과 안도감의 연속이며 알다가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시가 40분쯤이 흘렀다고 느꼈을 때, 로드마스터는 우리의 전시 관람이 종료되었음을 알린다. 100분이 벌써 흘러 버린 것이다.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무뎌졌고, 놓쳤다.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처럼.
로드마스터는,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들려주었다. 우리의 목소리에 대한 로드마스터의 생각, 보이지 않지만, 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떤 부분에서는 놀라고, 어떤 부분에서는 슬며시 미소 지어지기도 한다. 마지막 그 목소리에서 8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어둠을 가져간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뒤로, 로드마스터와는 어둠 속에서 이별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로드마스터'가 있었다. 약속한것처럼. 운명처럼.
그들은 부모, 연인, 친구, 선배, 후배, 누나 형, 언니 동생의 모습으로 우리의 순간을 대신 기억해주고, 우리의 목소리와 이름과 그때의 우리를 명확하게 기억해준다. 그 순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그 속에서 느껴야 할 것. 보이지 않지만, 본인이 보아왔던 것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한다. 그렇게 길을 걸은 자가, 길을 알려주는 삶을 우리는 살아간다.
아내에게 전시를 나오면서, 나는 물었다.
“오늘 본 전시가 다 보였다면 어땠을 거 같아?”
“음.. 엄청 시시했겠지”
“그럼 안 보이는 게 더 좋은 건가?"
“그건 아니지만, 다 보이고 안다면 굳이 걸어가려고 할까? 쉬우면 쉬워서, 무서우면 무서워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을 꺼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날을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인생의 설레임을 빼앗기고, 도전할 용기를 빼앗겨 포기하게 만들어 모든 걸 잃게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내일을 모르는 어둠 속을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우리 곁에는 늘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이끌어주는 ‘로드마스터’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의 ‘로드마스터’가 된다.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