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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Sep 05. 2023

인간의 일에 대하여

노엘이 온 후로 하루 일과가 달라졌다. 노엘은 새벽 여섯 시면 일어나는데 다행히 남편과 나도 원래 그 시간에 일어난다.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노엘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씻은 후 밥과 물을 주고 노엘과 조금 놀아준다. 그리고 남편과 오트밀 우유에 그래놀라, 사과, 커피를 먹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미적대다 운동하러 간다. 나열해 보니 별 것 하지 않는데 오전 시간이 이것만으로도 다 간다. 노엘에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노엘과 노는 시간이 대부분, 이제 열흘 남짓 지났으니 정신 차리고 시간을 타이트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곤히 자고 있는 노엘에게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걸 참고 있다.


최근에 또 좋은 꿈들을 정말 많이 꾼다. 작년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는데 곧바로는 아니었지만 정말로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이번에도 내심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 맞이할 좋은 일들은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번엔 그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고 나서 그게 정말 좋은 일이었구나, 하고 깨닫곤 했는데 그때서야 내 안에 '내게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범함에 절여진 상태. 한평생 감옥에서 살다 나오게 된 죄수가 막상 석방되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는데 꼭 그 상황 같았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너무나 극적이라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모든 영화들이 현실의 은유고 비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하루하루 별 일이 없다. 마지막 촬영을 한지가 한 달이 되어가고 있고 조급한 마음도 누그러졌다. 이젠 일이 있고 없고는 내 힘 밖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없을 때마다 불안해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내다 보면 또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요즘 공부하는 게 참으로 즐겁다.


예전엔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립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요즘은 좋든 싫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공통적 운명은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어딘가엔 속해있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등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다.


대신 나의 세상은 조용하고 고독하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바람에 물러나고 있는 구름처럼 세상과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는  같다. 그러다 다시 바람이 반대로 분다면. 내가 있어야  자리로 데려다 준다면. 그래 준다면.


떡볶이를 사들고 집으로 가고 있다. 구름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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