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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마 10시간전

발톱에 고양이를 그려주세요

예쁘고 귀여운 것을 언제나 좋아해 왔다. 짧고 투명한 손톱만큼이나 보석이 잔뜩 박혀 반짝반짝한 손톱도 좋아해서 기분과 손톱 건강에 따라 오가는 편이다. 대학시절 내내 손톱이 휘황찬란한 사람들을 동경했는데 월세 내고 핸드폰 비 내고 교통카드 사면 땡이라 기쁨을 유예해 왔다. 지금이라고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고 테무에서 5-6달러면 살 수 있는 가짜손톱과 아마존에 10달러 언저리로 파는 끝내주는 네일글루를 알게 됐을 뿐이다. 잠을 못 잔 채 일을 너무 많이 하고 나면 언젠가는 꼭 파김치가 되는데, 떡진 머리로 15시간쯤 자고 나면 기분이 별로다. 성취는 다 까먹고 낙오자니 밥벌레니 스스로에게 험한 말을 퍼붓기가 쉽다. 그럴 때 손톱을 붙이는 것은 꽤 가성비가 괜찮은 기분전환이다.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일종의 공예활동이라는 면에서 그렇고, 20분 안에 완성되는 쉬운 성취라는 면에서 그렇다. 새로 붙인 귀여운 손톱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된 기분이다.


발톱은 좀 다르다. 발톱도 혼자서 할 수 있을까 해서 2달러짜리 프레스온을 사봤는데, 곡율이 안 맞아 붕 뜨고 너무 작아서 붙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맨발톱으로 다닌다. 맨발톱도 동글동글하니 귀엽다. 하지만 여름이 오면 귀여움을 추가하고 싶어 진다. 괜히 그렇다. 게다가 7월엔 내 생일이 있어서 특별히 더 귀엽고 싶다. 해서 일 년에 한두 번쯤 발톱을 꾸미러 네일숍에 간다. 네일숍에 가는 것은 미용실에 가는 것만큼 긴장되는 일이다. 그동안은 나만 할 말도 똑바로 못 하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이 긴장감이 생각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공감대라는 것을 틱톡을 보면서 알게 됐다.


어제는 핀터레스트를 보다가 발톱에 고양이를 그리고 싶어졌다. 내일모레가 생일인데 돈을 주고 귀여움을 사도 괜찮지 않을까?


샵에 들어가자마자 남자직원이 나와서 컬러팔레트를 줬다. 그걸 받아 드는데 내 손톱을 누가 했느냐고 물었다. 지금 내 손톱엔 반짝이는 게 잔뜩 박혀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기도 하고 이걸 하고서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들어서 내가 직접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허니, 잇츠 투 머치. 에이, 투 머치 투 머치.”


남자는 막 웃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가버렸다. 일대 영. 영문을 모르고 한 방 먹었다.


그가 다시 오더니 뭘 마시겠냐고 물었다. 정신을 차리려 커피가 있는지 물었다.


“유 니드 커피? 유 고 스타벅스. 노 커피 히어. 물 드릴게.”

“쏘리... 워터 이즈 굿... “


이 주변의 네일숍들은 주로 베트남 사람들이 운영한다. 베트남 사람이 아닌 테크니션은 여태껏 딱 한 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늘상 겪는 일들이 대부분의 미국인 틱톡커들의 공감대는 아닐 것 같아서이다. 이제껏 갔던 모든 샵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나의 민족적 배경을 물었다. 그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나라도 직장에 모르는 동양인이 들어오면 괜히 반갑고, 혹시 한국인은 아닐까 궁금할 테니까. 하지만 나의 한국인 됨을 가게 전체에 발표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내가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이 남자는 가게 뒤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쉬즈 코리안!”


오... 낯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몇 명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안마의자에 앉아서 맨발을 꺼내놓은 채 사람들한테 둘러싸이니 벌거벗은 느낌이다.


“유 코리안?”

“예... “

“오- 쉬즈 코리안!”


더 많은 사람들이 다가온다. 오 제발. 아직 족욕기에 발도 담그지 않았다.


“허니 유 쏘 프리티! “

“땡큐...”

“마이 걸프렌드. 어때, 내 여자친구 예쁘지? 와하하하!”


이 사람에서 이 새끼로 방금 강등당한 새끼가 부적절한 농담을 건진다. 손톱에 박힌 보석이 너무 커서 당분간 결혼반지를 낄 수가 없게 된 내 죄다, 내 죄야. 이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하하하, 어쩌죠, 전 결혼했는데” 하고 받아친다. 다음부터 다시는 남자직원에게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그냥 뭐... 어릴 때... “

“여기서 태어났어요?”

“아뇨, 한국에서...”

“근데 손톱이 너무 투머치다.”

“아, 네...”

“다음엔 여기서 와서 해요.”

“아, 네...”


너무 떠들썩하자 옆자리 손님이 관심을 가진다.


“같은 나라 사람이에요?”

“아뇨, 한국인이래요.”


집에 가고 싶다.


이미 구체적인 주문을 할 용기를 잃었을 때 직원이 내게 색깔을 다 골랐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냥 분홍색으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안의 억울함이 요만큼 소리를 냈다. 자주도 아니고 딱 일 년에 한두 번인데...! 이거 비싼데...! 돌아서는 사람을 붙잡고 용기를 쥐어짰다.


“그... 혹시 발톱에 고양이 그려줄 수 있어요...?”


서너 명이 아직 나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고 옆의 손님마저 내가 어떤 디자인을 고르나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말 같았다.


“사진 있어요?”


내가 여기서 보여주려고 사진을 미리 다운받아왔다는 사실이 더 바보 같고 창피하다. 직원이 내 핸드폰을 받아 들더니 사진을 띄워놓은 채 본인 옆에 세워두었다. 나는 핸드폰도 뺏긴 채 시선 둘 곳 없이 내 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발에 뭘 바를 때마다 그가 나에게 제품을 보여줬다.


“유 씨? 메이드 인 코리아.”

“오... 쏘 쿨...”

“이것도. 메이드 인 코리아. “

“오... 베리 굿...”

“이것도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 엄청 많죠? 와하하하.”

“아... 네... 짱이다...”


눈알만 도록도록 굴리며 앉아있기를 몇십 분, 그가 다 됐다며 내 발을 툭툭 친다. 가방을 휘뚜루마뚜루 챙겨 들고 급히 나왔다. 너무 집에 가고 싶은 나머지 가격도 확인 안 하고 팁까지 결제했다. 차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쳐다본 내 엄지발톱에는 고양이라기보단 곰돌이 같은 게 그려져 있다. 귀여우면 됐다. 내년 여름까진 다신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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