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as Aug 24. 2023

냉장고 위를 닦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냉장고 위를 닦았다. 고양이가 분명 냉장고 위에도 올라갈 것 같아서 확인해 보니 먼지가 쌓이다 못해 눌어붙어있지 뭔가. 주방용 기름 제거제를 뿌려 먼지를 불리고 팔이 아프도록 닦았다. 다 닦고 나선 안 쓰는 카펫을 접어 깔았다. 오늘 냉장고 호강한 날.


어제는 이게 잘하는 짓일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남편에게 계속 묻다 잠들어놓곤 오늘 아침부터 고양이 물품을 사고 집안 청소를 했다. 마음은 정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래전에 사둔 고양이 이동장도 포장지를 뜯어 냄새를 빼려고 베란다에 두고 창틀, 문틀, 손잡이까지 모두 닦고 밖에 나와있는 그릇들도 선반 안으로 넣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 보니 데리고 와서 잘 키워보겠다는 결심이 선다. 포기한 자유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고양이 한 마리 못 키우면 아이는 어떻게 키우겠냐고. 너의 책임감이 겨우 이 정도였냐고, 잘할 수 있다고 냉장고를 벅벅 닦으며 속으로 다그치고 다짐하기를 여러 번. 


당장 필요한 고양이 물품을 사니 장바구니 가격이 고양이 담 뛰듯 훌쩍훌쩍 올라간다. 고양이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정말 맞는구나 싶다. 돈 정말 많이 벌어야겠구나 싶어 오늘 청소만 하고 쉬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 포트폴리오를 돌렸다. 포트폴리오는 지난주에 다 만들었는데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 어영부영 보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목록을 적고 몇 군데 보냈다. 책임질 것이 늘어나니 추진력이 생긴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을 때까지 매일 보내봐야지.


그런데 메일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난관이 있다. 작은 브랜드들이야 대부분 홈페이지에 메일이 적혀 있는데 조금 큰 기업들은 계열사들이 많아서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이 고객 센터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내게 메일을 보내준 담당자들의 메일 주소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국내든 해외든 어떻게 하면 담당자들의 메일을 알 수 있을까? 국내에선 대부분 대행사를 거쳐 일을 하던데 대행사에 포트폴리오를 돌려야 할까? 부탁을 해 볼만한 몇몇 인물이 생각나는데 그들에게 부탁해 볼까. 그런데 클라이언트 없이 나의 작업만으로 돈을 벌 순 없을까?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인데.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청소하느라 오늘 미뤘던 작업들을 하고 자야겠다. 마음이 분주하면 해야할 일을 미루는 버릇을 올 해는 정말 고치려고 한다. 고양이가 오면 좀 더 부지런해지겠지. 


남편은 또 홍콩으로 출장갔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매달려온 남편에게 요즘 좋은 소식이 있어서 기쁘다. 나도 그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던 일이 오늘 해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엘의 뜻을 찾아보니 기쁨의 외침, 기쁜 소식. 벌써 좋은 예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노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