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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24. 2020

직장에서 멘탈 잡는 방법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내가 사용하는 팁


옆 자리에 앉아있던 상사가 방금 올린 기안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수정할 점을 말하기 시작한다. 


"정대리, 일정표 양식은 더 깔끔하게, 소계는 그냥 없애라. 또 사업 목적은 2줄 이내로 줄여 쓰고 세부항목을 명사형으로 다섯 가지로 정리해. 폰트 크기는 하나만 키워라. 아까 회의실에서 말한 걸 또 말하게 하냐? 상무님 결재가 나겠냐고. 그 양반 이런 거 하나에 민감하다니까."

"죄송합니다. 다시 수정할게요."

"너 지난번 대전 출장 건에서도 이랬잖아. 나한테 숙제 주냐? 대충 쓰고 나한테 던지면 뒤처리는 나보고 해라 이거냐고. 네 선에서 알아서 제대로 올리면 될 일을 왜 몇 번을 말하게 하냐?"

"..."

"빨리 올려. 올해 진급대상이라는 애가 참."


 좆같다. 그 순간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곤 피로, 긴장, 혈압, 두통, 짜증. 뱉고 싶은 말은 '시발'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정말 내가 일을 못한 거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지적이니 넘어갈 수 있다. 하나 그 지적이 반복된다면?  처리할 업무가 많은 상황에서 100% 완벽한 보고서를 만들기는 힘들다. 그래, 나는 일을 완벽히 잘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캐파가 여기 까지라면 어쩔 건데? 옆에서 옛날 일까지 들먹이면서 건드려대니 화가 난다.


  심장이 빨리 뛰면서 감정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상사의 뺨을 갈기고 싶은 마음이 들고, 퇴근하고 술을 푸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나는 다 멈추고 최대한 냉정하게 이 상황을 분석해본다. 상사도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냥 짜증이 난 거고, 그걸 풀기 위해 내 실수들을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 보고서는 지적받은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양호했다는 의미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두 가지. 같이 상사에게 휘둘릴 수도 있고,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저런 말을 듣고도 다시 평온하게 업무에 몰입하고 홀가분하게 퇴근을 준비할 수도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회사원 짬밥이 n연차를 넘어가자 이런 상황에서 나름의 대응 전략이 생겼다. 전략이라기 보단 상황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유용했다. 


1. 상사의 '에고'에 놀아나지 않는다.

 직장은 철저히 정치적인 공간이고, 자신을 앞세우고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부하직원에게 모욕적인 말이라도 하게 만드는 게 에고다. 여기가 직장이고 그의 에고가 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음을 직시하는 것이 상황을 더 가볍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상사뿐만 아니다. 옆 자리에서 계속 한숨 쉬며 자료를 찾는 동료도 그렇고, 회사 전체가 굴러가는 방식이 그렇다. 각본대로 연기하듯이 모두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건 상당 부분 사실이다. 어느 순간 이걸 통렬하게 깨닫고 나선 모진 말을 듣거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도 마인드 컨트롤이 더 수월해졌다.



2. 업무에서 몰입의 즐거움을 찾는다.

  이 방법은

       A. 직장 내에서 어느 정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들이 이미 있을 때 실행하기 수월하다.

       B. 일이 생리적 차원에서 거부감이 든다면 힘들다. 


 사내 관계도 나쁘지 않고 (매우 좋을 필요까지도 없다) 일도 그럭저럭 재미를 붙일 수 있다면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일에 온전히 빠져드는 것이다. 집중해서 업무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있고, 또 회의다 뭐다 불려 다닌 후 다시 자리에 와서 몰입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된다. 예전 직장에서 난 주로 이메일로 거래처를 관리하고, 매출을 정리하고, 영업 목표와 실적 관리 등을 했었다. 이메일을 쓸 때는 간결하고 논리적이게, 필요한 세부사항과 자료들을 정리해서 보내는 데 이 업무를 할 때의 몰입도가 가장 좋았다. 숫자에 약한 난 매출 관련 정리를 할 때 집중력이 제일 떨어졌었다. 시간이 좀 지나 엑셀 함수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내 거래처들의 분기 매출을 정확하게 암기하기 시작할 때 조금씩 재미를 붙였다. 그러나 역시 이메일 쓰기보다는 덜 재미있었다. 하지만 일터에선 일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걱정일랑 일단 접어두고, 업무에 최대한 스스로를 몰입시켜보자. 메신저도 끄고, 스마트폰도 치워두고.



3. 퇴사 계획을 세운다.

 직장 스트레스를 날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A. 퇴사 D-day를 정하는 것과,

 B. 그때까지 준비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과,

 C. 그 계획을 퇴근 후 하나씩 실행해나가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1번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다. 나는 이 각본을 버리고 다른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지금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직장 내의 모든 짜증 스트레스를 최소 30% 정도는 경감시켜준다. 만약 지금 직장이 힘들다면, 관둬야지 말만 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실제로 이 방법을  매일 퇴사를 외치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실행하고 있는데, 덕분에 심리적으로 많이 편안해져서 퇴사일을 예상보다 몇 개월 늦추게 된 케이스가 나오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나보다 오래 한 분들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보다 더 신통한 '버티기 전략'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나에겐 이 방법들이 다른 어떤 힐링 에세이나 만족스러운 취미 생활보다 큰 도움이 되어 공유해본다.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운 모든 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길! 

  



헤더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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