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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Sep 25. 2023

질 좋은 삶

3박 4일간 남편과 휴가를 다녀왔다. 해외여행은 4년여 만인데 지난번엔 없는 돈을 긁어모아 다녀왔다면 이번엔 다행히 그 사이 사정이 많이 나아져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었다. 남편은 나의 돈으로 다녀온 4년 전의 여행이 정말 굴욕적이었던 모양인지 여행 기간 내내 드디어 그때의 수모를 갚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구박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4년 전의 일이 아직까지 가슴에 박혀 있다니, 정말 미안하면서도 이젠 그때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첫날은 순조롭지 못했다. 4년 전의 해외여행이 마지막이었으므로 여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르고 공항에 갔다가 여권 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비행기표가 발권 자체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비행기가 떠나기 1시간 전에 알게 됐다. 사실 한 달 전엔가 여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갱신하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무슨 문제 있겠나 싶어 그냥 무시했었다.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한 나에게 화가 났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고 그날 출국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남편이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이중으로 손해니 냉정하게 판단해서 남편부터 보냈다. 예전 같으면 감정적으로 판단했을 텐데 이번엔 의식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 잘한 일이었다.


남편은 먼저 떠났고 나는 사설 업체를 통해 긴급 비자를 발급받아 12시간 후 저녁 비행기로 따라갔다. 비록 하루를 날렸지만 그 사이 집으로 다시 돌아와 노엘을 돌봐주고 노엘을 돌봐주러 온 언니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에 다시는 이런 실수는 없을 것이니 이 정도에서 끝난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우리가 간 곳은 다낭이었다. 예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는데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비행거리, 저렴한 물가, 푸릇푸릇한 자연,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다녀와서 남편에게 나중에 꼭 같이 가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 많은 '나중에' 약속 중에 지켜진 첫 약속이다. 나중에라는 말은 안한다는 말과 같다고 무언갈 미룰 때 마다 불신 가득한 말을 던지곤 했었는데 이제 그 말은 취소하기로 한다.


이번엔 큰 맘을 먹고 미케비치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좋은 리조트를 예약했다. 좋은 시설과 서비스, 아름다운 경관에 반한것도 있지만 유독 생각나는 건 아침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돌아와 조식을 먹었던 순간이다.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 이 단순한 행위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닌가. 삶의 질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나의 시간을 채우는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은 어떤것으로 채우면 좋을까. 욕조에 누워 천천히 생각해본다. 건강한 음식과 단촐한 옷가지,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시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사는 삶, 연민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삶, 실수도 용서하는 삶, 시작되는 것들을 마음 다해 응원하는 삶, 고맙다는 말에 인색하지 않는 삶, SNS 밖에 있는 삶. 분노,우울, 사랑 모든 감정을 인정하는 삶,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삶, 가치 있는 일을 알아보는 삶, 경쟁하지 않는 삶, 다른 누군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 삶, 그리고 자연 앞에 언제나 겸손한 삶. 따뜻하게 내 몸을 감싸는 이 물처럼 온화함이 오래도록 내 삶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자신이 되는 것은 아무 위험도 수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궁극적인 진실이고 나는 두려움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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