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이해하기까지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읽고

by 썸머


김혜진의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는 젊었을 때는 교사로 일했으나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었으나 남편이 죽자 생계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는 엄마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딸은 본명보다 '그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대학교의 시간강사로 레즈비언이며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애인 '그 애'와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그린'은 동료 강사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해고를 당한 일에 대해 항의를 하기 위해 학교 앞에서 매일 시위를 하고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평범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린'의 삶을 서술자인 엄마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는 아무래도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엄마라서 그런지 엄마에게 좀 더 감정을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아직은 엄마의 '딸'이지만 곧 '엄마'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나는 유독 엄마의 착한 딸이 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그냥 '그린'보다는 '엄마'의 심정에 더욱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린'의 성적인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그녀가 하는 사회활동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보면 '교사'라는 전문직도 그만두고 키운 딸인데,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정도면 공부도 많이하고 잘 했을 딸인데, 그런 딸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게 참 어려울 것 같다고 '그린'의 엄마의 심정이 느껴질 뿐이다.

특히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젠'이라는 할머니를 돌보는데 '젠'은 평생 가정을 꾸리기보다 사회를 위한 운동가로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기억을 잃어버리면서 찾는 사람이 없어지고 결국엔 기저귀 한 개조차 맘대로 쓰지 못할 만큼 병원에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게 된다. '젠'이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엄마는 '젠'이 오랜 시간 후원을 했던 (지금은 다 자라 청년이 된)필리핀 국적의 '띠팟'도 찾아가 보지만 그조차 '젠'을 부양하려 하지 않고 외면한다. '평범하다'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형태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엄마는 '젠'과 '그린'을 자연스레 동일시 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자식만큼은 그냥 무난한 삶을 살았으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심적으로 서술자인 엄마에게 공감을 한다고 해서 그녀가 '그린'에게 다른 방식으로 살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딸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든지 아니면 딸을 영영 떠나보내든지 하는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타인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것인가.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응, 너의 삶을 이해해. 너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그렇게 사는 것도 멋진걸?' 이라고 쉽게 말을 건넬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타인이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면,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내 몸 속에서 나온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내 딸이 선택한 삶의 방식 때문에 내 딸이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고 심지어 신체적 위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떤 부모가 가만히 냅두겠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소중한 사람에게,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내가 한 때는 속해있었던 세계에게서까지 삶의 모습을 부정당하는 입장은 또 얼마나 힘들고 서글플까. 이렇게 '이해'라는 것은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끼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면 건조하고 단순한 관계일 수 있지만, 그래도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담임과 학급 아이들의 관계도 참으로 오묘하다. 왜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지 이해하고 싶다가도 그냥 이해라는 것을 관두고 싶어질 때도 많다. 너는 너대로 살아하는 식으로 그저 지나치는 사람처럼.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현실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이야기 속 인물에게 이입해서 또 다른 인물을 이해하려는 것이 이중으로 힘들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것 같다.


"여전히 내 안엔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는 내가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내가 있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자신도, 기운도,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젠'의 장례식장에서 기름이 허옇게 뜬 육개장을 함께 먹으면서 수육과 김치를 비로소 '그 애'에게 슬쩍 밀어주는 엄마의 모습이 더욱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때로 기적은 끔찍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긴 오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잖니."



너를 이해하기까지 너무 멀고 먼 길이지만 너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걸까. 정말 너를 이해한다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수육과 김치를 슬그머니 밀어주는 용기를 나도 낼 수 있을까. '딸에 대하여'지만 나에겐 '너를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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