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많이 달렸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운동을 하라던 선생님의 조언이 떠올라서였다. 하루 중 하나라도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해야만 이 공백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달리다 걷다를 반복해 10분, 20분 정도 짧게 달렸고 이제는 45분을 내리 달릴 수 있게 됐다. 분명 걷고 싶고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있겠지만 늘 그랬듯 다리 두 개를 지난 후 반환점을 돌아 다시 집에 올 거라는 걸 출발하기 전부터 알고 있다. 왜 그만두지 못할까. 왜 그만두지 못할까. 힘듦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성취감은 익숙해지니 강도가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
오늘은 음악을 듣지 않고 뛰었다. 얼마나 더 힘들어야 잡생각이 들지 않을는지 늘 이런저런 상념들을 길에 뿌리고 오는 것 같다. 달리면서 하는 생각은 일 생각, 사람 생각, 사소하게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등 늘 비슷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건 사람에 대해서다. 신이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에 대해서. 나의 불완전함도 쓸모가 있을까에 대해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복에 대해서. 나는 누구에게 자꾸 용서를 빌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왜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는가에 대해서.
길가에 잡초들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내 키보다 더 커졌다. 익숙하게 뻗은 길을 내리 달린다. 달리던 길을 벗어나 이 풀숲 사이로 숨어들어도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고 도착지는 언제나 집일 것이다. 안도감과 답답함이 함께 밀려온다. 풀 숲이 들썩인다. 무엇이 지나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