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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마 Jan 11. 2021

에스프레소 칩

칩과 밤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괴로워하다가 부엌에 나와, 카운터에 선 채로 아이스크림을 막 퍼먹었다. 가지지 못한 것들만 자꾸자꾸 생각나서 눈이 매웠다. 미처 알려지지 못한 마음과 욕망에 대해서 한 바탕 소란을 떤 참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려고 노력을 할수록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돈으로도 가질 수 없는 마음을 욕망하면서 울고 싶은 기분만 들뿐이다. 커다란 다이아반지와 크리스털 목걸이를 온몸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고 이까짓 것 필요 없다며 사랑만 목놓아 부르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아이스크림만 자꾸자꾸 떠먹었다.


    차가운 걸 먹으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생각했다. 하고자 하는 일들과 해내지 못하고 있는 일들 사이에서, 나는 최초의 80만 원을 생각한다. 80만 원이 큰돈인지 적은 돈인지, 그걸로 몇 달이나 살 수 있는 건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채로, 분위기상 따라간 곱창집에서 약간은 겁먹은 채로 내 몫을 계산하던 처음을 떠올린다. 너무나 많은 도움과 감사할 일들과 행운과 우여곡절에 의해 그 80만 원이 어떻게 적금통장과 결혼식과 비행기 삯과 집과 차와 일용할 양식이 되었는지를 밤새 생각하려고 애쓴다. 기만 같은 말들과 남들의 현명함을 열심히 가려내면서.


    마음을 좀먹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들인지 공유하지 못하는 위기감인지 알쏭달쏭한 채로 새벽 네 시가 되었으므로, 나는 어제 했던 대화를, 그제 했던 대화를, 한 달 전에, 일 년 전에 했던 대화를 하나하나 찬찬히 복기한다.


    오늘까지만 이런 모양 빠지는 꼴로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내일은 정신을 부디 차려서 현금을 탈탈 털어 올해의 보험비를 내러 가야지. 에스프레소 칩이 톡톡 씹히는 커피맛 아이스크림이 단가 싶으면 쓰고 쓴가 싶으면 달았다. 에스프레소 칩을 하나씩 톡톡 씹을 때마다 새벽도 같이 톡톡 터졌다. 씁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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