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친구가 놀러 왔다. 고양이를 보러 온다고 했는데 고양이는 잠깐 보고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쏟아내는 걸 보니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었구나 싶었다.
친구는 미혼이다. 혼자 늙어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커리어도 10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고, 그 사이에 돈을 모아놔야 할 텐데 월급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재테크에 열심이었는데 덕분에 또래보다 모아놓은 돈도 꽤 되고 집도 한 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저축과 투자를 꼬박꼬박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엔 불안함과 우울함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결혼할 생각은 있냐고 물었더니 생각은 있는데 괜찮은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우울한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돌아갔다.
6개월 만에 만난 그녀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
불안감은 본능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울 수 없다. 통장에 수십억을 쌓아 놓는다고 해도 사람은 없던 걱정도 기어코 만들어 낼 존재들이란 걸 안다. 그런데 불안감이 본능이라면 그것을 고조시키는 건 사회가 아닐까. 혜진이와 그녀의 친구들 모두 요즘 상태가 비슷해서 정신의 약과에서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다고 했고 나의 다른 지인들도 만나보면 모두 어딘가에 쫓기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얼마 전까진 나도 그랬다. 우리는 터질 때가 된 것이다.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것에 잠식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나의 방법은 불안감을 없애려고 싸우지 않는 것이다. 물리쳐야 할 감정이라면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평온하고 불안한 사람. 행복하고 불행한 존재, 가볍고 무거운,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는 존재. 50%의 악과 50%의 선.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어른이라는 환상을 걷어내니 긴 시간이 흘러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