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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an 02. 2020

괜찮은 하루

공휴일이 최고다

눈을 뜨니 해가 중천이었다. 일어나기 싫어 침대에서 더 밍기적 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고, 깨보니 오후 2시였다. 소중한 휴일을 집에서만 보내는 건 좀 아깝기도 하고, 생리도 이제 끝물이라 컨디션도 괜찮으니 집을 나설 결심을 했다. 별 약속도 없는데 바깥으로 나가 하루를 보내는 건 집순이에게 흔한 일은 아니다.


 공유 자전거를 타고 스벅에 갔다. 날이 시렸는데 장갑을 끼지 않으니 손가락들이 마비가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여러 지점 중 가장 크고 층고가 높은  스벅으로 갔다. 끝내야 할 것들이 있었고, 나는 집이 아니라 좀 더 쾌적하며 낯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야심차게 나온 터라 어깨에 맨 백팩이 족히 10키로는 되었을 것이다. 전공서적같이 두껍고 무거운 책 4권에, 노트북과 충전기도 넣었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아 물통은 손에 들었다. 자전거로 온게 다행이었다.


스벅에 도착해 여기저기 둘러보다 적절한 작업대를 찾았다. 조명도 밝고, 컨센트가 있고, 너무 북적거리지 않고. 또 의자가 높으면서 다리를 편히 둘 곳이 있는 자리.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책을 보고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었으므로, 시간은 잘 갔고 난 작업에 집중했다. 어느 순간 작업만 남고 나는 슬그머니 뒤에서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읽고 쓰던 것들은 누군가의 실험결과이거나, 이론이거나, 어떤 주장들과 논리들이다.  충분히 음미하며 그것들을 요약한다. 새롭게 깨닫고 배우게 된 것들을 소화하고 기존의 지식들과 연결짓고 또 중요한 내용을 판단해 요약, 정리하는 작업은 즐겁고 흥미진진했다. 내가 자주 느끼는 삶에 대한 권태나 무의미함, 급작스런 불안감도 잠재워준다. 몰입의 순기능이겠지.


 집에선 소파 옆에 묻은 얼룩이나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털 따위가 눈에 띄어 결국 청소기를 손에 잡게 된다. 그러면 원래 하려했던 계획들은 미뤄지고 무산된다. 하지만 남의 공간에선 괜찮다. 그렇게 오늘 나는 카페 2곳을 전전하고, 글 3편 정도를 썼고, 3권의 책을 훓어보았으며 저녁으로 맛없는 돈까스를 먹었다. 2만원 정도의 돈을 썼고, 적당한 피로감이 몰려올즈음 노트북과 책들을 정리했다. 집에 오는 길엔 마을버스를 탔다. 하루가 다 가고 창 밖엔 어둠이 깔려있었다. 만족스런 공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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