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극장에 간지가 반년도 넘었다. 원래 개봉작들을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극장까지 찾아가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다. 넷플릭스나 왓챠같은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열일하는 까닭에 웬만한 작품들은 다 집에서 보게되니 말이다.
극장에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던 중 샤를리즈 테론과 마고 로비가 출연했다는 영화 소식을 들었다.
이 둘이 나오다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끌렸는데 영화 소재도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된 실제 사건을 다루었다고 하니, 여성인 나로선 당연히 극장에 가서 봐야 직성이 풀릴 것 아닌가.
바로 예매를 한 후 서울 모처에 있는 CGV를 방문했다. 오래간만에 방문한 영화관은, 당연히, 주말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대중시설이다 보니 코로나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오가는 손님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입장할 때 발열 체크도 하더라. 무증상 확진자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부분에 일단 안심된다. 서둘러 예매한 티켓을 발권하고, 콜라와 핫도그, 오징어도 샀다. 이렇게 극장이라는 공간에 와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지금 같은 시국엔 참 소중하고 감사했다. 어둠이 깔린 극장 안에 들어설 때의 설렘도 기분 좋았다. 확실히 인간은 공간적 경험이 중요한 존재다.
그렇게 예약한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몇 개의 광고를 보고 나니 영화의 막이 열렸다.
샤를리즈 테론이 처음부터 극에서 큰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하고, 니콜 키드먼이 최초의 고발자가 되며, 마고로비는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긴 하지만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가 돼서 말할 수 없지만 어느 한쪽의 편에 치우치지도,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관객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서사를 연출했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며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감성에 젖을 틈이 없었다. 누군가를 굴복하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너무나 쉽게 약자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 경악스러웠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커리어, 생계, 야망을 위해 부조리에 침묵해온 것에 좌절스러웠다.
어떤 이슈건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은 참 복잡한 존재고, 자신의 이해관계나 생존을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하고 타협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 성행위는 아주 가벼운 거래 대상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어느 정도 수위까진 '참을 수 있'는 정도 일 거다. 또 누군가에겐 일단 당장의 생계를 위해 치욕스럽지만 감내해야 하는 무엇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부조리와 착취를 침묵해서는 안 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세상은 변했고 변화는 느리지만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 모 특별시 시장의 죽음에서도 볼 수 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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