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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Aug 20. 2023

좋은 사람

생각은 금방 달아나버린다.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려면 적어두는 게 제일이다. 조명 쓰는 법을 잘 몰라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 알려달라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오늘 열심히 배우고 왔다. 수업료를 계좌로 보내면(카카오 송금하기..) 분명 안 받을 것 같아 봉투에 돈을 두둑이 챙겨 넣어 갔는데,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끝까지 받지 않고 가버렸다. 나는 그의 노하우와 기술이 얼마가 값어치가 있는지 알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배웠다. 도움 주고 응원해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말 잘 되어야겠다, 은혜 갚는 까치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껏 혼자 해낸 것이 없다. 지금은 사이가 안 좋아졌지만 나를 회사에서 끌어내 준 감독님에게 단연 제일 많이 감사하고 초반에 촬영을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경험이 별로 없는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사람들 모두 죽을 때까지 고마울 것 같다.


사실 요즘 사이가 안 좋아진 그 감독님과 부인의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 나는 부서진 안경을 손에 쥐고서 어디로 가면 고칠 수 있냐고 누군가에게 묻고 있고 감독님과는 여전히 서먹하고 그 주변의 사람들과는 환하게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퇴사를 한 후 나의 상태는 꿈속에서 처럼 부서진 안경을 쓴 것과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하며 생겨버린,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시야를 흐리게 만든 게 아닐까. 그가 그동안 내게 바라던 바가 어떤 형태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신중하게 생각해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어쨌든 의지하고 있던 많은 부분이 사라지니 독립심이 강해지고 책임감도 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들을 얼마나 미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받은 걸 생각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이용당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모습이 부끄럽다.


오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앞으로도 많이 받을 테고 나는 그걸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떤 저의가 있어서라고 미리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내게 주는 선의를 기꺼이 기뻐하며 받고  많이 돌려줘야지. 결심을 하고 또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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