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을이 왔다. 날씨가 갑자기 선선하다. 온도를 체크해 보니 23도. 지난 한 달간 헬스장 러닝머신으로만 뛰다가 오늘 밖으로 나왔다. 30분 연속 달리기를 목표로 뛸 때는 30분이 아득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50분 연속 달리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30분은 쉽다.
오늘 처음으로 밖에서 최고속도로 달려 보았는데 최고 속도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점점 더 속도가 붙는 내 다리가 정말 신기했다. 달리기를 할 때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 순간 정말 날아오르는 기분.
오늘따라 길에 호랑나비가 정말 많아서 발을 디딜 때마다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어려운 일을 하고 나면 그 전 것은 쉬워진다. 내가 성장했음을 알아챘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계속해서 그다음을 찾게 되는데 요즘 일적으로는 그다음이 없는 상태라 더욱 달리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체력도 많이 좋아지고 머릿결도 좋아지고(왜인진 모르겠다…) 얼마 전엔 입양한 아기 고양이도 하루종일 돌봐야 해서 오히려 휴식을 취하기엔 적절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노엘은 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서 하루종일 놀고 자기를 반복한다. 호기심은 얼마나 많은지 모든 것을 물어뜯고 본다. 그런데도 밉지 않고 하루종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게 신기하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아이가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노엘은 하품할 때가 제일 귀엽다.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기획이 조금 난감해서 거절할 요량으로 금액을 높게 부른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클라이언트가 그 가격대로 진행한다고 해서 하게 된 작업이 있었다. 무척 더운 날 야외에서 진행이 되었고 통제할 수 없는 자연물을 찍어야 해서 시간도 많이 지체됐었다. 처음부터 포트폴리오로 쓸 만한 작업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획자가 무안하지 않게, 조금이라도 잘 나오게 최선을 다 해 찍었는데 결과적으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선을 다 해도 기획했던 그림 그 이상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기획이 아닌가 싶다. 예쁜 화면이나 화려한 카메라 무빙, 편집 스킬이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할 것. 그리고 그것은 심플할수록 더 좋다.
그래서 또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어떤 풀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매일 미친 듯이 뛰고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사랑을 퍼붓고 매일 누구도 보지 않을 이곳에 이렇게 긴 글을 적어대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