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1화

개떡 같거나 호떡 같거나

by 미스틱

입영 열차도 아니고 의정부로 향하는 그냥 일반 기차에 홀로 앉아 있던 재수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앞으로 펼쳐질 군 생활의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살면서 군대에 관해 들은 바가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전쟁 상황이라면 모를까 3.83선 앞에서 그냥 총 들고 보초 서는 곳이 군대 아닌가? 그렇다고 배웅하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입대 길에 오른 때문도 아니었다. 부모님이야 하루도 장사를 쉴 수 없는 분들이라 기대도 안 했고, 친구 놈들은 갖가지 이유로 군 면제받은 신의 아들들이라 입대 배웅이니 뭐니 의미도 모르는 놈들이었다. 전날 송별회라는 것도 녀석들에게 술 먹을 구실 외에는 어떤 의미가 없었다. 그저 진탕 마시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뿌리다 지쳐 헤어졌을 뿐이다. 그런 놈들이기에 앞으로 한참 못 만난다는 사실은 재수에게 어떤 미련과 아쉬움도 주지 못했다. 만약 입영 열차라면 까까머리 군바리들 속에서 동병상련 심정으로 아예 눈물이 주르륵 흘렀을까? 차라리 일반 열차를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로 건너편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는 멀쩡한 사내놈이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을 찔끔거리는 게 이상했는지 자꾸 곁눈질을 했다. 아줌마와 눈이 마주친 재수는 얼른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잽싸게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재수가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건 어릴 때부터 습관이었다. 손바닥이나 손등은 왠지 계집애들이나 어린애가 하는 짓으로 여겨 일부러 들인 버릇이다. 이제 한 시간 정도 후, 모르긴 몰라도 보충대에 들어선 후로 오랫동안 찔끔거리는 눈물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재수가 입대 영장을 받아 든 건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군대와 입대에 관해 문외한인들 보통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전에 영장이 나온 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재수가 받아 든 영장에는 몇 번을 눈 씻고 봐도 딱 일주일 후라고 적혀 있었다.


“국방부 개새끼들”


재수가 신체검사를 받은 병무청 이름으로 날인 돼 있는 영장을 들여다보다 그만 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깐 현기증이 일어 휘청거렸다. 그날따라 입을 꾹 다문 채 호떡만 뒤집던 어머니 모습에서 느꼈던 어떤 불길한 예감을 오후가 되어서야 앞치마에서 슬그머니 꺼낸 보인 입대 영장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여자 친구 하나 없어 딱히 정리할 것도 없던 재수가 그 시간이 날벼락같았던 건 오로지 이제 막 홀리듯 반해버린 한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엄마랑 호떡 팔자.”

“켁! 무슨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그냥 엄마 옆에서 호떡만 담아주면 돼. 이 추운 겨울에 노가다 뛰지 말고.”


재수 나이 21살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방구석에 처박혀 비디오테이프만 산처럼 쌓는 게 재수의 일과였다. 바로 전 해에 입대를 연기해 놓고도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없는 재수가 문밖으로 나갈 때는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하거나 빌릴 때뿐이었다. 영화감상은 그나마 재수가 가진 유일한 취미였는데, 대여료를 벌 참으로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을 한지 일주일이 되던 날, 재수 어머니가 호떡 장사 조수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재수 어머니의 장사 감각은 천재적이었다. 계절마다 종목을 바꿔가며 장사를 하시던 재수 어머니는 가게하나 없이 좌판과 리어카로 장사를 했는데도 웬만한 가게 못지않은 수익을 냈다. 그런 그녀가 겨울마다 했던 포장마차를 치우고 뜬금없는 호떡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시장 주정뱅이들에게 지쳤다는 것이 재수 어머니가 겨울 업종 변경을 한 이유였다. 덕분에 한겨울 좁은 제수네 집 아랫목은 늘 발효되느라 마구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 고무 다라이 차지가 됐다. 또 덕분에 재수와 재수 누나는 밤마다 화장실에 갔다 오는 길에 초등학생보다 키 큰 다라이가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커멓게 서있는 모습에 번번이 기겁을 해야 했다.


‘저 어마한 양을 손바닥만큼 끊어 구우면 몇 개가 나올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그냥 아침에 바로 반죽해서 바로 구우면 될 텐데 뭐 하러 새벽에 반죽을 해서 저 고생을 하실까?’

아침이면 다라이 너머까지 흘러내린 누런 반죽을 보며 재수는 그런 걸 궁금해했다.

‘아마 적은 재료로 최대한 많은 양을 생산해 내려는 수법 같은데, 대체 우리 엄마는 발효라는 꼼수를 어떻게 생각해 내셨을까? 역시 장사엔 천재시구나.’ 뭐 이런 생각도 했다.


아무튼, 어느 날 이른 저녁.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재수 어머니가 기름에 쩐 손으로 재수 손을 잡고 하신 말씀은 재수에겐 청천벽력 같은 ‘부탁’이었다. 재수는 몹시 당황했다. 툭하면 사고를 치고 다녀도 눈치 한번 주시지 않던 어머니의 명령 아닌 부탁이라 해도, 번듯한 가게도 아닌 시장 바닥 리어카에서 호떡으로 손님을 대한다는 건, 아무리 백수라지만 재수의 가오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일이었다. 노가다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노가다는 젊을 때 사서하는 고생이라는 인식도 있어서 대학생들도 당연하듯 하는 일인 데다 공사판 아저씨들이 학생이냐고 으레 물을 정도로 저변이 넓은 산업이지만, 호떡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닌가? 왠지 애들 장난 같기도 하고 ‘호떡’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운 어감도 거슬렸다. 인절미나 시루떡처럼 제사나 잔치에 쓰이는 것도 아니고 한 겨울 길 가다 군것질거리로 먹는 호떡이라니. 호떡과 노가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떡은 좀 아닌 것이다.


‘어머니. 호떡이라니요? 저 아직 팔팔한 나이거든요? 그런 저더러 호떡을 팔라구요?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차라리 사람 많은 시장에서 어머니께 빈대 붙어사는 백수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서 있으라고 하세요.’라고 말은 못 하고

“엄마. 그게.. 나 아직.. 무슨 호떡을.. 아무리 백수라도... 인절미...웅얼웅얼...”


재수가 입에 중풍 걸린 것 마냥 웅얼거리자 재수 어머니는 바로 한숨을 푹 쉬며 푸념을 했다. 어머니의 푸념은 오기로 깡 소주를 들이키시고 취했을 때 말고는 들어본 적 없는 재수에게 이번 어머니의 호떡 사연은 간단치 않았다.


시장에는 기존의 호떡집이 세 개나 있었다. 분식집에 둘. 떡집에 하나. (호떡도 떡이다 이거지.) 학생과 주부 등 기존 고객을 떡볶이와 제사떡으로 이미 확보한 그들은 큰 매장을 자본 삼아 시장 내 호떡시장을 손쉽게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후발 주자이자 점포 하나 없이 시작한 어머니는 기죽지 않고 특수 설탕과 숙성 발효 반죽이라는 차별화된 재료로 호떡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실리콘 밸리에 IT 벤처기업이 있다면, 청담동 재래시장엔 벤처 호떡리어카가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특수 설탕이란 흑설탕에 계피가루를 넣어 알싸한 단맛을 냄과 동시에 땅콩과 호두가루를 첨가해 고소함을 극대화한, 일명 호떡 꿀을 말하는 것이고 숙성 발효 반죽이라 함은 베이킹 소다와 이스트, 찹쌀을 섞어 만든 밀가루 반죽으로 달콤 고소함은 물론, 반죽이 굽는 도중 터지는 것을 방지하고 치즈처럼 쭉쭉 늘어지기까지 해 식감을 극대화한 기술을 말한다. 재수는 이 설명 부분에서 부푼 반죽을 보고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생산을 하려는 어머니의 꼼수로 의심한 제 이마를 탁 쳤다. 도대체 그 바쁜 일상 속에서 언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셨기에 이런 신기술을 개발하셨을까. 그야말로 아이디어와 기술로 승부한 호떡계의 진정한 벤처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 기술집약적인 어머니 표 호떡은 당시 이백 원 하던 호떡 값을 백 원씩이나 올려 받았음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 부분에서 재수는 또 제 무릎을 탁 쳤다. 어머니의 도전 정신과 배포에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곧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치는데, 그건 손님이 너무 많아 어머니 손에 기름 마를 새가 없다는 것. 아니, 장사하는데 손님이 많아서 문제라니. 이 대목이 재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굽다가 손에 묻은 기름을 닦고 돈을 거슬러 줄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아예 돈 통을 까놓고 손님더러 직접 계산하라고 한다나?


“엄마. 호떡이 그렇게 잘 팔려?”

“아유, 말도 마, 얘.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 알지? 그게 우리 집이야.”

“아! 거기가 거기야?”


재수 어머니가 푸념을 시작할 땐 먼 산 보듯 딴청 하며 듣던 제수의 입은 이미 벌어진 지 오래였고 침까지 흐르고 있었다. 가풍일까? 푸념으로 시작하신 재수 어머니 이야기는 금세 자랑으로 이어졌다. 재수 아버지도 재수 누나도 허풍과 과장엔 동네 으뜸이었다. 재수라고 다를까. 재수 역시 뭔 얘기를 하면 사실을 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져 제 자랑으로 자연스럽게 잇는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다만, 어머니는 다를 줄 알았건만... 재수는 처음 시작할 때 하루 50여 명이던 손님이 지금은 수백 명이라는 대목에서 ‘어머니가 호떡 팔더니 뻥이 커지셨군.’ 했다.


“너 저 다라이 하나에 호떡 몇 개 나올 거 같애?”


재수의 표정에서 의심을 읽은 재수 어머니는 갑자기 정색한 얼굴로 물으셨다.


“글쎄... 한 이백 개?”

“오백!”

“꺽!!”


어머니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서슴없는 대답에 재수는 턱이 빠진 듯 입이 쩍 벌어졌다.


“잠깐! 하나에 삼백 원씩 오백 개면... 응? 십오만 원? 워우~ 엄마 캡인데?”


하긴 시장 좌판에 앉아 바지락 까서 누나 첫 출근 때 르망 승용차를 뽑아주셨던 어머니라 뻥이라 할 일이 아니었다. 재수 어머니는 내친김에 다 털어놓자는 심산인지 다시 한번 푸념을 늘어놓는데, 한창 장사할 저녁 시간에 반죽이 모자라 못 팔고 먼 걸음 오신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야 하는 미안함, 그런 손님께 죄송해 반죽을 더 하고 싶어도 힘이 부쳐 못하는 안타까움, 근래에는 오후 서너 시만 되면 은행이나 회사, 동사무소 등에서 간식으로 백 개씩 주문하고 기다리다 보니 그 주문량을 맞추느라 서서 먹는 손님에겐 신경을 못 써서 죄송하고,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겐 추운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어쩔 줄 모르시겠다는 과도한 양심 등 벤처 기업으로써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고객 만족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특히, 그런 그들에게 미안해서 돈도 제대로 못 받고 공짜로 주는 게 하루 몇 천 원어치는 될 거라는 대목에서 재수는 침을 꼴깍 삼키다 사래가 걸렸다. 재수의 하루 노가다 일당이 이만 원이었다. 보통 삼만 원 주는데, 인력 사무소에서는 기술 없는 잡부라고 만원 깎았다고 했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삥땅 친다고 믿는 재수는 그 만원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그런데 하루 몇 천 원씩 손해를 본다고? 갑자기 그 돈이 피 같은 자기 돈으로 느껴지자 제 주머니에서 비디오테이프 서너 개 값이 주르륵 흘러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투철한 고객만족 정신에 말미암은 재수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푸념은 다 듣고 보니 한탄이었다.


‘더 벌 수 있는데 혼자라서 더 못 번다.’


사실, 재수 마음은 어머니의 호떡 사연을 듣던 중에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호떡 팔아서 하루에 십오만 원이면 어림잡아 한 달에 삼백! 재수가 좋아하는 짜장면 한 그릇이 1400원인데...후덜덜. 이건 대박 사업인 거다. 문제는 아이템이 빵도 아니고 그나마 떡도 아닌 가오 떨어지는 호떡이라는 건데.. 중, 고등학교 시절에도 가오 하나로 열등감을 이겨낸 재수에겐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불안한 시선에 아랑곳 않고 뭔가 심각히 고민하던 재수는 순간 자신의 가오를 세울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 올린다.


“엄마. 전화 놓읍시다.”

“????”

“그 은행이랑 동사무소 사람들한테 미리 주문받자고.”


그 순간에 재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역시 장사 천재인 자신을 빼닮아 영특한 아들을 바라보는,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는 무언의 눈빛. 재수는 그런 어머니의 눈빛을 읽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 업계 최초로 주문용 전화까지 있는 호떡집이라면 일단 보기에 젊은 청년의 도전 정신이 엿보이는 벤처기업으로 보일만한 것 아닌가?

그날 밤. 재수는 반죽이 담긴 다라이 두 개를 아랫목에 고이 모셔놓고 찬 윗목에 누워 개떡 같은 청춘이 호떡 같은 청춘으로 전락하는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슬며시 들었다가 자신이 진 빚을 일부라도 갚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뒤섞여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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