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as Sep 13. 2023

갑자기 비

어제저녁에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왔다. 한 달 동안 일이 없어서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평소 지켜보고 있던 브랜드에서 작업 의뢰가 와서 정말 기뻤다. 급박한 일정이라 빨리 미팅하고 싶다고 해서 아직 한 달 남았는데 뭐가 그리 급할까 했더니 추석이 끼어있다. 


'아, 직장인에겐 명절 정말 중요하지. 그랬지.'


추석 때문인지 10월에 일이 많이 몰리게 되어서 기쁜 와중에 걱정도 된다. 일이 매달 고루고루 분배되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의뢰 메일을 받을 때마다 아직도 좀 신기하다. 기존에 했던 일들은 분야를 바꾸어도 직장에 속해서 일했던 터라 회사는 달라도 비슷한 시스템 안에서 일해왔다면 개인사업자가 되고 난 후엔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분야로 들어온 것 같다. 브랜드마다 에디터와 마케터가 있고 그들이 의뢰를 하면 미팅을 하고 촬영 기획을 해서 장비를 빌리고 찍고 편집하고 납품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아직도 매번 처음 같다. 촬영은 기존에 많이 해봤지만 개인사업자가 된다는 건 기술과는 또 다른 영역의 책임감을 짊어지게 한다. 나를 보호해 주는 장치가 하나도 없고 쉴 그늘도 없으며 모든 것이 내 책임하에 있다. 일이 많거나 견적이 크다면 다른 잘하는 사람과 분배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어쩌겠나, 해낼 수밖에 없다. 자꾸 사진과 영상 작업 의뢰가 같이 들어와서 사진 강의를 끊었다. 가장 두려워했던 영업은 사람이 무서운 것보다 일이 없는 게 더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되니 쉽게 극복됐다.


작업실을 임대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미팅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게 부끄러운데 이런 감정적인 이유 말고 실용성을 생각해 봤을 때 정말 필요할까를 따져보면 아직 필요가 없는 게 사실. 그런데 있으면 여러 가지 테스트해 볼 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퇴사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이런저런 사이트들을 알려줬는데 그때 저장만 해두고 흘려들은 정부 지원 사업을 올해가 가기 전에 알아봐야겠다. 올해 나의 남은 과제.


개인 작업을 해야겠다. 정말 개인작업을 해야겠다. 예전엔 누가 의뢰한 일이 아니라도 영상을 만들고 올렸는데 클라이언트 잡을 시작한 후론 괜히 눈치를 보게 된 것 같다. 얼마 전 내게 고민 상담을 한 지인에겐 내 눈엔 거지 같아도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계속 포스팅하라고 독려했는데 정작 나는 그러질 못하고 있다. 입금이 되지 않으면 컴퓨터 전원 버튼도 누르기 싫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다시 그 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초심은 정말 알게 모르게, 눈치채기 힘들 게 잃어가는 거였구나.


작가의 이전글 길을 잃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