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울렁증 극복
미국 소도시에 살면서 미용실에 가려면 여간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미용실에 한두 번 가보았으나 문제는 그들의 기술이 아니라 이곳의 디자이너들은 한국의 유행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무슨 사진을 들고 가든 나는 언제나 최신 유행하는 미국 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러기엔 너무나 한국 멋쟁이인 나는 셀프 커트, 셀프 염색, 셀프 탈색, 셀프 앞머리, 셀프 기타 등등을 집에서 시도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정말 이 넝마가 된 머리를 전문가의 손길에 한 번 맡겨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인 미용사를 찾아 장장 세 시간의 여정에 오른 것이다. 서울에서 삼척에 가는 것보다 삼십 분이 적고 서울에서 전주에 가는 것보다 삼십 분이 많은 시간이다. 미용실을 위한 외출 치고는 좀 거창하다. 그러므로 이 머리는 반드시 잘 되어야 했다. 일 년에 한 번 꼴로 제대로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머리이니 좀 비싸도 확실하게 하고 오리라 다짐했다. 한국에서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미용실에 자주 다닐 때에는 정중히 사양하던 클리닉도 이번엔 권한다면 받고 오리라 생각했다. 기회는 한 번뿐.
그러나 이쪽으로 앉으시라는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을 때부터 나의 미용실 울렁증은 도져버렸다. 전국의 헤어디자이너들은 어디서 단체로 눈빛이 용맹해지는 법이나 기세가 좋아지는 법을 배우고 오는 듯했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 죽는 바람에 미용실에만 들어서면 다시금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지도 몰랐다. 가방을 꼭 쥐고 지갑을 확인했다. 나는 머리만 했다 하면 가운 밑으로 지갑을 백 번쯤 확인하곤 한다. 핸드폰으로 은행 잔고도 두 번쯤 확인한다. 환불 가능한 재화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서비스를 이미 구매해놓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갑자기 지불 능력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나의 여러 가지 강박사고 중 하나다. 예상치 못한 큰돈이 머리를 하는 동안 실수로 은행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고 샴푸를 받다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흘려 결제수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였다. 다른 여러 강박사고처럼 이건 내가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생각이 아니다. 머리를 하는 내내 자동적으로 계산대 앞에서 당황하는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그럴 리 없어, 살면서 머리를 수십 번 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은 없어, 하고 정신을 집중하려는데 미용사가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게?"
"저 단발로 자르고 다시 까맣게 염색하려고요."
"사진 가져왔어?"
"앗, 네!"
나는 수줍게 핸드폰에서 태연 사진을 꺼냈다. 나는 정말 이런 순간들이 못 견디게 수치스럽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손님 이건 고데기고요" 혹은 "손님 이건 태연이고요"를 외칠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견뎌야 하는 수치도 있는 법이다. 더욱 새가슴이던 고등학생 때 나는 머리를 임수정 같은 숏컷으로 자르고 싶었지만 사진을 가져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말로 설명한 결과 동그란 바가지 머리를 하고 나오게 되었다. 두 번 다시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미용사는 사진을 흘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게 무슨 단발이야?"
나는 이때 확신했다. 이 사람 나랑 잘 안 맞겠다. 미용실 한쪽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던 성실맨도 이때 확신했다. 이 사람 쟤랑 잘 안 맞겠다. 사진 속 태연의 머리가 어깨에 겨우 닿을락 말락 한 명백한 중단발이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왜 이 사람이 아까부터 나에게 반말인지 어리둥절해졌다.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 친근감의 표시인 사람들과 나는 대체로 잘 맞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친근감의 기준을 지금 확립하기에는 이따 내 머리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지금은 서로 기분을 거슬러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그냥... 그냥 이렇게 해주세요."
"언니, 언니는 키가 커서 똑같이 잘라도 이 기장은 안 나와."
머리카락의 기장이 언제부터 상대적인 것이 되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미용사가 안된다니까 그렇게는 안 잘라줄 건가 보다 했다. 그는 내가 키가 커서 긴 머리가 어울린다며 내 머리를 쇄골에서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내려오는 기장으로 잘라놓았다. 미용실을 자주 못가 어쩌다 보니 긴 머리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산뜻한 짧은 머리가 취향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그가 너무 한국의 정세와, 임대아파트와 고급 아파트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지와, 자신이 아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사기꾼인지에 대해 너무나 열띠게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냥 말없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어디에 사는지, 미국에 왜 왔는지, 같이 온 남자 친구는 어디서 만났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남자 친구 아니에요, 남편이에요, 해도 대꾸하지 않은 그는 이내 "근데 남자 친구는 어디 갔대? 어디 갔다 온대?" 했다. 그는 칭찬인지 욕인지 잘 모르겠는 말들을 많이 했다. 이를테면 염색과 드라이까지 마치고 조금 뽕실한 머리를 하고 앉아있는 나를 거울로 보면서 "어머어머, 세상에, 까만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 원래도 큰 눈이 아주 더 커 보이네. 왕방울만하다" 라고 해서 칭찬인가 보다 하고 있으면 "근데 눈이 너무 커서 무섭다! 좀 조그맣게 뜨려고 노력해봐! 어휴! 무서워!" 하는 식이었다. 그의 단짠단짠 같은 토크에 정신이 없어진 나는 기장을 좀 더 잘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네, 마음에 들어요..."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거울 속에는 태연의 머리와는 영 다른 미디엄 헤어 레이어드 컷을 한 내가 있었다. 계산대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는데 성실맨이 "네 카드로 하게?"하고 물었다. 어차피 같은 계좌에서 나가는 돈인데 그런 건 왜 묻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응, 하고 대답하는데 미용사가 "왜, 남자 친구가 계산해주시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저희 부부예요..."
"어머, 정말? 말도 안 돼!"
돌아오는 차에서 나는 조수석에 앉아 내내 거울을 봤다.
"마음에 들어?"
"애매해..."
망한 머리라고는 절대 못하겠다. 머리는 나름대로 적당하고 단정했다. 어디 하나 눈에 띄게 모난 데가 없었다. 아마 내가 처음부터 쇄골 정도 기장에 레이어드 컷을 해주세요! 했으면 꽤 만족하면서 나왔을지도 몰랐다. 다만 이것은 내가 하려 했던 머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걸 마음에 든다고 해야 할지 안 든다고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다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새해에는 미용실에서 좀 더 요구사항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