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5화

-보충대-

by 미스틱

입대라는 캄캄한 현실이 그녀의 쪽지로 인해 그다지 막막하지 않게 된 입대 날 아침.

잠에서 깬 재수는 근거 있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과음을 한 다음 날이면 으레 드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재수는 반사적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손을 굴려봤다. 그런데...


‘없! 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집어 까고 탈탈 털어도 나오는 건 먼지뿐이었다. 그녀의 쪽지가 없었다. 바지고 윗도리고 다 뒤집어 헤쳐 놓고 찾았지만 없었다.


‘아, 씨발. 좆 됐다.’


땅이 푹 꺼지면서 그 끝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순간 눈앞이 노래지더니 어질어질 비틀거리다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재수는 믿을 수 없는 지금 상황이 꿈이기를 빌며 제 뺨을 수차례 때렸다. 술이 덜 깬 재수의 뺨이 얼얼한 걸 보니 꿈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쪽지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전날 거쳤던 술집을 다 뒤져? 그러나 아침 8시에 문을 열 술집은 없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먹은 집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본 그녀의 쪽지 내용을 다시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숫자를 뺀 나머지 글씨만 기억날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숫자랑 궁합이 안 맞는 자신의 머리를 원망하다 그대로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군대 가지 말까?’


입대하기도 전에 자살하고 싶었다.


재수는 청량리 역에서 혼자 기차에 올랐다. 재수가 연락을 못하는 이상 그녀를 이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오랫동안 삭막하고 낯선 군대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재수의 마음을 도끼날로 후벼 팠다. 술을 탓하며 차창에 머리를 박기도하고 송별회랍시고 모인 친구들을 원망하며 앞 좌석 등받이를 주먹으로 쳐도 막막함과 안타까움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내가 언제 군대 가고 싶다고 했냐고. 왜 가만있는 나를 군대로 부르냐 말이다. 군대만 아니면 지금쯤 신나게 호떡을 팔며 그녀와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을 텐데.


“이 국방부 개새끼들아!!!”


재수는 자기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악을 썼다. 아까부터 재수를 흘끔거리던 건너편 아줌마가 화들짝 놀라 다른 자리로 허둥지둥 피신했다.


의정부라는 곳은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음에도 무척 낯설었다. 황량한 벌판이 이어지다가도 문득 논밭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시내인가 싶은 곳은 주로 단층짜리 건물들이 이어져있어 드넓은 하늘이 휑하니 다 보였다. 서울에서 평소에 이런 하늘을 봤다면 가슴이 탁 트였겠지만 지금 열차에서 본 넓은 하늘은 뻥 뚫린 재수 마음처럼 허망하고 황량했다. 보충대가 시야에 보이자 재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


보충대 앞에는 부모 앞에서 고개 숙인 놈들, 애인을 부둥켜안고 질질 짜는 놈들, 둥글게 모여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놈들.. 별의별 놈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런 무리 속에 혼자 서 있는 제 모습도 어색하거니와 온통 자책에 빠져 있던 재수는 민둥산을 바라보고 줄담배만 피워댔다. 그럼에도 재수는 왠지 애인과 두 손잡고 애틋한 눈빛을 교환하는 새끼들에게로 자꾸 시선이 갔다.


‘지랄하네. 어디 키스만 해봐라.’


재수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끈 뒤 침을 퉤 뱉고는 일부러 그 무리들을 사이를 헤쳐 벌려 놓으며 보충대 입구를 건넜다. 마음이 지옥이어서 일까? 지옥문을 통과한 기분이었다.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3월의 햇살이 비치던 연병장과 달리 건물 뒤편 그늘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거기 입소자들 빨리빨리 안 옵니까?!!”


쩌렁한 목소리가 공기를 차갑게 갈랐다. 방금 전 정문에서 들은 안내방송에서의 친절함이 싹 가신 매섭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앞 연단에는 십여 명의 군인들이 각 잡힌 자세로 도열해 있었는데, 군모 아래로 비친 매서운 눈빛에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의 지휘대로 움직이며 각 내무반으로 이동한 입소자들은 나무 침상에 몸을 풀었으나 난생처음 맞이한 환경에 주눅 들어 인사도 못 나누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재수는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다른 녀석들의 행동만 주시하고 있었는데, 유독 재수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다들 침상에 앉아 긴장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녀석 혼자 벽에 기대 누워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눈여겨본 것은 재수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다른 누군가 녀석에게 말을 걸었고 녀석이 대꾸를 하자 그 주위로 한 둘씩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내무반 전원의 눈이 녀석에게로 쏠렸다. 재수도 녀석이 하는 말이 궁금했지만 그 꼴이 마치 생일 파티 하는 반 친구에게 우르르 몰려드는 국민학교 애들 같아서 그만두었다. 웅성웅성 놈들의 시끄러운 잡담에 신경 끊고 싶기도 하고 괜한 경쟁심도 생겨 재수도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런데 하필 그때 문이 왈칵 열리더니 천둥 같은 호령이 쩌렁하게 터졌다.


“어쭈? 침상에 자빠져 있는 놈 누굽니까!”


다들 의문의 녀석에게 몰려 있다 보니 벌러덩 누워있는 재수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나 보았다. 놀란 재수의 상체가 오뚝이처럼 벌떡 세워졌다.


“아직 싸제인입니까?”


꼿꼿이 다려진 군복의 사내가 여전히 군모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을 쏘며 무리들을 훑으며 호통을 쳤다. 다른 놈들이 후다닥 제 자리로 흩어져 주섬주섬 몸가짐을 고치는 동안 재수는 ‘싸제인’이란 말뜻을 헤아렸다.


“누워 있던 놈 일어납니다.”


존댓말과 욕을 섞은 그의 말이 재수를 지칭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재수는 공포에 휩싸였다.


“여기가 집 안방입니까?”

“아니요.”

“요?”

“네”

“네?”

“니까??”

“니까?”

“입니다?”

“하~ 나, 이 새끼...”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른 채 질문인지 답인지 헷갈리는 대화가 오갔다.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뭔가 더 말하려던 조교는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리에 앉습니다.”


자기가 앉겠다는 건지 재수더러 앉으라는 건지 헷갈린 재수는 앉은 듯 선 듯 엉거주춤 애매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벽에 기대 누워 떠든 사람 일어섭니다.”


재수가 호명될 때부터 미리 자세를 고쳐 잡고 있던 의문의 녀석이 벌떡 일어섰다. 아마도 조교는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내무반 전체를 꿰뚫었나 보았다.


“여기가 기숙삽니까?”

“아닙니다.”

“그럼 왜 벽에 기대 누워있었습니까?”

“시정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습니다.”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질문과 대답인 데다 조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앉고 동시에 가부좌를 트는 녀석은 확실히 의문의 녀석이었다.


그날 오후, 훤칠한 키에 어딘가 달라 보이는 군복차림의 몇몇이 나타나더니 입소자들을 연병장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입소자들의 키와 시력 따위를 묻더니 조건에 맞는 몇몇을 데리고 사라졌다. 재수는 그들이 특수부대 같은 살벌한 곳으로 끌려가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어린이날 본 공수부대니 특전사니 하는 부대는 페인트칠 한 얼굴에 짐승 같은 눈빛을 하고 벽돌을 이마로 깨거나 각목을 정강이로 부러뜨리는 무시무시한 군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영화에서 본 실미도 같은 곳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겠다 싶어 오싹했다.

“어이, 형씨. 아까 왜 손 안 들었어요? 키는 되는 거 같은데.”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길에 의문의 녀석이 재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걔네 뭐 하는 애들인데요?”


녀석이 궁금했지만 왠지 먼저 말 거는 게 싫었던 녀석이 먼저 말을 걸자 재수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듯 얼른 질문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녀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참 희한한 친구네. 아니, 군대 온 사람이 육본을 모르고 왔어요?”

“....?”

“아 놔. 육본 몰라요? 육군 본부?”


재수는 육군 본부는 알았다. 용산 삼각지에 있는 곳. 정문 앞에는 키 크고 다리 길고 빤질빤질한 헬멧 쓴, 왠지 간지 오지게 나는 군인이 서 있는 곳.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왜 입소자 중 일부를 데리고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궁금했지만 재수는 녀석에게 물어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 알지, 알아. 육군 본부. 그런데 그러는 그쪽은 왜 육본에 안 가고..”


재수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으로 녀석이 의심할 타이밍을 뺏어버렸다. 그런 재수의 모습을 눈 껌뻑이며 보던 녀석이 한마디 했다.


“안 간 게 아니고 못 간 겁니다. 체력에서 떨어졌수다. 내일 수방사는 꼭 붙어야 하는데..”


수방사? 여긴 또 뭘까? 군대 소방서? 어디 있는 걸까? 재수는 궁금증이 마구 몰려오는 걸 참았다. 하지만 군대 문외한으로 비치기 싫어서 엉뚱한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싸제인이 뭐예요? 성당 신부 말하는 건가?”


재수의 질문에 녀석은 웃는 듯 벙 찐 듯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게... 음.. 신부가 아니라 사회. 군대에선 외부 사회를 싸제라고 해요. 사회에서 만든 걸 싸제품이라고 하고.

“아,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재수는 혼잣말하듯 내뱉고 자리로 돌아왔다.


‘앞으로 군대 용어 배우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군.’


저녁 식사 시간 직전, 의문의 녀석이 말한 육본에 끌려갔던 이들이 돌아와 풀어놓은 썰을 듣고 그들은 끌려간 게 아니라 차출이라는 것을 깨닫고 재수는 침상을 치며 후회했다. 육본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에서, 그것도 재수의 나와바리인 이태원 옆 용산 삼각지에서 군 생활한다니. 재수는 군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입대한 스스로를 원망했다가 아무도 군대를 가지 않은 자신의 가문을 욕하기에 이르렀다. 수방사가 뭔지는 모르지만, 육본이 온 다음 날 오는 걸 보면 두 번째로 좋은 곳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다음 날 의문의 녀석 말대로 수방사에서 모집관들이 왔다. 그리고 전날과 같이 키부터 물었다. 재수는 모집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추려진 병력이 대략 100여 명. 호구 조사, 종교, 치아 상태, 몸에 문신, 가족 3대 내 납북자 유무, 일가친척 중 전과자 유무 등 이해할 수 없는 검사를 한 후 추려진 병력이 80여 명. 재수를 포함한 그들은 시력 검사 및 엉덩이를 까고 똥꼬를 보여주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신체검사를 마치고 2차로 체력 측정을 받았다.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넓이 뛰기, 달리기 등 고등학교 체력장 같지만 강도는 훨씬 쎈 테스트로 30여 명을 가리고 그중 연병장 다섯 바퀴를 돌아 가장 빨리 들어온 8명이 가려졌다. 믿을 것이라곤 운동신경과 체력밖에 없던 재수는 각 테스트를 종합 1위로 통과했고 의문의 녀석은 역시 의문의 8위를 했다

.

내무반으로 지쳐 돌아온 차출병들이 다른 입소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피로를 잊고 우월감에 도취돼 있을 때 재수는 교육 훈련기간 6주를 마치고 수방사 자체 훈련 2주 후에 일주일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내무반에서 혼자 펄쩍펄쩍 뛰었다. 그녀가 군대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훈련기간 6주 정도 편지가 없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서 2주 정도야 뭐 궁금해하며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확히 8주 후에 부대를 나서자마자 호떡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기다린 나머지 그녀는 더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전날까지만 해도 그녀를 잃은 듯 상실감에 눈물이 났고 캄캄한 군 생활에 억장이 무너졌건만 하루 만에 이런 반전이 벌어지다니. 재수는 이제 다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군대. 음.. 재밌는데?’


펄쩍펄쩍 뛰다가 돌연 히죽히죽 웃는 재수를 입소자들은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특히 어제부터 재수를 희한한 놈으로 본 의문의 녀석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수방사라는 걸 알게 되고 차출이 되어 그녀와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게 다 의문의 녀석 덕분이다. 녀석이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재수는 의문의 녀석을 애정 가득한 눈길로 쳐다봤다. 아무래도 녀석과 친해질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의문의 녀석은 재수의 눈빛에 움찔 놀라 뒷걸음질 치다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충대의 마지막 날까지 모집관은 끊임없이 왔다. 재수를 포함해 수방사 병력 8명은 교육대 입소 전날, 침상에 과자를 쌓아 놓고 자축 파티를 했다. 어느 곳에도 차출되지 못한 입소자들은 그런 그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재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재수는 비록 체력 테스트지만 누구를 이겨서 좋은 위치에 선 게 아무래도 꺼림칙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들의 안위를 외면하고 자신의 목표를 다져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선, 자주 만나기 위해선 저들을 짓밟고서라도 휴가를 따 내야 한다. 그녀라는 이유 앞에 동료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는 것이다. 재수는 세뇌하듯 다짐하고 눈을 부라리며 과자를 입 안 가득 물고 우걱우걱 씹어댔다. 그런 재수를 의문의 녀석은 의문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입소자 중엔 체력 테스트까지 가기도 전에 종교 때문에, 일가친척 중에 전과자가 있다는 사실, 2대에 걸친 일가 중 빨갱이로 몰린 먼 친지가 있었다는, 의지와 상관없는 가정환경 때문에 차출에서 배제된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원치 않게 다 같이 군대에 끌려 온 날 누구는 가당치 않은 이유로 순식간에 군생활의 미래가 바뀌었고 그에 따른 상대적 우월감과 열패감이 교차하며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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