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 Dec 27. 2019

집사의 역할

고양이와 같이 살기

부모님댁에 오랫동안 맡겨두었던 고양이를 다시 데려왔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차츰 적응해서 자신이 잠을 자는 공간, 집사에게 쓰다듬을 받는 공간, 밥을 먹는 공간 등이 하나씩 정해졌다. 그리고 나와 고양이만의 시그널(이라고 믿고 싶지만 사실 고양이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이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새벽에 왜엥 거리며 나를 깨우면 내가 고양이에게 다가가 배, 귓가, 눈 두덩이, 턱 밑 등을 구석구석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이 왠 꼭두새벽에 나를 깨우나 싶었는데, 집 어느 한 구석으로 날 인도하더니 철퍼덕 배를 보이고 눕는 게 아닌가. 결국 자기를 만져달라고 4시에 날 깨운 것이다. 고양이 머릿속에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소리를 내서 인간을 깨울거야. 그리고 배를 만지라고 해야지. 기분이 좋아질거야. 이런 사고구조를 거친 행동인걸까? 그냥 본능적으로 스킨십이 고파서 응급호출을 한 것일까? 잘 자고 있던 인간을 깨워 배를 보이는 행동은 너무 뻔뻔스럽지만 또 한없이 귀여워 결국 난 충실한 집사가 된다. 고양이가 그르릉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멈출 때까지 계속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생각 없이 계속 만지다 보면 고양이는 무슨 이유에선가 뒷발로 내 손을 걷어차고 날카로운 이빨로 깨물기 시작한다. 그러면 집사는 어떻게 해야할까? 깨울 땐 언제고 5분도 안되서 꺼지라는 걸까. 하지만 그런 의문은 그냥 마음속에 묻고 고양이가 지시하는 데로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불로 기어들어가 찌그러져있으면 되는 것이다. 집사는 주인님께 토를 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 잠깐이라도 네가 좋았으면 됐어 라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에 글 쓰기 싫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