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훈련
덕환의 말대로 맹수 신병 교육대는 정말이지 빡셌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자신 있는 재수조차 예상을 훌쩍 넘는 훈련강도와 얼차려에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조교가 휘두르는 발길질과 개머리판은 절대 공포였다. 입소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조교의 군화 발에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 이송된 동기가 둘이나 있었다. 훈련이 고통이었다면 그들의 폭력은 공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건 고된 훈련에 매일 기절하듯 잠들다 보니 그녀를 그리워할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바닥에 머리를 박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 차라리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재수는 더욱 그녀를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 희한하게 몇 초라도 더 버틸 힘이 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낸 하루는 그녀를 만날 날을 하루 앞당겼으니까.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가니까. 8주에서 7주 6일, 7주 5일..
재수는 맹수 교육대에서 20세기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아직 후진국임을 깨달았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밥숟가락을 지키기 위해 밤마다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총원 대비 밥 수저가 두세 개씩 모자라 아침이면 누군가는 조식을 손으로 퍼먹어야 했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 때면 바지 고무링을 이용해 손목에 밥 수저를 묶고 취침해야 했다. 술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 바람 소리에도 깨는 재수가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코를 골며 잔 것은 교육대에서부터였다. 그래서 밥 수저를 두 번이나 도난당했다. 식사시간도 워낙 빠듯해서 식판에 산처럼 쌓인 밥을 대충 우물거리다 삼켜야 했고 샤워 시간도 1인당 2분이어서 몸에 비누를 골고루 바를 시간도 없어 스윽 훑듯 문지르고 대충 물을 튀기고 후다닥 튀어나와야 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으로 초를 세다 샤워 중인 놈이 굼뜨다 싶으면 물도 안 묻은 제 몸에 미리 비누칠을 해 놓거나 놈이 몸에 물을 뿌리기도 전에 끌어내야 했다. 그럼에도 훈련병끼리 몸 씨름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DNA는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때 왼발이 나가면 오른팔이 저절로 앞으로 나가도록 설계돼 있는 줄 알았다. 군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육대엔 재수가 믿었던 그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태어난 놈들이 정말 많았다. 정말이지 신기했다. 그토록 얻어맞으면서도 왼발과 왼팔이, 오른발과 오른팔이 같이 움직이는, 일명 고문관 놈들 때문에 단체 기합을 받을 때마다 재수는 하늘을 원망했다. 인간은 왜 동등하게 태어나지 않는가? 동네 바보 형처럼 남들 모두 ‘뒤돌아 가!’를 하고 있을 때 혼자 씩씩하게 앞으로 가다 열차 뒤꽁무니마냥 두 박자 늦게 뒤돌아서는 놈들, 좌와 우를 구분 못해 동기와 키스하는 놈들. 정말이지 왜 그럴까, 뭐가 문제일까 궁금했다. 희한한 건 그런 고문관들은 낮에 그렇게 조교한테 얻어맞고 동기들한테 욕을 처먹고도 먹고 잘 때는 너무도 잘 먹고 잘 잤다. 그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사격 훈련 전 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연병장을 구르던 재수와 동기들은 잘하면 내일 사격훈련이 연기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더랬다. 덕환이 호송차 안에서 풀었던 썰을 기억해 낸 건 사격 훈련 당일 날 아침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이곳은 저주받은 게 틀림없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거짓말처럼 참으로 맑고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덕환의 썰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었다. 실제로 팔다리가 살짝 까졌을 뿐인데 급성 세균 감염 피부병, 일명 봉화직염에 걸린 훈련병이 몇 주 만에 소대마다 서넛씩 됐다.
그러나 재수는 날씨가 맑은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버지뿐 아니라 삼촌들조차도 군대를 다녀온 분이 단 한 명도 없는, ‘신의 가문’ 자손인 재수도 유일하게 아는 군대 상식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격 훈련에서 20발 중 20발 명중자는 포상 휴가를 간다는 것. 입대할 때부터 오직 재수의 관심사였고, 그녀의 연락처를 잃어버린 채 열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던 포상휴가. 바로 그걸 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수방사 병력이라 몇 주 후 휴가가 예정 돼 있다 한들 사격훈련 포상 휴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해야만 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더구나 그녀를 만나기 위해 군 역사상 최다 포상 휴가를 받아내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을 했던 재수였다.
햇빛 맑은 그날. 재수와 훈련병들은 오리걸음으로 사격장을 올랐다. 그리고 사로에 입장하기도 전에 몇 시간을 굴렀다. 훈련병은 그냥 앉혀 놓으면 안 된다는 국방부 지침이라도 있는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원산폭격, 쪼그려 뛰기, 팔 굽혀 펴기, PT 체조 등 끝없는 기합이 이어졌다. 사격장 사고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군기를 바짝 세워야 하는 거라지만 이건 군기를 세우는 수준이 아니라 조교들 분풀이로 느껴질 만큼 가혹했다. 오전에 탈진자가 두 명이나 나올 만큼 교관과 조교는 훈련병들을 몰아붙였다. 오전부터 진을 다 빼놓고 무슨 힘으로 방아쇠를 당기라는 건지 재수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오후가 되어서야 소총에 실탄이 채워진 탄창을 장착할 수 있었다.
“탄알 일발 장전.”
“탄알 일발 장전!!”
드디어 교관의 구령에 복창이 쩌렁하게 울렸다. 재수도 복창과 함께 노리쇠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가늠자에 얼굴을 바싹 밀착했다. 시커먼 타겟 위에 ‘포상 휴가’라는 글씨가 네온처럼 타다닥 켜졌다.
“사격 개시!”
교관의 명령이 떨어지고 재수는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느낌으로다가 터지지 않게 끌어오듯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고 느리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사로 밑 훈련장에 재수와 훈련병 전원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역대 기수 중에 니들처럼 사격 못하는 놈들은 처음 봤다. 평균이 10발이야. 나머지 10발은 어따 말아먹었니?”
교관의 목소리는 화가 났다기보다 아예 짓궂은 농담조였다.
“43번 훈련병 앞으로 튀어나와.”
이번엔 교관의 목소리가 작심한 듯 앙칼졌다.
“네! 43번 훈련병!”
복명복창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쩐 일인지 뭔가 풀썩풀썩 넘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재수 옆 덕환이를 넘어뜨리고 재수까지 쓰러뜨렸다. 아마도 호명받은 녀석이 부산하게 일어나다 옆으로 넘어지면서 도미노 현상을 만든 듯했다.
“어쭈? 이것들이..”
조교의 군홧발이 기다렸다는 듯이 쓰러진 훈련병들을 짓밟았다. 재수는 씨알 굵은 마사토 땅바닥에 머리를 막고 있었더니 머리 껍질이 벗겨지는 통증을 느끼던 차에 통증이 식을 때까지 가급적 느릿느릿 몸을 추슬렀다. 미련하고 고지식한 재수조차 몸을 보호하는 요령을 빠르게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43번 훈련병. 넌 참 전우애가 좋아. 옆 전우 표적에 대신 쏴주고 옆 전우들 쉬라고 주르륵 자빠트려 주고 말이야.”
교관이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니 탄창에 몇 발 들었었지?”
“네! 20 발입니다.”
“그렇지. 20발. 그런데 니 옆 표적에 몇 발 들어갔게?”“네! 모릅니다.”
“30발이야. 그럼 니 표적엔 몇 발 들어갔게?”
“모..모릅니다.”
“빵~ 발~”
“...네..! 알겠습니다!”
“알긴 뭘 알아!!”
퍽 소리와 함께 43번 훈련병이 계단을 굴렀다.
“78번 훈련병! 앞으로!!”
번개같이 자세를 풀고 후다닥 일어선 건 덕환이었다.
“너는 여기 뭐 하러 왔어? 동사무소나 가지.”
이번엔 교관 목소리가 비아냥거리듯 나지막하게 깔렸다.
“훈련받으러 왔습니다~!!”
보충대에서도 봐 온 모습이지만, 덕환은 대답 하나는 군대식으로 참 잘한다고 재수는 생각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관의 군모 챙에 시선을 박고 악을 쓰며 대답하는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훈련받았어?”
“네, 그렇습니다!”
“근데 왜 한 발도 못 맞췄어”
“열심히 쐈습니다!”
“그래? 적이 달려드는데 열심히 허공에다 쏘면 적이 열심히 쐈다고 살려줘?”
“각개격파로 해치우겠습니다!”
“이 새끼가.. 지금 나랑 말장난하는 거야? 여기가 싸제야? 쪼그려 뛰기 100회 실시.”
“실시!!”
녀석은 역시 대답하나는 칼같이 잘했지만, 녀석은 끝내 그노무 주둥이 때문에 쪼그려 뛰기를 하고 또 녀석이 군대식으로 나불대느라 남은 훈련병들의 기합 시간만 길어지고 말았다.
“한심한 것들. 너희들이 다 맹수 교육대 명예에 먹칠을 했지만, 에~ 그러나 오늘 모처럼 우리 교육대 세 기수 만에 만발자가 나왔다. 사격 전에도 말했지만 20발을 다 명중시킨 만발자에게는 3박 4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질 것이다. 77번 훈련병 앞으로!!”
이어진 교관의 호명은 대가리가 깨질 듯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진 재수를 번쩍 깨웠다.
‘77번? 77번이면..’
하도 머리를 오래 박고 있어서 피가 거꾸로 돌아서 인지 재수는 일어나다 말고 몸이 휘청거렸다.
“네. 77번 훈련병!!”
재수는 복창과 함께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런데 재수를 본 교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 기상!!”
웬일인지 교관의 목소리가 기가 살아 쩌렁쩌렁했다.
“잘 봐라. 이게 군인정신이다. 77번 훈련병 뒤로 돌앗!!”
재수는 제식훈련받은 대로 칼같이 뒤돌아 동기들을 바라봤다.
‘내가 만발이라니. 수방사 차출에 이어 사격 만발이라니. 곧 휴가를 갈 수 있다니. 난 참 운 좋은 놈이구나.’
재수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치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밑에 도열해 있는 동기들을 내려 보고 서 있자니 마치 동기들에게 사열을 받는 것만 같아서 감격이 밀려와 시야가 뿌예졌다.
“너희들. 얘 눈두덩이 잘 봐. 이게 군인정신이야. 알았어?
교관의 손가락은 재수의 눈 밑을 가리키고 있었고 목소리는 왠지 들떠 있었다. 재수는 두피가 벗겨지는 통증이 가시고 나니 그제야 눈 밑이 얼얼함을 느꼈다. 아까부터 동기들이 모습이 두세 개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게 눈 밑이 부어올라서인 것 같았다. 가늠자에 얼굴을 너무 밀착하다 보니 소총 반동에 눈두덩이 부어올랐나 보았다.
“봐라. 맞추려고 기를 쓰니까 되잖아! 너희 놈들은 한 마디로 군기가 빠져서 이따위 성적 밖에 안 나온 거야. 알겠나?”
“네~”
훈련병들은 교관의 말이 칭찬이든 욕이든 대답만큼은 우렁찼다.
“좋아. 그런 의미에서 77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부대까지 오리걸음이다. 실시!!”
“실시!!”
이제 한쪽 눈이 거의 감기다시피 해서 거리감이 없어 휘청휘청 걷는 재수에 눈에 오리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가는 동기들이 가까이 보였다가 멀리 보였다가 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야는 더욱 흐려져 재수는 한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 채 걸었다.
내무반에 도착한 재수는 화장실로 튀어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눈두덩이만 부어오른 줄 알았건만 오른쪽 광대뼈가 시퍼렇게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한쪽 눈은 반쯤 감겨 있고 한쪽 광대뼈만 불룩 튀어나온 모습이 마징가 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 같았다. 참으로 낯선 그 희한한 얼굴이 웃고 있어서 더욱 기괴했다.
‘훗.. 아수라 백작이면 어떠냐. 난 곧 휴가다. 으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