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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9. 2024

의사와의 악연 3화

내가 만났던 의사들 중 유일하게 신뢰했고 지금도 감사한 의사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었다. 어머니가 입원하시고 내가 수발을 드는 간병 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인연으로 내가 진행했던 병원 관련 영상에 출연했던 그는 사십 대 중반의 충분한 경력에도 시립병원에서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환자에게 늘 세심했으며 환자의 상태를 항상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었다. 때문에 몇 달 만에 마주 앉아도 지난번 상태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와의 첫 대화는 항상 환자의 근래 생활습관이었고 늘 환자의 현재 상태에 집중했다.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표정으로라도 같이 아파했다. 별 거 아닌 몸짓이지만 그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는 그와 끈끈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덕분이겠지만 어머니는 많이 호전됐었다.  

    

그가 미국 유학을 간 후 대체된 뺀질이 의사는 처방에 필요한 말만 하고 환자가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표정을 섞어 말했다. 한마디로 최대한 빨리 진료를 끝내려는 흔한 의사였다. 의사가 바뀌자 약도 바뀌었다. 제약사와 의사와의 관계는 의료기 영업을 하는 친구 놈에게 익히 들어 아는 터라 나는 그때부터 어머니께 처방된 약의 성분과 작용, 부작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불편해하시는 증상이 약의 부작용인지 생활 습관 탓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통원진료를 할 때, 전에 없던 증상에 대해 설명하면 건성으로 듣고 현재 앓고 있는 병과 관계가 없는 얘기는 자제해 달라는 역력한 투로 환자나 보호자의 말을 끊었다. 그런 의사에게 어머니도 나도 궁금한 것이든 앞으로 치료 계획이든 물어보기가 싫었다. 그러다 의사에게 괜한 주눅이 들어 할 말을 못 했던 내 자괴감을 폭발시킬 사건이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병이 다시 악화돼 입원하셨을 때 또 한 번 약이 달라졌던 것이다. 난 평소대로 바뀐 약을 검색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작용의 종류와 크기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어머니의 병과 상관없는 작용이 쭉 나열 돼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엉뚱한 약이 처방된 것 같아 그나마 만나기 쉬운 레지던트에게 문의를 했다. 그 레지던트는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무슨 소리냐며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한 번은 불만을 표출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나도 쌓인 게 많아 담당 전문의 호출을 요구했고 그 레지던트는 병원의 명성과 의사의 권위를 내세우며 호위무사처럼 제 상관의 호출을 막았다. 결국 간호사실을 뒤집어 놓고 복도에 나와 병동을 뒤집어 놓을 기세를 보이자 그제야 어머니 담당 전문의가 왔다. 그리고 컴퓨터 차트와 환자 기록지 따위를 홱홱 살피더니 돌연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약이 뒤바뀐 걸 인정한 것인데 그 책임은 밑에 것들에게 있다는 제스처였다. 뒤늦게 나타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권위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보호자인 내게 끝내 사과하지 않고 서루를 집어던지고 사라졌다. 의사는 실력 이전에 정성과 진심이라는 믿음을 준 사건이었다.  

    

반면에 정성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형편없는 실력으로 의사 면허만 가지고 의사 행세를 하는 놈을 만나 개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실력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기본 예의와 치료에 대한 성의도 없었다.      

오랜 불면증을 치료해 보려고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경기도 의왕에 있는 D병원이 한방 협진으로 불면증 치료에 용하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원을 했다. 입원치료를 받은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는데 도무지 소변이 나오질 않았다. 별일이 다 있다 생각할 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후 다음날까지도 소변 한 번 나오질 않고 아랫배만 불룩해지는 거였다. 그쯤 되자 배에 심각한 통증이 시작되고 급기야 앉을 때도 누울 때도 배가 터질 듯 땅겨서 한번 앉으면 몇 시간이고 꼼작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간호사에게 고통을 호소해 봤자 내과 의사에게 전달했다고만 할 뿐 내과 의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어떤 처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성질을 부리며 항의도 해보고 직접 내과 의사 면담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내가 입원한 병동엔 알콜 중독자 폐쇄병실이 함께 있어서 복도 밖으로는 담당 주치의나 간호사의 허락이 없으면 나갈 수조차 없었다. 간호사는 의사에게 전달했으니 기다리라고만 하고 나는 아랫배가 아파서 눕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의사가 회진을 오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아랫배를 움켜쥐고 지낸 지 사흘 째 아침. 이번에도 면담이 성사가 안 되면 병동에 불이라도 지를 각오로 간호사실로 가던 중 복도에서 기절을 했다. 의사들은 기절 정도는 해야 환자 고통의 심각성을 아는지 눈을 떠 보니 내과의 간이침대였다. 멀뚱한 의사의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멱살이라도 잡으려고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아랫배가 아파 그러질 못했다. 대체 사람이 죽겠다는 데 왜 만나주지 않았냐고 겨우 말로 분풀이를 했지만 의사는 환자가 많아서라는 뻔 하디 뻔한 그지 깡깽이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아픈 내 배를 더 아프게 눌러보더니 같이 나가자고 했다.  

    

‘당신이랑 어딜? 왜?’      


뭘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는 나를 부축해 그가 간 곳은 시내 비뇨기과였다. 그것도 본인 자가용이 아닌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이층에 위치한 그 병원은 그마저 피부과로 바뀌어 있었다. 어이없어하는 나를 옆에 팽개쳐 두고 내과 의사는 왜 검색에는 비뇨기과로 나오느냐며 투덜댔다. 자기는 그런 소소한 일에도 불만이면서 환자가 죽겠다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다니. 피부과 의사는 그곳이 원래 비뇨기과였는데 장사가 안 돼서 돈 되는 피부과로 바꿨다고 했다. 그 사정을 충분히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며 대화하는 두 의사. 참, 저런 것들이 의사랍시고 행세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리고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본디 의사는 우리처럼 그냥 직장인일 뿐인데 우리가 쓸데없이 과도한 권위를 쥐어준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부과 의사는 창고에 전에 쓰던 소변 줄이 있다며 잘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소변 줄을 내 고추에 꽂았다. 당장 죽겠는 심정이라 일단은 고마웠지만 피부과 의사가 비뇨기과 처치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의아했다. 의사면허는 응급상황에선 다 통용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소변줄을 꽂으니 소변이 흐르기 시작했다. 줄을 통해서라도 소변이 흐를 때 그 기분이란.. 난 오줌 싸면서 오르가즘을 느낄 줄은 몰랐다. 내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동안 내과 의사와 피부과 의사는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내 병명과 원인에 대해서.. 그러나 끝내 내 병명은 알지 못하고 그저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데 에만 의견 일치를 봤다.      

피부과 의사에게 비뇨기과 처치를 받고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난 알콜 중독자들 사이에서 소변통을 들고 다니는 불면증 환자가 돼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소변이 또 안 나오더니 복부 통증이 시작됐다. 그리고 상황을 전파받은 의사는 역시나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내원’했다. 그리고 복부를 꾹꾹 누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씨발. 이럴 거면 어제 보내지.” 


절로 욕이 나왔다. 그리고 어서 앰뷸런스를 대기시키라고 했다. 보통 전원을 할 때 앰뷸런스로 이송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기네는 앰뷸런스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가 요구할 때 출동하는 사설 업체가 있으며 비용은 환자 부담이라고 했다. 이젠 욕도 하기 싫었다. 얼른 아무 데라도 가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사설 앰뷸런스 안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처럼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아랫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하며 서울 K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복부 CT를 찍는데, 갑자기 방사선사가 소변줄이 보이지 않는다고 내 고추를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소변줄은 분명 고추에 꽂혀 있는데 말이다. 걸려 있기만 할 뿐 기능을 못할 만큼 소변줄이 밀려 빠져나왔다는 결론을 내린 당직 의사는 소변줄을 다시 꽂으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왜 남자 고추에 소변줄을 여자 간호사에게 꽂으라는 건지, 환자는 남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무튼 무심히 소변줄을 꽂고 돌아서던 간호사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어머. 웬일이래?”     


소변줄이 제자리에 꽂히자마자 소변이 줄줄 흐르는데, 이 속도로는 소변통 하나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던지 간호사는 여유분의 소변통을 미리 가져다 놨다. 예상대로 두 번째 소변통으로 갈아 끼우는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니, 배에 소변이 얼마나 있는 거야?”     


입원실로 옮기고 비뇨기과 의사가 회진을 왔다. 그리고 물었다.      


“처음에 어디에서 소변줄을 꽂으셨다고요?” 

“피부과요.”     


난 억하심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더니 의사는 눈만 껌뻑일 뿐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뇨. 소변줄이요, 소변줄. 그거 어디서 처음 꽂으셨냐구요.”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옆에 있던 여자 레지던트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재차 물었다. 의사도 레지던트도 불쌍해서 사실대로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고개를 가로젓고 이번엔 레지던트가 눈만 껌뻑였다.      


“원래 성인 남자의 방광 용량은 최대 800cc 입니다. 방광 아시죠? 오줌보. 보통 400cc가 넘어가면 오줌을 참기가 어려워서 안절부절못해요. 그리고 800cc가 넘어가면 방광이 터집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1200cc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방광이 안 터진 게 이상할 만큼 오줌이 배에 차 있었다는 겁니다.”  

    

“그 오줌이 다 어디 있었을까요?”     


그 D병원의 돌팔이 내과 의사와 피부과인지 비뇨기과인지 정체불명의 의사에 대한 분노를 잊고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환자분은 천만다행으로 방광이 터지기 전에 옆으로 살짝 찢어졌어요. 그리로 오줌이 새서 큰 변을 피하신 겁니다.”     


천만다행인 건 맞지만 또 열불이 났다.      


“만약 방광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내장 기관이 터지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 내가 묻고도 우스웠다.  

    

“그럼 배 째고 수술하는 거죠. 최소 삼 개월짜리 사태가 일어날 뻔한 걸 천만다행으로 피하신 겁니다.”   

   

의사는 계속 천만다행을 강조했다.      


“그럼 제 병명은 뭐에요?”

“...? 그쪽 의사가 말씀 안 해주시던가요?”

“둘 다 모르던데요?”     


이번엔 의사와 레지던트가 서로 마주 보고 눈만 껌뻑였다.      


“급성 요로 감염이에요.”     


소변길이 감염됐다? 고로 고추가 감염됐다? 여자 레지던트를 앞에 두고 그런 병명을 들으니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후끈거렸다.       


“저기요. 저 성생활 못한 지 몇 달 됐거든요? 이상한데 간 적도 없고..”     

   

이번엔 둘 다 피식 웃었다. 이런. 이것들이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간 사리가 나올 만큼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그쪽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원인이 될 만한 게 하도 많아서 딱 짚어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먼저 계시던 병원은 공동 샤워실이죠? 그럼 거기서 감염됐을 수도 있고..병동 내에서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됐을 수도 있고...하여튼 저희가 원인까지 파악할 수는 없어요.”   

  

내 결백이 입증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또 한 번 울화가 치밀었다.      


“저기요, 선생님. 그 의사들을 의료과실로 신고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걸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그러네요. 아무튼 찢어진 부위가 잘 아무는지 며칠 경과를 지켜보죠.”     

의사는 제 말을 마치고 획 돌아서 레지던트와 함께 총총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니들이 같은 의사를 고소해라 마라 하겠냐?’     


대답을 알고 물었지만 씁쓸했다. 난 그들을 고소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먹고살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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