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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Apr 19. 2023

숫자로 만든 집

하루종일 책을 읽고 잠을 잤다.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젠 마침내 집 계약금을 치렀다.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실제로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큰 금액이 빠져나가니 실감이 안 난다. 가격도 숫자, 돈도 숫자, 계좌도 숫자. 당장 손에 쥐어지는 실체가 없고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이 숫자를 모두가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는 건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신도 해내지 못한 일을 돈이 해낸다. 아무튼 내 인생의 가장 큰 지름은 이렇게 조용히 치뤄졌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집 한 채 마련했다는 기쁨보다 당장 사라진 돈이 아깝다. 계약금을 내고도 돈이 많이 남았더라면 이런 생각이 들진 않을 텐데.


큰돈을 부동산에 넣고 깔고 앉아 있는 것보다 투자해서 불리는 게 낫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신혼을 작은 전셋집에서 시작했는데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지 그동안 많은 돈을 날렸고 투자 수익은 시원찮으며 집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이젠 정신차리고 허튼곳에 쓸 수 없게 집에 깔고 앉기로 했다.


당장 구멍이 난 통장을 보니 물욕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역시 없으면 쓰지 않게 되는구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사 마시려다가 집에서 따뜻한 차를 텀블러에 담아 나왔다. 일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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