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기본에 충실한 삶-

by 미스틱

며칠 전, 유튜브에서 어느 심리학자의 강의에 꽂혀 날이 밝은 것도 몰랐었다. 그는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란 ‘격언’이 잘못 해석돼 언젠가부터 인간은 희망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간 심리학계가 외적 요인을 무시하고 인간의 내면에만 집중한 결과이며, 40~50%의 유전적 요인, 그리고 나머지 50~60%의 수만 가지 외적 요인에 의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했다. 그의 말의 요지는 막강한 유전적 요인은 무시하고 내적인 심리요인만 따진 다는 것이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마음먹기라는 것인데,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그건 일시적이며 충족되는 순간 인간의 뇌는 이미 만족한 것 이상을 요구하도록 설계돼 있어 마음먹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내 경험상 ‘마음먹기’는 순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삶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은 나는 그의 주장을 헛소리라 치부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 외에 나머지 환경, 건강, 인간관계 등 50~60%의 수만 가지 요인 중 행복의 핵심은 관계, 즉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200%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이 지구를 정복한 이유가 인간끼리 집단을 이룬 사실, 그 이유로 육체적 열등을 이겨냈고 문명을 이루었지만 인간이 인간을 가장 많이 죽였으며, 세상 모든 갈등은 사람 간 갈등 때문이었던 역사를 알고 있고, 꼭 역사를 들지 않아도 심리학 문외한인 나도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결국 사람이 가장 큰 스트레스고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였다.


이전에도 밝혔듯이 난 막살았다. 환경이 그러해서 내 성향이 충동적이고 모난 사람이 된 건지, 타고난 성향이 그래선지 모르겠다. 다만, 보통의 사람들이 삶의 기본에 충실할 때 난 기본을 무시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았단 사실만 정확히 안다. 후과를 예측하지 않고 욕구에 충실하게 살다 보니 미래의 재앙을 만들며 살았다. 예전엔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분하고 억울해서 팔자를 탓하기도 하고 숙명이라 여겨 절망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중년을 되어 생각해 보니 그건 팔자도 숙명도 아닌, 그저 내가 만든 과거가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글이란 걸 쓰면서 지난 과거를 돌이키자 그 증거들이 하나둘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젠 돈 많은 사람보다 잠 잘 자는 사람이 더 부럽고, 특출 나고 멋있는 사람보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기본에 충실하게 산 사람의 안정감이 더 부럽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의 특징은 나같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나름의 고충이 있겠으나 그들은 심리가 안정돼 있어선지 문제에 봉착해도 크게 휘둘리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뿐 아니라 그 문제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까지 한다. 그런 그들을 보면 존경심과 부러움이 절로 든다. 반면, 좌충우돌 산 나는 닥치는 문제 자체가 황당하거니와 그걸 해결하려면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근원부터 찾아야 하고,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이상 찾아도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완전한 해결은 없고 늘 불씨를 남긴 채 미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운을 기다렸다.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면 초월한(척) 사고로 세상을 보며 당장의 나를 위로하고, 불안한 미래는 초긍정과 낙관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건 당장의 나를 위로하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일 뿐,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근거가 있으면 자신감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해서 스스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긍정적 사고를 하며 살다 보면 복이 쌓여 행운으로 돌아오리라 믿고 살기도 했다. 덕분에 휘청거리기는 하나 아직 객사는 면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과거는 늘 발목을 잡았고, 그 불행은 늘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난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족'이 울타리가 아니라 굴레라고 믿었다. 내 아버지도 당신의 동생들 때문에 가난을 면치 못했고, 돌아가실 때도 짐을 진 채 가셨다. 내 어머니도 먼저 낳은, 다 큰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사셨고, 자식 둘의 장례 후 곧바로 장사를 하셨을 만큼 어마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사셨다. 몸이 아파도 아픈 기색조차 않으시던,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그런 분이 마지막으로 자식을 잃고는 당신이 평생 짊어진 책임을 다했다며 드러누우시더니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내와 자식보다 동생을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던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에게 제대로 따진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동생들을 책임지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하셨더랬다. 자식들은 육성회비를 못내 허구한 날 반 아이들 앞에서 담임에게 머리통을 두들겨 맞고 있구만, 내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약속 때문이라는 이유는 대체 혈연과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어머니가 시장 좌판에서 시동생들에게 일수 바치듯 매일 돈을 삥 뜯기고, 내 학용품값을 들고 시동생과 싸운 날 밤, 기어이 어머니를 패대기쳤던 아버지를 두고 평생 증오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이란 의미가 학교에서 가르친 것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걸 깨닫고 평생 홀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어른이 된 난, 그때 그 다짐을 잊고 결혼을 했으며 자식을 낳았다.

과거의 다짐을 잊고 결혼을 한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후 이혼을 했다. 그랬음에도 자식이라는 고리 때문에 전처와 때때로 부침을 겪다 보니 선택의 책임이나 대가 보다 ‘연’이라는 질긴 속성에 더 진저리를 쳤다. 전처가 만져보지도 못한 억 단위 빚을 떠 넘겼을 때도, 전처와 아이들과의 불화가 이어질 때도 결혼의 책임으로 문제를 기꺼이 떠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질기고 독한 악연은 역시 혈연이었다. ‘개 같은 내 인생’에서 희화화한 누나다. 어릴 적에 당한 것이야 각자 어려서 그랬다 치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도 난 지속적으로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수천만 원의 돈도 뜯겼으며, 사기를 당해 집안에 압류 딱지도 붙을 뻔했다.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내 삶의 곳곳에 뚜렷이 남아 때때로 나를 흔든다. 어디서 읽은 것인지. 들은 말인지 모르지만, 뚫을 방법이 없으면 피하라고 해서 몇 년간 아예 연을 끊고 산적도 있었다. 하지만 혈연이라는 건 질기고 질겨서 살아계신 부모님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엮이게 됐으며 또다시 악연의 수렁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때문에 트라우마처럼 남은 커다란 정신적 상처도 많지만, 육체의 상처도 남았다. 내 인생의 커다란 상처 중 많은 부분이 누나와 엮였을 때 생긴 것이며 지금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진짜 절망적인 건 혈육에게 당했다는 사실보다 연을 끊지 못하고 산 내 모습이었다. 다시는 믿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당하고 또 당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망각 때문인지, 시간이 불신을 중화시켰는지, 아직도 누나와 연을 끊지 못하고 구멍가게 같은 편의점을 같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시간이 아픔을 중화시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새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몸서리쳤다. 혈연인 누나와의 악연을 어찌하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봤기 때문이다.


4년여 전, 지병으로 죽다 살아난 후에 한 결심들 중, 지금 생각하면 엉뚱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있었다. 그건 바로 누나에 대한 복수였다. 오랫동안 나를 이용했으니 나도 이용해서 복수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누나를 이용해 과거의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만 이용한다고 생각했지 실상은 더 큰 무형의 피해를 입으며 살고 있음을 몰랐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든 근거 없이 긍정하는 원형적 사고든 당장의 평안한 마음 상태를 만들 순 있지만 근원적 이유를 없애지 않는 한 언제고 불쑥 나타나면 당해낼 재간이 내겐 없었다. 편법을 써서 누나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득보다 손실이 더 많았고, 더 심각한 건 이용이라 착각했던 그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누나에 대한 기대심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기댈 사람 하나 없는 걸 인정하고 독고다이로 살겠다고 다짐한 지가 언젠데, 올곧이 정직하게 삶과 맞짱 뜨지 않고 이용한답시고 뾰족하게 날을 세우며 살다 보니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든 셈이 됐고 편법으로 일상을 산 결과 그 후과는 뿌린 대로 자라나 스트레스와 불안을 지속적으로 야기했다.


근원을 없애지 않는 한 문제는 지속될 것이었다. 해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기로 했다. 기댈 게 없으면 얽힐 일이 없을 것이므로 완전히 독립하기로 했다. 해서 내 이름의 편의점을 냈다. 복수도 무의미함을 알았기에 내 삶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자식이야 어쩔 수 없지만 형제의 연이 굴레가 되는 건 내 세대에서 끊기로 했다. 경제적인 타격과 불안한 미래에 무방비로 노출된 기분이지만, 나중의 스트레스와 불확실성을 미리 끌어와 지금 해결하고 있다고 색각을 고쳐먹었다. 아직 불안이 남아 있지만 완전한 독립을 한 이상 적어도 과거의 이유로 더 이상 불행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가 불안감을 많이 상쇄시켜 줬다. 또 누굴 이용한다는 마음이 없으니 가볍고, 비겁하지 않고 정직하게 세상과 맞짱 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건 근성 하나뿐이므로 힘들 땐 ‘존버’ 할 자신도 있으므로 이제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안정감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학문적로 연구한 그 유투버 심리학자가 놓친 걸 확인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불행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고 다행이라 여길 수는 있다는 것과 내 인생을 리셋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적어도 삶을 재정비하고 다른 삶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위기를 맞아도 미래의 위기를 미리 맞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고전환이 그것이다. 순탄하기만 한 삶은 없다고 할 때, 그럼 적어도 나중의 불행 중 하나는 없어진 것 아닌가?


긍정적 마음가짐은 분명 사고방식도 바꾸게 했다. 넘어지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재빨리 일어나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고 그 정신력을 가지려면 일단 몸을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몸이 아프면 부정적 사고가 머리를 어지럽히고 의욕이 생기질 않기 때문이다. 해서 요즘은 11시간 근무하고 귀가하자마자 새벽 공원을 뛴다. 공원에 마련된 기구로 근력운동도 한다. 처음엔 수면시간이 부족해 고생스러웠지만 몸은 금세 적응해서 이젠 오히려 잠을 덜 자도 개운한 기분으로 깨어날 수 있다. 문득문득 미래의 불안이 엄습하지만 그땐 그 생각을 지우려 시도 때도 없이 명상을 한다. 명상으로 홀로 선 줄 알았다가 이제야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됐음을 깨닫게 됐다.


그 심리학자에게 말하고 싶다. 마음가짐은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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