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금방 달아나버린다.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려면 적어두는 게 제일이다. 조명 쓰는 법을 잘 몰라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 알려달라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오늘 열심히 배우고 왔다. 수업료를 계좌로 보내면(카카오 송금하기..) 분명 안 받을 것 같아 봉투에 돈을 두둑이 챙겨 넣어 갔는데,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끝까지 받지 않고 가버렸다. 나는 그의 노하우와 기술이 얼마가 값어치가 있는지 알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배웠다. 도움 주고 응원해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말 잘 되어야겠다, 은혜 갚는 까치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껏 혼자 해낸 것이 없다. 지금은 사이가 안 좋아졌지만 나를 회사에서 끌어내 준 감독님에게 단연 제일 많이 감사하고 초반에 촬영을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경험이 별로 없는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사람들 모두 죽을 때까지 고마울 것 같다.
사실 요즘 사이가 안 좋아진 그 감독님과 부인의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 나는 부서진 안경을 손에 쥐고서 어디로 가면 고칠 수 있냐고 누군가에게 묻고 있고 감독님과는 여전히 서먹하고 그 주변의 사람들과는 환하게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퇴사를 한 후 나의 상태는 꿈속에서 처럼 부서진 안경을 쓴 것과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하며 생겨버린,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시야를 흐리게 만든 게 아닐까. 그가 그동안 내게 바라던 바가 어떤 형태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신중하게 생각해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어쨌든 의지하고 있던 많은 부분이 사라지니 독립심이 강해지고 책임감도 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들을 얼마나 미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받은 걸 생각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이용당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모습이 부끄럽다.
오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앞으로도 많이 받을 테고 나는 그걸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떤 저의가 있어서라고 미리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내게 주는 선의를 기꺼이 기뻐하며 받고 더 많이 돌려줘야지. 그런 결심을 하고 또 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