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3화

열등감

by 미스틱

시장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엔 강남에서도 으뜸가는 부촌, 압구정동이 있었다. 그곳 한 복판에 있는 중학교에서 사춘기를 시작한 재수는 부잣집 애들과 가난한 집 애들의 차이부터 깨우쳤더랬다. 부잣집 애들은 우선 풍기는 외모에서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피부가 하얗고 옷차림도 단정했지만 특히 냄새가 달랐다. 재수네 동네 사람들에게선 냄새가 났다면 그들에게선 향기가 났다. 그때는 그게 교양이고 스스로 가꾼 내면과 외모라는 것까진 몰랐지만 애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설명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재수는 자신과 친구들, 그리고 재수네 동네 사람들과 달리 부잣집 동네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엇을 분위기와 이미지로 직감적으로 구분하는 재능을 사춘기 때 체득했던 것이다.


못 사는 동네에도 드물긴 해도 예쁜 여자가 있긴 했다. 그러나 재수가 생각하기에 그건 타고난 생김새만 예뻤을 뿐 풍기는 분위기마저 예쁘건 아니었다. 재수가 고등학생 때, 동네엔 두 명의 미녀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재수 친구 누나는 골목을 지날 때면 동네 어른들이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라고 한 마디씩 하고 우리 동네에 서울대 입학 플래카드는 못 걸어도 미스코리아 플래카드는 걸 수 있겠다고 침 튀기며 칭찬할 정도로 빼어난 얼굴과 기럭지를 자랑하는 미인이었다. 하지만 재수가 보기에 미스코리아 출전 미인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천박한 이미지를 풍겼더랬다. 때문에 어른들이 왜 그렇게 미스코리아 타령을 하는지 재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를 다 드러내며 억지 미소를 짓는 얼굴과 뻥튀기처럼 부풀린 머리, 풍선 같은 가슴은 재수에게 전봇대에 붙어있는 에로 영화 포스터를 떠올리게 할 뿐, 신비롭거나 이성적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어떤 분위기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재수가 보기에 그 누나 역시 시원한 이목구비에 발육 좋은 신체를 가졌음에도 어딘가 싸구려 냄새가 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그 누나의 걸음걸이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출전인들이 걷는 폼 그대로였다. 그러나 친구네 집이나 골목에서 마주친 그 누나의 모습은 영 딴판이었다. 성질머리가 어찌나 고약하던지 마음에 안 들면 제 동생 머리통을 잡아 흔들거나 친구를 거드는 재수한테 쌍욕을 퍼붓는 또라이로 변신하곤 했다. 그뿐인가? 발랑 까지기까지 해서 비록 삼류이긴 하나 명색이 대학생인 오빠들이 집적댈 때는 순식간에 순한 양의 얼굴로 변신해 백치 웃음을 짓곤 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동네 백수나 건달이라고 차별을 두지 않았다. 재수가 생각하기엔 한마디로 저급한 싸구려 미인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때 막 들어선 주공 아파트에 사는 누나였는데, 그 누나는 동네 형들이 감히 넘보지도 못할 베일에 가려진 여자로 취급됐는데, 그 이유는 누구도 말한 번 붙여 본 적도, 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말도 표정도 없이 동네를 지나가는 그 누나의 얼굴엔 항상 침울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 분위기는 마치 ‘접근 시 폭발!!’이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아서 그 누나가 출몰하면 재수와 친구들 뿐 아니라 동네 형들도 원숭이처럼 뛰어놀다가도 우물쭈물 골목길을 터주었다. 실제로 동네 유지 행세하는 집 큰 아들이 말을 붙였다가 싸대기만 맞은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까 재수는 중학교 시절에 ‘못 사는 동네 예쁜 여자는 얼굴만 예쁘지 모진 성격과 가난한 분위기는 숨기지 못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가난한 집에 살며 강남 8학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그 가설을 이론으로서 확립한 것이다. 때문에 전날, 비록 멀찌감치 스치듯 본 그녀지만 재수는 특유의 직감으로 이 동네 여자가 아니란 걸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장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강림하시니 하늘이 그녀를 더러운 시장으로부터 가려주기 위해 몇십 년 만에 엄청난 폭설을 퍼부은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그녀가 이 더럽고 시커먼 시장에 혹시라도 다시 나타나려면 또 몇십 년이 지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폭설이 한 번 더 내려주길 바라는 눈으로 맑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봤다.


비록 그날은 그녀를 못 봤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재수는 혼자 리어카를 끌고 조기 출근을 했다. 그러길 삼일 째. 맑은 날씨임에도 그녀가 다시 강림했다. 역시 정확히 시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무진동으로 걸어갔다.


'예압!!!!'


재수는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몇십 년이 아니라 삼일만에 출몰했으니 필시 이 시장을 지나야 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니어도 자신이 그 자리만 지킨다면 며칠에 한 번은 그녀를 볼 수 있다는 환희에 재수는 새벽부터 일어나 반죽 다라이를 싣고 콧노래를 부르면 조기 출근을 했다. 재수 어머니는 그런 재수가 뒤늦게 철들어 효도하는 줄로 착각했다. 재수 어머니는 그래서 매일이 행복했고 재수는 그녀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행복한 겨울이었다.


재수는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자주 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녀가 출몰하는 요일과 시간대를 알아야 했다. 어디서도 못 본 독특한 옷차림과 화장. 그리고 무지하게 큰 가방. 그럼 시장에서 지목할 곳은 딱 하나. 마트 건물 3층에 위치한 라사라 복장학원. 재수는 자신의 추리력에 감탄하며 그 건물 계단을 뛰어올랐다. 허구한 날 본 추리영화의 힘이었다. 그간의 백수 생활이 무가치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솟구쳤다. 그 자신감은 학원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고 호기롭게 데스크로 향하게 했다.


“저기요. 여기 수강생 중에 키는 요만하고 머리카락은 이만하고 가방은 이따만하고..”

“네? 누구라구요?”

“그니까 키는 요만하고 머리카락은...”

“아니, 이보세요. 그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알아요?”

“...음.. 얼굴은 무쟈게 이쁜데 그 분위기가.. 하여튼 눈썹 화장이 특이한데 말이죠. 그걸 무슨 화장이라 그러죠?”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야? 아저씨 누구세요?”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재수를 보던 데스크 안내원의 표정이 표독스러워졌다. 아마도 재수를 여자나 쫓아다니는 놈팽이로 여긴 게 분명했다. 재수는 당황했다. 자신감에 너무 취해 막무가내로 들이민 자신을 후회했다.


“아, 그게.. 저는 사실은 요 앞 호떡집에서 그 뭐냐 조수로..”

“호떡이고 시루떡이고 간에 왜 누굴 왜 찾느냐구요?”


상대의 태도와 말투로 보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캐는 건 이미 실패했다.


“관둡시다. 관둬. 내 참.”


재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근데. 학원 이름이 복장 학원이 뭡니까? 복장 학원이.. 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촌스럽게 말이야.”

화풀이를 하고 돌아서는 재수를 안내원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문을 열고 나온 재수는 침을 퉤 뱉고 문에다 가운데 손가락을 슬그머니 올렸다. 그리고 돌아서다 문 옆에 붙은 수강표가 눈에 들어왔다.


‘오전반 10시에서 16시.. 오후반 16시에서 22시.’

“어우, 등신새끼.”


재수는 제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무대뽀 정신으로 면박을 당했지만 성과도 얻어 이제 그녀가 오전 10시 등원, 4시 하원임을 알았다. 학교도 보통 이삼십 분 일찍 등교하는 걸 보면 그녀의 등원 시간은 재수만 서두르면 문제없었다. 문제는 하원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정신없는 오후 참시간이라 까딱하면 그녀의 모습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서 이후 그 시간만 되면 눈은 손님들 머리통 사이로 시장골목에 박아둔 채 손은 호떡을 담고 돈을 거스르는 묘기를 해야 했다. 덕분에 손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타박을 받았지만 그래도 재수는 싱글 벙글이었다. 거의 어김없이 제시간에 그녀가 나타나 주었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그녀를 바라만 본지 한 달쯤 됐을까. 이게 웬일인가? 그녀가 친구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재수 앞으로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 호떡집으로 들어온 것인데 재수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눈 한 번 마주치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언제나 고개 푹 숙이고 걷는 그녀가 재수는 늘 야속했었다. 그런데 지금 재수 앞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니 이젠 눈이 마주치는 게 두려웠다. 만약 눈이 마주친다면 아마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이러지?’


여자 앞에서 쑥맥은 아니었는데. 농협과 동사무소 누나들과 농담 따먹을 만큼 넉살도 좋은데. 혹시 그녀는 진짜로 천상에서 내려온 걸까? 재수는 아무리 신비로운 여자라지만 이렇게까지 떠는 자신이 이해가 안 됐다. 호떡집까지 몇 걸음인데 그녀가 그 거리를 걸어오는 동안 재수의 머리엔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재수를 보았고 재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토록 이 순간을 기다렸건만 막상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려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녀와 친구는 직접 호떡을 종이에 싸 집어 들었다. 재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 죄..죄송합니다.. 제가 싸드려야 하는데..”


자기가 할 일을 두고 멀뚱히 서서 손님이 직접 하게 했으니 진심 미안함에 나온 말이지만, 어쨌거나 말을 붙인 꼴이 됐으니 그녀의 대답이라도 듣고자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호떡만 오물조물 뜯었고 엉뚱하게도 친구가 대답했다. 대답조차 없이 호떡만 씹는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 낙담하던 재수가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달라졌음을 알아챈 건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난 후였다. 긴 생머리가 단발머리로 변한 것이다. 긴 머리 때도 신비로웠는데 지금은 신비에 세련됨에 아담함에.. 대체 이 여자는 어디까지 아름다워지려는 걸까? 친구와 소곤거리며 대화를 하는 걸 보니 사람은 맞는데 살며시 웃는 표정조차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천상의 여인 같아 재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채 바라보느라 친구가 돈을 내미는 것도 못 본 재수가 아차 하는 찰나 그녀와 딱 0.1초간 다시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재수가 본 그 눈빛은 손님이 무심히 호떡집 조수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직감이 안 맞은 적이 거의 없는 재수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그 찰나의 눈빛에서 읽었다. 그리고 그녀와 친구가 돌아서 멀어지는 모습을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라봤다.


“엄마. 사랑해.”


재수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북받치는 감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쩔 줄 몰라 하기는 재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껴안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재수를 기름 묻은 손으로 감싸 안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몸을 맡기는 수밖에.


“얘가 왜 이래? 아침을 잘못 먹었니?”

“아니. 호떡집에 취직시켜 줘서 고맙다고.”


재수는 이번엔 호떡집게로 호떡판을 드럼 치듯 두드리며 괴성을 질렀다. 지나던 행인들이 깜짝 놀라 발길을 멈추고 미친놈 보듯 재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눈이 한 번 마주쳤으니 이제 적어도 한 번은 재수를 향해 시선을 줄만도 한데 그 이후로 그녀는 매일 그곳을 지나면서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재수는 낙담한 나머지 혼자 설레발 떤 것을 후회하고 급기야 오래된 열등감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곱게 자란 듯 귀티가 흐르는 얼굴. 드물게 세련된 차림새. 역시, 그녀는 재수와는 거리가 너무 먼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본인이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라면 왠지 말이라도 붙여 볼 용기가 있겠지만 대학생도 아니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호떡집 조수나 하고 있는 데다 그렇다고 목표도 없는 자신이 그녀에게 말을 붙일 용기는 용기라기보다 양심의 문제같이 느껴졌다. 한때 어머니의 평생소원이었던 대학생이 돼 보겠다는 목표를 가졌으나 대형 사고를 치고 포기한 걸 이렇게 땅을 치고 후회할 줄 몰랐다. 그 대형 사건이란 별 것도 아닌 일로 친구를 두들겨 패 전치 6개월짜리 병원 신세를 지게 한 일이었다. 덕분에 합의금과 병원비로만 자동차 한 대 값을 물게 됐었다. 물론 시장 좌판에서 장사하는 어머니가 일수 돈을 얻어 처리했지만 재수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수는 21년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자신의 초라함을 처참히 실감했다. 가난이 창피했던 재수는 실로 창피한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날들이 자신을 자각한 재수에게 안타까운 날들로 바뀌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개 같은 내 인생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