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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22. 2021

여자와 아줌마의 차이

근거 상당한 나만의 기준.

언젠가 후배가 선 본 여자를 내게 인사시켜준 적이 있다. 밤샘이 기본인 영상 편집실을 운영하느라 따로 여자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던 후배는 소개팅은 기본이고, 결혼 정보회사와 즉석 만남 사이트까지 드나들었다. 쓸데없는 눈만 높아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느라 만남이 오래가지 못하는 후배가 한심했지만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부쩍 조급해하는 후배가 안쓰럽기도 했다. 


술자리 때마다 기필코 엄청난 미인과 결혼하겠노라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후배에게, 이미 결혼의 실체를 낱낱이 체험했던 ‘돌싱’인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깨뜨려 주겠노라 침 튀기며 입을 털었다. 하지만 결혼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후배에게 내 경험적 이론은 해 본 자의 여유쯤으로 무시됐다. 그러던 후배가 먼 친척까지 동원한 선을 보고 두 달 만에 결혼 날짜를 잡은 것이다. 후배 앞에 나타난 ‘엄청난 미인’은 대체 얼만큼 미인일까? 묘한 호기심에 내가 쓸데없이 긴장하고 자리에 나갔다. 그리고 강남의 비싼 한우 집에서 그녀를 본 나는 영화나 드라마 화면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구현된 장면에 넋을 놓고 말았다. 


손 안 댄 곳 없이 성형한 얼굴은 그러려니 했다. 그녀는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라 고기는 내가 다 구웠고 쌈도 후배가 싸주는 것만 먹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놓고 젓가락질도 안 하는 그녀를 보고 난 사이보그와 식사하는 줄 알았다. (SF 영화에서는 사이보그가 고기를 굽던데..) 아, 쌈을 받아먹을 때 턱받이로 손이 사용되긴 했다.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강남 유명 미용실에 운 좋게 예약이 돼서 세상 행복하다며 제비 새끼 마냥 입만 쫙쫙 벌리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그녀와 덩달아 희죽 거리며 열심히 입속 깊숙이 고기를 퍼 나르는 후배가 꼴 보기 싫어 난 불판에 머리 박고 고기만 굽다 말았지 아마?


공주는 김치를 싫어해


“그렇게 눈만 높더니, 니가 아주 공주를 만났구나.”

사람 붐비는 곳에서 나까지 세트로 바보 취급될까 싶어 에둘러 한마디 해버렸다. 

‘외모가 아니라 몹쓸 태도 말입니다요 마님.’이란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그러자 고기 씹던 얼굴이 더욱 환해진 그녀가 말했다. 


“오호홋. 저는요~ 결혼해도 김치는 절대 안 담글 거예요.” 

"....?"


‘저능아인가요?’

비꼰 줄도 모르고 워낙 환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길래 저 말도 튀어나올 뻔했다. 

그리고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김치랑 무슨 원한 있나요?”  

“김치 담그는 순간 아줌마 되잖아요.”


뜨아! 역쉬~ 태도뿐 아니라 사고도 엽기였다.  

난 차라리 김치가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줌마가 되는 기준으로써의 김치는 불쌍했지만 저 여자에게 담가지는 김치는 또 얼마나 자존심 상할까.  

얼마 전부터 제빵 학원엘 다니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 손이 그나마 생산적인 일에 쓰인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경악스러운 자리를 서둘러 접고 일어났다. 


공주는 빵을 좋아해


그날 편집실에 앉아 작업을 하는 후배의 뒷모습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쩌자고 후배는 저 여자에게 푹 빠진 것일까? 그간 만났던 여자들이 백배 낫던데. 이쯤이면 콩깍지가 아니라 눈가리개 아닌가?

직업, 나이, 집안.. 뭐, 대충 짐작되는 것이 있었지만, 서로 알고 지내는 동안 몰랐던 후배의 ‘높은 눈’이 참 미스테리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의 인생에 간섭할 마음은 없어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려 했는데..

그런데.. 그녀가 던진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김치를 담그는 순간 아줌마 되잖아요.’ 


불쌍한 김치는 대체 무슨 죄로 여성 비하 은어로 광범위하게 오남용 되다 못해 아줌마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을까? 김치와 아줌마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럼 빵은?

김치는 절여서 아줌마 같고 빵은 바로 구워 나오니 새댁 같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치를 담그면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김치가 전통음식이다 보니 세파에 시달려 억척스러워진, 고전적(?) 한국 여성을 연상시키다 못해 멀쩡한 현대 아줌마에게까지 누명이 씌워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한마디로 세련되지 못하다는 거지.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미지로 아줌마를 구분하고 그래서 ‘아줌마’가 싫다는 그 ‘여자’의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라는 점에서 더 놀라운데다 앞으로 아내가 담근 김치 맛도 못 볼 후배의 뒷모습에서 왠지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대로 후배는 한 일 년 간 매일 빵 도시락을 싸왔다. 덕분에 나를 제외한 출입PD들은 올 때마다 그 여자의 빵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나야 진즉에 그 여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으니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PD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빵 고문을 당했다.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바뀌는 빵에 대한 품평도 해줘야 했다. 후배의 혀는 이미 미각을 잃어버렸으므로.


아무튼 그 김치 사건 덕분에 난 나이 좀 든 여자를 가리키는 아줌마라는 멀쩡한 단어가 왜 비하의 의미로 쓰이는지, 젊은 여자가 아줌마 소릴 왜 그리 듣기 싫어하는지, 그 ‘여자’와 ‘아줌마’의 차이에 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다. 그러다 구분 기준이 딱 생겨 버렸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는 없고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꽤 오랜 시간 관찰하다 어느 날 퍼뜩 내린 나만의 기준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은 김치가 아니라 염치였다. 


바로 (대단히 많은) 일부의 ‘염치없음’이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세련되지 못하다는 이미지를 씌웠다는 거다. 

거기에 ‘배려’ 항목까지 보태면 변별력이 높아진다. 


내가 멋대로 이런 무리한 기준을 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염치는 마모되는 것인가?


한 번은 집에 오는 버스에서 휴대폰에 빠져있느라 옆에 초등학생이 위태롭게 서 있는 걸 못 봤다. 혼자 버스 타기엔 너무 어려서 놀란 마음에 얼른 일어서는데, 둔중하고 뜨끈한 무언가가 미처 다 일어서지 못한 내 엉덩이를 쓸며 자리로 비집고 들어왔다. 아줌마였다. 자기 옆에 있던, 많아야 초등 1~2학년밖에 안된 아이를 못 봤을 리 없는 그 아줌마는 많아야 50대 후반으로 밖에 안 보였다.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를 제쳐두고 부랴부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는 그 아줌마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국 아줌마들은 중년만 되면 손주뻘 되는 아이도 제쳐야 할 만큼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건가? 게다가 이미 남편이라는 남자도 있고 애도 키울 만큼 키우다 보니 생판 모르는 남자의 엉덩이쯤은 아무렇지 않게 허벅지로 쓸어버릴 만큼 성 감각이 무뎌지는 건가? 별별 잡생각으로 끓는 부아를 눌렀다. 그래도 내리고 나니 뭔가 되게 억울했다. 나중엔 면박 하나 못하고 내린 내가 왠지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이 불쾌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준 사건이 그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또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고등학생쯤 된 여자 아이였는데, 참고서를 샀는지 가방을 메고도 두 팔 가득히 책을 안고는 손가락만으로 겨우 의자를 붙잡고 있었다. 


“학생! 여기 앉아!!” 


일어서는 순간, 지난번 기억이 번쩍 떠올라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주위에 ‘이 학생 빼곤 아무도 앉지 마!!’라는 포고인 셈이 됐다. 창피를 무릅쓰고 내가 그 정도 했으면 학생은 그냥 좀 앉으면 좋겠구만, 역시 학생은 학생답게 사양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어떤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앉아버렸다. 학생이 한번 정도는 사양하는 염치를 보였건만, 그 사이를 아줌마의 몰염치가 비집고 들어 온 것이다. 또 뭔가 눈뜨고 날치기당한 느낌이었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내릴 수는 없었다. 


“아줌마! 내가 학생 앉으라고 했지 아줌마 앉으라고 했어요?” 

“애가 됐다자나!!” 

“........”


역시.. 한국 아줌마한텐 씨알도 안 먹혔다.

더 큰 목소리로 나를 쏘아붙인 뒤 창 밖에 시선을 박은 그 아줌마 옆에서 나와 그 학생만 뻘쭘했다. 

뭐, 그 자리는 내가 돈 주고 산 자리도 아니고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인 공용 좌석이니까. 또 이유를 겨우 찾아 위안했다. 그리고 또 의문이 시작됐다. 저 아줌마의 염치는 원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고단한 삶에 마모돼서 이젠 아예 흔적조차 없는 걸까? 

상념을 넘는 집요한 추론 끝에 또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결혼하고 중년이 된 이상 더 이상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세대적이고도 집단적인 합의를 한 걸 수도 있겠구나.' 


이런 의심을 망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근거가 또 있다. 


중년 증후군


한때 ‘슈퍼맘’이라는 휴행어가 있었다. 직장뿐 아니라 육아를 비롯한 집안 살림까지 척척 해내는 한국의 억척스런 기혼 여성을 추켜세웠던 말이다. 

나도 한때 아내를 바깥사람으로 내몰고 스스로 안사람이 됐을 때 학교 녹색 어머니회와 동네 미용실로 마실 다니며 그 용어의 쓰임새를 자주 목격했다. 퇴근길에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던지고 몸을 날려 할인 상품을 낚아채는 광고 모델이나, 지하철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가방부터 던지는 드라마 여주인공을 보고 박수를 치며 낄낄대는 그녀들의 수다는 으레 본인의 ‘슈퍼지수’ 재기로 이어졌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대단한 수퍼 파워를 부렸는지에 대한 그녀들의 자랑들 대부분이 누군가의 피해를 유발했다는 걸 몰라서 떠드는 건지, 본인의 슈퍼지수를 자랑하는 그녀들의 얼굴에선 일종의 자부심마저 어려 있었다. (내가 그 미용실에 발길을 끊은 건 슬프게도 내 앞에서 남편과의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그녀들에게 난 더 이상 남자가 아님을 깨닫고부터다.)   

여성의 가혹한 가사 노동을 미화하는 그 용어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기혼 여성을 대한민국의 중추인 것처럼 떠받들었고, 그 분위기에 취해 그 말에 숨겨진 이면은 모르고 그런 염치없음을 자랑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런 류의 사회적 분위기가 대한민국 아줌마들에게 무의식적 집단 합의를 이뤄 낸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아줌마에서 시작한 내 의문은 주말 지하철에서 막걸리 냄새 풍기며 목청껏 떠드는 산악 개저씨들과, 태극기 부대 선봉에 선 중년 아저씨들이 대규모 전파한 코로나19에 대해 일절 사과 없는 모습과,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도 되레 쌈박질하는 공공의 적이 대부분 중년 남성인 걸 보면 이건 성별 불문하고 대규모로 발생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란 의심으로 비약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젊을 때는 멀쩡하다가 중년이 되면 남의 눈이고 뭐고 오로지 지구가 본인들 중심으로 돈다는 집단 착각에 빠지는 ‘중년 증후군’에 걸리는 거 아닐까 싶은 것이다. 특징은 코로나처럼 전염력도 강할 뿐만 아니라 주위에 분노 유발을 일으킨다는 것. 결코 가볍게 볼 병이 아니다. 그 왜 예비군 증후군이라고, 삼성 엘리트도 예비군복만 입히면 단추 풀고 짝다리 짚게 된다는 그 무서운 병도 있잖나? 

이와 같은 근거들이 내 멋대로의 기준과 진단에 신뢰를 준다. 


공공장소에서 공공의 적인 진상들은 대개 본인이 민폐를 끼치고 있음을 모른다. 하긴, 그걸 알면 염치가 있는 거지. 또한 누군가 지적하면 쿨하게 인정할 줄도 모른다. 꼭 변명하거나 변명거리가 없으면 화부터 낸다.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떤 설렘이 있었다. 

책도 실컷 읽고 이런저런 사람 구경도 재밌을 거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웬걸. 운전하며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 대신 보이는 사람들에게 직접 받는 스트레스가 상상외로 크다. 차를 버린 만큼 유쾌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이제는 마음을 다스리며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금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할 때, 먼저 주위를 살핀 후 내가 양보하려는 상대가 자리에 앉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콜사인과 함께 그가 자리에 앉는 동작과 맞물리게 내 엉덩이를 맞교환하는 번거로운 작전도 세워 놨다.  


얼마 전 버스에서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나이가 얼마나 들었던 간에 세심한 배려와 당연한 염치를 지닌 아줌마가 보톡스 맞은 아줌마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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