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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27. 2023

의사와의 악연 2화

환자의 고통을 남의 일로 여기는 의사들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라 그런지 정확하지 않지만, 서른 초반 나이쯤, 세상 가장 꼴 보기 싫은 여자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이 벌어졌고 분노에 떨던 내 손에 쥐어진 소주잔이 깨져 손바닥 깊숙이 박혀버렸다. 분노는 잠깐이고 뭔가 크게 좆 됐다는 예감에 가게에서 수건을 얻어 손을 감싸고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께 24시 운영하는 병원 응급실로 가 줄 것을 부탁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당직 의사는 움켜쥔 수건을 풀더니 탄식부터 했다. 짐작대로 상처가 심각한 듯했다. 나도 그때 다친 내 손바닥을 처음 봤는데, 실제 피부로 느끼는 고통은 별 것 아니지만 철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면 드러나는 쩍 벌어진 손바닥이 끔찍했다. 의사가 곧장 처치 도구를 찾자 불안감이 크면 헛된 기대감이 생긴다고, 나는 의외로 간단한 처치로 수습이 될지 모른다는 망상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치료가 시작되는 줄 알고 이를 악물었다. 눈꺼풀도 마취 없이 꿰맸는데 손바닥 몇 바늘 꿰매는 정도야 뭐. 까짓 거 마취 따윈 필요 없이 우습게 치료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엉뚱하게도 커다란 핀셋을 집더니 벌어진 손바닥 안을 획획 휘저었다.

       

“끼아악, 꿰에엑. 끄어억..”


괴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지른 비명에 내가 놀랄 만큼 고통이 극심했다. 평생 그런 잔인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결국 나는 고통을 못 이기고 팔을 잡아 뺐다.  

    

“아니... 지금...”     


난 순식간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 말할 기운도 없었다.      


“아프시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의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고 다시 내 팔을 잡았다.      


“아니, 잠깐만..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다친 손을 헤집고 난리세요?”     


통증은 불과 몇 초였던 것 같은데, 이미 눈앞이 뿌예져서 의사의 얼굴로 잘 안보였다.      


“신경이 살아 있는지 보려면 체크해야 돼요.”     


의사는 단호하게 말하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알았어. 잠깐, 잠깐만.”     


난 크게 심호흡을 몇 번하고 손을 덜덜 떨며 내밀었다. 의사가 이번엔 작정을 하고 내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군대서 각목 구타를 기다릴 때도 이렇게 두렵진 않았는데..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앙다물었다.      


“끼아악, 흐악, 우와악,”     


내 입에서 이따위 비명이 나온 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응급실 간호사들이 다 보는 가운데 짐승 소리를 내고 있는 내가 심히 창피했지만, 정말이지 까무러칠 정도로 아팠다. 아니, 그건 차라리 고문이고 공포였다. 몇 초? 몇십 초나 될까? 그 시간이 몇 시간으로 느껴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결국 고통에 질려 팔을 다시 빼버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거 상처가 깊어서 우리는 처치를 못하겠는데요?”

“이런 씨팔.”     


기운은 없었지만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니, 신경이 어쩌고 하더니, 그럼 겨우 상처가 깊은지 보려고 헤집은 거야? 난 그냥 눈으로 봐도 알겠는데? 

     

“아니.. 여태껏 헤집어 놓고... 지금 뭐라고? 그럼... 지금까지 뭐 한 거....”     


나는 침대에 쓰러져 간신히 내뱉었다.


“혈관은 분명히 끊어졌어요.”     


의사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어지러워 신음하듯 말했다.     


“하여간 여기선 치료가 안 되니까 큰 병원으로 가셔야겠네요.”      


의사는 허망한 결론만 툭 던지고 간호사에게 나를 맡기고 휙 사라졌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이 시간에 혼자 큰 병원을 찾아다니기 막막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어디에선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그곳엔 협력병원 명단이 적혀있었다. 비명을 지르느라 기진맥진한 탓인지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피가 계속 흐르는 마당에 택시를 찾느니 응급차가 낫겠다 싶어 이송을 요청했다. 간호사는 나를 원무과로 안내했고 원무과 당직 직원은 자기 부담 비용을 얘기했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지만, 거리와 시간에 따른 비용 합의를 겨우 보고 새벽 세시가 넘어 대형 종합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손바닥을 벌리고 핀셋으로 이리저리 헤집고 난 비명을 지르고. 그리고 딴 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절차에 따른 경고나 예고 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을 막대기 대하듯 하는 그들의 말투와 손길이 소름 끼쳤다. 결국 그 병원에서 한번 기절을 하고 건진 건 접합 전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것도 의사가 아닌 간호사에게. 그래서 난 또 간절한 심정으로 다른 병원을 소개받고 이송차 비용 합의를 봐야 했다. 협력병원 네트워크란 건 뭘까? 왜 직접 협력 병원에 연락해 환자 상태를 알리고 처치 가능한지 물어봐주지 못할까? 그들이 간판처럼 곳곳에 내 걸은 협력 네트워크란 게 사실은 각 병원이 어떤 치료 수준인지는 서로 알바 아니고 유로 앰뷸런스 이송만 협력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날이 어스름 밝아서야 세 번째 병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핀셋으로 손바닥을 후벼 팠다. 결국 남녀 세 명의 레지던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깜박 또 기절했나 보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세명의 레지던트들이 내 앞에서 뭔가 수군덕 거리고 있었고 그중 날 헤집었던 뺀질이 의사는 가위를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고 있었다. 이번엔 저 가위인가? 난 그냥 계속 기절해 있고 싶었다. 그런데 옆에 선 간호사가 링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어떤 처치가 이뤄진 다음에 하는 수순 아닌가? 혹시 기절해 있는 사이 혹시나 내 손을 치료해 놓았나?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바라본 내 손바닥은 여전히 허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가슴이 푹 꺼지며 다시 손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때 대장인 듯 나이 지긋한 의사가 나타났다. 레지던트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그는 외모로 봐도 교수였다. 

      

“어쩌다 다치셨어요?”     


모처럼 나긋한 교수의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생각해 보니 이 당연한 질문을 밤새 처음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유리가 깨져서..”

“유리를 줍다가?”     


의사는 내 예상과 달리 다친 경위를 좀 더 알고 싶어 했다.     


“그게.. 유리잔이 깨져서..”

“유리잔이 저절로 깨져서 손에 박혔어요?”     


이 양반 성격 참 이상하군 싶었다. 자기가 의사지 형사야?     


“아뇨.. 그게 유리잔을.. 잡았는데.. 너무 힘을 줘가지고..”

“그렇죠? 음, 알았어요. 사고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이 의사는 무슨 형사 사건까지 상상한 걸까?        


“확인했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수는 곧 표정을 바꿔 레지던트들에게 물었다.      


“혈관 끊어졌고 신경도 끊어진 것 같습니다.”     


내 손바닥을 후비던 레지던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끊어진 것 같다고? 그럼, 그렇게 후벼 파놓고 또 확실히 모르는 거야?’     


이번엔 교수가 후벼 파겠구나 짐작하고 이건 현실이 아닐 거라고, 악몽이라고 되뇌었다. 이 고통은 대체 언제 끝날까? 난 치료고 뭐고 그냥 뛰쳐나갈까 생각하다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순 없어서 그 레지던트에게 레이저를 쐈다. 

      

‘등신새끼 같으니라구.’     


이윽고 교수는 내 손을 들어 올렸고 난 공포가 극에 달했다. 


“어느 손가락?”

“네?.... 그게... 그..”


교수의 의외의 질문에 뺀질이 레지던트가 우물쭈물했다.

      

“어느 손가락인지 몰라? 다 끊어졌어?”

“.....”     


대장 의사가 태도를 바꿔 묻자 쫄따구 의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교수는 간호사에게 ‘고문 기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러나 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저기요. 의사 선생님. 저 아까 손바닥 후빌 때 기절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병원에서도 기절했구요. 지금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또 그러면 아마 까무러쳐서 못 일어날걸요? 그니까 어떻게... 마취라도 좀 하고 하면 안 될까요? 신경이라 마취하면 확인이 안 되나? 아무튼 어떻게 좀 안 아프게 할 수는 없을까요?”


난 고문당하는 포로의 심정으로 울먹이다시피 애원했다. 그런데 의사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의사는 치료 결과만 중요할 뿐 환자의 고통은 알바 아니란 무언의 대답 같았다. 이윽고 간호사가 고문 기구를 대장 의사에게 건네고 대장 의사는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안 아프면 안 좋은 거고 아프면 다행인 거예요.”     


안 그래도 기절하고 싶은 심정인데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으니 화가 치밀었다. 그럼, 지금껏 아팠으니 괜찮은 건데 뭘 더 확인하려고 그러시나? 억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다행히도 그의 손에 들린 건 핀셋이 아닌 바늘이었다. 저걸로 후비면 조금 덜 아프겠다 싶어 도구의 크기에 우선 안도했다.

     

“잘 봐. 왜들 그렇게 힘들게 확인해? 응?”      


그는 레지던트들에게 훈계하듯 말하고는 내 손을 부드럽게 펴더니 손가락 끝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콕콕 찔렀다.     


“어때요? 아파요?”

“아니요?”

“여기는?”

“아니, 안 파요. 하나도.”

“여기는요?”

“어, 거기는 쪼끔 따끔?”

.

.

.

.

난 그저 끔찍한 고통이 없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아파야 다행이란 사실을 잊고 어린아이처럼 또박또박 씩씩하게 대답했다.

      

“봤지? 세 손가락 나간 거야. 간단하지?”     


대장 의사의 참교육에 레지던트들이 짧은 탄성과 함께 존경의 눈빛을 교환하며 과한 끄덕임으로 보답할 때, 난 만감이 교차했다.      


‘밤새 날 고문한 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난 밤새 뭔 짓을 당한 거지? 배우는 놈들이 배울 때 좀 똑바로 배울 것이지, 이렇게 간단한 걸 못 배워서 환자를 기절하게 해? 애초 환자의 고통에 관심이 없으니 배울 생각도 없었겠지. 그래도 끝내 교수를 만나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지? 처음부터 저 교수가 날 상대했으면 될 일 아닌가? 가만.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 내가 학습 교재야? 지금 날 앉혀놓고 지들끼리 뭐 하는 짓거리지? 그나저나 손가락 신경이 세 개나 나갔다고? 진짜 좆 됐네.’   


자기들끼리 뭐라 쑥덕거리며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 밀려오는 허망함에 쓸려 침대로 쓰러졌다.     


신경과 혈관 접합 수술을 받고 일주일 만에 퇴원할 땐 그래도 제대로 된 교수를 만나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은 줄 알았다. 그러나 이후 네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신경과 혈관이 아물며 피부와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그 교수는 네 번의 박리 수술을 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숨을 쉬었다. 마치 내 피부가 이상하다는 듯. 네 번의 수술 후 다섯 번째 달라붙었을 땐 손바닥 피부가 모자라 더 꿰맬 수 없다고 했다. 매번 피부를 오므려 꿰매다 보니 오른손 바닥은 왼손 바닥보다 좁아져 있었다. 그리고 교수는 덧붙였다. 신경이 잘 자라면 원래대로 감각이 돌아올 것이라고. 그러나 오래 걸릴 것이라고.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 내 세 손가락 감각은 반만 돌아왔다. 그것도 처음 이년 동안 돌아온 감각에서 더는 나아지지 않았다. 난 신경뿐 아니라 인대도 손바닥에 붙어 있는 걸 느끼고 산다. 신경, 혈관, 인대가 이리저리 엉켜 붙어있는 상태에서 신경이 더 자라기를 포기한 지는 오래다. 그저 한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내 성질만 탓하고 산다. 다만, 좋아하던 기타를 바라볼 때나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 날 발견할 때마다 손바닥을 후벼 파던 의사들과 수술 후 제 실력에 자신만만해하던 교수가 떠오른다. 그리고 흰머리 뽑겠다고 산 핀셋은 볼 때마다 끔찍해서 버려버렸다. 돌팔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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