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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18. 2020

사라진 월요병

어떤 일요일 오후에

월요병은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그날은 일요일, 때는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나와 그의 표정은 이미 굳어있었다. 집 안에서 멍하니 유튜브나 보며 누워있고 싶었지만 이러다간 둘 다 우울한 채로 월요일을 맞게 될 것 같아 귀찮아하는 그를 다독여 나갈 채비를 했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시원한 바람이 청량했다. 꼈던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공원을 향해 걸었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한 걸음씩 옮기는 것 자체로 이미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한적한 단지 안과는 다르게 공원에는 선글라스 낀 아주머니, 나시 입고 뛰는 아저씨, 자전거 타는 어린이들, 강아지와 함께 산책에 끌려 나온 주민들이 있었다. 주말을 몇 시간 안 남겨둔 아쉬움을 산책으로 달래 보려는 사람들이 그곳에도 있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걷다 보니 어쩌다 5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마트에 가는 게 목표가 되었다. 잡동사니 수납 문제가 늘 마음속의 짐처럼 우리를 갉아먹던 차에 마트에 가서 각종 수납장을 사는 것에 의견 합의를 보았다. 꽤 북적이는 공원의 인파를 뚫고 계속 걸어 나갔다. 산책로 한가운데 있는 잔디밭에 웬 길고양이가 대자로 뻗어 혼자 뒹굴거리고 있었다. 한껏 여유로운 모습이 신통하여 가까이 가보니 왼쪽 눈에 염증이 나 있었다. 덩치가 작은 편이라 품에 안아서 동네 동물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요령을 부려 팔 안 춤으로 안아도 몸부림이 심하고 계속 할퀴려고 해서 포기하고 놓아줬다.  산책로에는 강아지들도 많이 있었다. 걷다 보면 다양한 품종, 크기, 성격을 가진 개들이 계속 나타났다. 어, 작고 하얀 몰티즈야 너무 귀엽다. 장모의 래브라도네. 여름엔 더워서 고생이 많겠다,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 걸어 나갔다. 일단 밖에 나오면 세상엔 귀엽고 재미있는 게 많이 있었다.


  어느새 마트에 도착해서 필요한 수납장을 샀다. 마트 영업이 일찍 종료되어 다른 쇼핑은 할 수 없었고, 우리는 큰 수납장을 양손에 쥐고는 마트 옆 식당으로 가 판모밀과 손만두 한 접시를 먹었다. 그리고 덩치 큰 짐을 다시 챙겨서 한적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는 수납장을 선반에 배치하고 옷방에 흩어져 있던 옷, 양말, 속옷 들을 분류해서 집어넣었다. 한결 깔끔해진 옷방을 보며 뿌듯했다. 월요병은 어느새 어디론가 기척 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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