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멜랑콜리
슈트를 자주 입는 나는 평상복을 잘 사지 않는다. 잘 입을 일도 없지만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큰 관심 없이 사이즈가 맞거나, 색상만 괜찮으면 대충 골라 집어 입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마음에 드는 재킷을 샀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거울 속에 내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서도 멋지고, 저렇게 서도 멋졌다. 물론 그 거울이 마법의 거울이란 혜택도 있었지만, 꼭 맞는 옷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쇼핑을 한 나는 싱글벙글하였고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는 아내는 즐거워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택을 때고, 입고 나왔다. 지나가는 유리에 나를 비춰보고, 거울만 있음 조르르 달려가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나를 바라보며 신기해하며 뿌듯해했다.
“나 멋지지 않아?”라는 나의 계속되는 질문에 키득키득 웃으며 아내는 “응 멋져”라고 해주었다. 발걸음을 옮겨 커피숍으로 향하는 그 시간 내내 나는 즐거웠다. 옷이 날개야 라며 팔짝팔짝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녔다. 이윽고 카페에 도착했다. 아내는 시원하고 달달한 캐러멜 마끼야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짤랑짤랑 울리는 종소리에 눈길을 한 번씩 뺏기면서도,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잘 이어져갔다. 잠시 후, 커피숍으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순간 나를 쳐다보고는, 그 남자를 다시 쳐다보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가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나를 보며 왜 그래? 라며 고개를 돌렸고 ‘어? 같은 옷이네?’라고 말했다. 그 남자와 나는 내가 오늘 산 똑같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문제는 그는 나보다 키도 컸고, 늘씬했고, 어깨도 넓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다. 나는 숨고 싶어 졌다. 같은 옷을 입었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들릴리 없는 남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같은 옷 다른 느낌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나를 보며, 당신은 당신이고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당신이 더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해줬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이 커피숍을 떠나고 나서야 다시 제대로 앉을 수 있었고 나설 수 있었다. 나는 택을 때 버린 걸 후회했다. 반품하고 싶었다. 더 이상 그 옷은 내게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비교는 날 비참하게 만들었다.
새벽 5시에 기상.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면 8시 즈음. 그때부터 운동 시작. 운동이 끝나고 나면 서둘러서 미처 다 못 읽었던 독서. 그리고 글쓰기, 공부하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새벽 1시. 잠이든지 4시간 지나 내 하루는 다시 또 시작했다. 그렇게 사는 내가 뿌듯했고 기특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일어나려고 했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했고, 지지 않으려 했다. 남들보다 시간을 쪼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일어나고,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들을 해내고,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일을 여러 개를 해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보내는 나는 조금씩 그러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외로워했고 나에게 투덜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놀아?’라며 나의 행동을 당연시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일 년에 3번도 겨우 갔고, 아버지는 내게 ‘미국에 있는 동생보다 너를 보는 시간이 더 적다’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주시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놀면서 안 와요?’라며 내 행동을 정당화했다. 아내도 아버지도 틀렸고, 내가 맞다라고 생각했다. 그냥사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시간을 알차게 보내며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바쁘고, 더 잘 나가고, 더 돈 벌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보다 언제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강요했다.
비교는 날 교만하게 만들었다.
할 일 없이 비스듬히 누워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다 비슷비슷한 채널. 음식 이야기, 건강이야기, 흔한 야외 버라이어티, 부부이야기, 하나의 주제가 이슈가 되면, 그걸 모티브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있었다. 나오는 사람만 다를 뿐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의 흐름이다. 볼 게 없다. 결국, 채널을 돌리다 어느 한 채널에 의미 없이 멈추어 섰고, 아내와 나는 멀뚱멀뚱 그저 눈길을 두고 있었다. 그 프로는 부모들이 나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프로였다. 화면 속의 아이는 수영을 배우는 아이였고, 엄마는 그런 아이들 열심히 뒷바라지하며, 아이의 꿈을 지켜주고 있었다. 화면 속의 아이는 수영대회를 준비해 나가게 되었고, 엄마는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 아이를 북돋고 코칭하고 있었다. 드디어 대회날,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수영을 했고, 그 화면을 지켜보던 다른 패널들은 아이가 1등을 했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는 다른 패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1등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패널들은 어리둥절 해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누구보다 더가 아니라, 나 자신보다 더가 필요해요. 필요한 건 누구를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수영해야 될 이유니까요"
맞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절망과 좌절, 더 많은 교만이 아이를 괴롭힐 테니까.
우리는 나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내 머리를 정리하고 화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나를 빚추는 거울이다.
비교는 날 비참하게 하거나, 내가 교만해지거나 둘 중에 하나로 끝난다.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