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환란의 날들
12월 3일, 그 흉악한 날. 난 병원 침대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운영하던 편의점에서 누나와의 마찰, 전처와 아이들과의 심각한 불화 등의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불면증이 도졌다. 종일 켜져 있던 병실 TV가 밤 10시 취침 시간과 함께 꺼지고, 난 투약을 한 시간 미루고 그날 시작한 ‘개 같은 내 인생’ 프롤로그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내가 쓴 글을 검열하는 시간에 계엄 발표가 있었나 보았다. 다음날 아침, 충전을 하느라 잠시 이어폰을 빼고 복도로 나간 나는 그제야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비상계엄??!!!’
정신과 병동. 즉, 헛소리가 난무하는 곳이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격정적으로 터진 그 얘기는 매우 신빙성 있었다. 윤 씨와 김 씨가 감옥을 피할 남은 방법은 비상계엄 밖에 없으리라는 예지자(?)들의 말을 몇 개월 전부터 자주 들었고, 나 또한 그들의 정신 상태를 보아 그럴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웬만큼 미친 부부여야 말이지. 그렇다 해도 하도 해괴한 짓거리라 현실감이 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병실로 들어가 TV 채널을 뉴스로 돌렸다. 병실 채널권을 쥐고 있는 방장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따갑게 박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예 TV 앞에 서서 분명 조기 종식이라는 자막이 흐르길 바랐다. 내가 아는 윤석렬은 그리 치밀한 놈이 못 되기 때문이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펑크가 나 실패했을 거라고 믿고 바라며 TV를 온몸으로 차지하고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밤의 치열했던 국회 장면이 몇 번 반복되더니 ‘계엄 해제’라는 자막이 흘렀다.
‘그럼, 그렇지. 미친 새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계엄 해제는 그가 치밀하지 못했서보다 선포 시간대, 쓰레빠 신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주저한 군 대원들, 헬기 이륙을 늦췄던 지휘관, 담을 넘어간 의원들 등 온갖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천운처럼 해제된 것임을 알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던 나를 등골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사나흘 후 퇴원한 나는 내란도 곧 종식되고 경기도 곧 좋아질 거라 낙관하며 지냈다. 수면 리듬도 찾았고 잠을 줄여가며 명상과 산책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애썼다. 운영하던 편의점은 안 그래도 매출이 저조하던 차에 내가 2주 가까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매출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빨리 탄핵도 이뤄지고 곧 경기도 회복할 거란 희망회로를 돌리며 하루 11시간씩 주 6일로 근무시간을 늘려 일하면서 매출을 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내란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으며 대통령 탄핵은 마음처럼 빨리 이뤄지지 않았다.
해가 바뀌었다. 경기는 나아지기는커녕 여기저기서 자영업자들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가게도 술을 사는 손님은 늘었지만 안주를 사는 손님은 줄었다. 편의점 특성상, 이익에 치명적인 현상이었다. 사회가 불안하고 개인이 우울하니 술을 더 찾지만 비싼 안주까지 살 지갑 사정이 아니란 상징적 증거였다. 3년 전 대선 이후, 자영업자 폐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뉴스는 이젠 내겐 뉴스도 아니었다. 편의점 3사가 알짜배기 점포만 남기고 폐점 수순에 들어갔고,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 브랜드도 2024년에만 700여 개 점포를 정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특히,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대개의 편의점이 연말 특수는커녕 객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사실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광화문 근방 점포들이나 매출이 늘었을 것이다. 박리다매. 객 단가가 줄어든 대신 객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낮은 가격의 상품을 늘리고 할인행사를 늘리는 등 발버둥을 쳐 그 와중에도 매출을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4월. 드디어 탄핵이 이뤄지고 시민들이 환호가 울려 퍼질 때, 그러나 나는 국가 내란보다 심각한 환란을 맞이하게 됐다. 내 가게가 본사 방침에 따라 폐점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1년 전, 창고 정리를 하다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느라 폐점을 막지 못한 때와 딱 1달 차이 시점이었다. 신이 있다면 나를 두고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걸로 밖에 볼 수없었다. 어이없이 폐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가까스로 찾은 수면 리듬을 4달이 안 돼 또다시 망가뜨려 놓았다. 지난 6개월간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일 매출 20만 원이나 올려놨으니 내 가게가 그 대상이 되리라곤 예상 못했다.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윤석렬 개새끼라고 중얼거렸다.
영혼까지 갈아 넣어 혼신을 다했던 가게이자 내 밥줄이었다. 몇 개월 적자를 보다 이제 겨우 흑자를 볼 시기가 온 차에 닥친 일이라 더욱 분하고 억울했다. 운영에 관해 또다시 누나와 매일 부딪치느라 피폐해지는 마음을 일에 집중하며 견뎠건만, 갑자기 폐점이라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본사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다른 곳으로의 이점을 권유했다. 그것도 4개월 후에. 그럼 그동안 놀고먹을 비용이라도 줘야지만 그딴 건 없었다. 뉴스에 흔한 갑의 횡포였다. 또 그들이 얘기했던 폐점 결정사유는 다 핑계였다. 과거 매출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폐점의 실제 이유를 친했던 본사 직원에게 비밀리에 알게 됐다. 어이가 없었다. 그 당시 그 조건으로 계약을 했고, 이후 매출을 올렸으니 명백한 계약위반이지만, 그들은 교묘히 빠져나갈 방법까지 이미 마련해 놨더랬다. 그것이 다른 곳으로의 이점 조건이었다. 일방적 폐점이라는 내용적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이점 조건이라는 표면적 자구책이 그들의 탈출구였다. 그러나 본사가 권유한 몇 곳은 보기엔 그럴듯했지만, 이 지역에만 산지 2십 년이 넘은 나는 구 단위 상권을 다 알고 있었으므로 현 점포보다 낫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그곳조차 언제 폐점 대상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더욱이 이제 본사 말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 더 분했다. 이걸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며칠을 골머리가 썩어가며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본사와 싸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 본사와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싸웠지만 을이 갑을 논리로 이길 도리가 없었다. 결국, 내가 숙이고 뻔한 다른 곳으로 이점을 해 맨땅에 헤딩하듯 편의점을 계속 운영하느냐, 가맹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투쟁을 하느냐는 선택지만 남았다. 난 투쟁을 하기로 마음먹고 공정위에 고소했다. 편의점을 때려치우고 뭐라도 하면 굶어 죽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법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먹고 살길을 찾았다. 처음엔 할 줄 알고, 해 본 일중에 찾으려 했다. 그러나 영상 바닥에선 이미 퇴물 취급이고, 십여 년 전 했던 몇 달 했던 물류 회사는 이제 체력적으로 자신 없었다. 이곳저곳 두드려봤지만 오십 중반에 중증 불면증을 앓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쉽사리 보이지 없었다. 그럼 안 해본 일은? 난생처음 이력서를 써 보냈지만 답을 주는 곳이 없었다. 자신감이 끝없이 추락했다. 십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막막함은 커져가고 불안감도 커져 불면의 밤이 지속됐다. 불안을 다스리려고 글쓰기에 매달렸다. 퇴고도 없이 막 써 올렸다. 글의 완성도 보다 내가 집중하는 게 중요했다. 그 와중에도 습관처럼 뉴스를 훑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란 세력들의 준동은 여전히 지속됐고 그들에 대한 법의 심판은 지연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내가 지금 나라 걱정을 하다니.’
한심했지만, 생각해 보니 나라걱정이라기보다 정권이 바뀔 여지가 분명하면 경기가 좀 살아나고 본사 방침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뉴스를 봤던 것 같다.
마음 좀 놓을만하면 또 엉뚱한 것들이 내란에 준하는 일을 터뜨려 많은 국민들이 내란성 불면증을 앓고 있을 때, 나 역시 지연되는 공정위의 결론을 기다리느라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불면의 밤들을 보내고 있었다. 샴푸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사흘 잠을 못 자면 나흘째에 지쳐 잠이 들고 또 사흘 못 자는 패턴이 이어졌다.
불행은 왜 꼭 한꺼번에 닥치는지. 하루 11시간씩 일하고도 불안과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와중에 딸과 전처와의 갈등은 점점 격화돼 이젠 진화할 수 없는 화마처럼 커졌다. 자식 둘 중 하나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빚을 내어 아들을 분리시켰건만, 불똥은 이미 지방에 있는 아들에게까지 튀었다. 아들놈은 멘붕 상태가 되었고, 그 여파인지 급기야 보이스피싱에 낚여 수백만 원을 날리고 말았다. 자취하는 녀석이 당장 빈털터리가 됐으니 내 끼니도 거르기 일쑤인 나는 아들의 끼니와 심리적 안정을 도와야 했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강점은 버티기뿐인데, 이 몸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 내 몸부터 챙기자는 각오로 모래 같은 밥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걸어서라도 운동을 했으며, 명상 시간을 늘려 쓰러지지 말자고 세뇌 수준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 일었을까? 어쩌다 지쳐 깜빡 졸다 ‘키세스 시위대’ 꿈을 꾸기도 했다. 눈을 맞으며 버티는 그들 사이에 은박지도 없이 반팔 차림의 내가 앉아 있었다.
나라가 순식간에 변할 리 없듯, 내 개인적 환란도 순식간에 반전되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간 희망 소식이 전해질 거라 믿고 그때까지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버티는 게 유전이라 심리적으로 버티는 건 자신 있었는데, 문제는 경제고였다. 폐점 예정이라 상품 발주를 줄여야 했고, 재고를 줄이기 위해 원가 판매를 하다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빨리 공정위 결론이 나지 않으면 마지못해 이점 한다 해도 그때까지 몇 개월을 손가락 빨며 지내야 할 처지가 됐다. 가게를 열 때와 아들을 분리시키면서 대출을 다 끌어 써서 더 이상 빚을 낼 곳도 없었다.
‘공정위 위원들을 좀 늘릴 것이지. 대법관들도 증원한다는데..’
이렇게 세월만 보내다간 그야말로 거지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절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명상을 하며 깜빡 졸다 뜬금없는 아이디어가 꿈처럼 떠올랐다. 우선 이점 시점이 가장 빠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가계약만 한 후, 본 계약을 이 이유 저 이유 대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 그 기간 안에 공정위 결론이 나면 소 취하를 조건으로 가장 입지가 좋은 곳으로 다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되든 안 되는 일단 배짱을 부려 본사를 압박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고압적이던 본사 간부가 마지못해 수락한 걸 보면 이것들도 아마 공정위 결론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되도 않는 먹고살만한 다른 일 찾는 걸 즐겁게 포기하고 후진 새 점포에 입점했다.
뭔가 싸워 이겼다는 심정으로 지친 나를 위로하며 일으켜 세웠다. 이점 후 그렇게 20여 일 동안 정신없이 남은 상품을 옮기고 근무자를 뽑고 지내느라 봄이 지나가고 있음도 몰랐다. 나 혼자만 바쁘면 뭐 하나? 후진 새 점포는 역시 예상대로 차라리 담배 가게라고 써 붙여야 할 만큼 매출이 형편없었다. 동네가 그랬다. 손가락 빨 각오로 버티며 공정위의 빠른 결론이 나길 매일 기도했다.
간절함이 닿았을까? 이달 초였다. 공정위에서 어떤 통보를 받았는지, 본사에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훨씬 좋은 입지조건의 점포를 제안하며 소 취하를 해달라고 했다. 난 좀 생각해 보겠다며 튕겼다. 오기였다. 그러나 내 마음이 하도 급했던지라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승낙을 해버렸다. 두 번째 이점 후 또다시 근무자를 뽑고 상품 정리 등 할 일이 태산이라 정신없었지만 그 수고가 즐거웠다. 새 점포는 훨씬 크고 입지 조건도 좋았을 뿐 아니라 근방의 편의점 두 곳이 폐점해 독점 상권이 됐으니, 벌어졌던 나쁜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좋게 여길 수도 있고 나쁘게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두 달여간 심각한 마음고생을 했지만, 용케 버텼다는 자부심을 벌었고 반년 가까이 운영한 점포보다 좋은 조건으로 왔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여겼다.
오랜만에 뉴스를 열었다. 아직 미흡하지만 내란 세력들 수사도 가속도가 붙은 모양이고, 대통령 선거 역시 낙관할 만큼 여론이 형성된 듯하다. 이번 사태로 표면적으로만 알았던 극우 세력의 처절한 속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적어도 색깔로 선거를 치르는 행태는 많이 수그러질 것 같다. 또 검찰, 재판부 등 엘리트 카르텔의 그 민낯을 여지없이 봤으니 그들에 대한 국민들 시선도 예전 같지 않을 테고 선출 방식도 바뀔 것 같다. 그게 개혁 아닌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국민들이 3년 동안 울화통 터지며 살았지만, 어쨌든 훨씬 더 나은, 지지부진하던 개혁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대통령을 만날 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조차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일이다. 이참에 싹 다 바꿔버린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완벽히 되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때 또 저항하고, 바꾸기 위해 마음을 모으면 될 일이다. 나도 이제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보고 있지만 또 다른 터널이 올 것이다. 그럼 또 버티고 버티면 될 일이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