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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Feb 10. 2016

[트래블in가회동] 구정연휴 한옥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다

서울여행 즐기기 #1-한옥스테이로 추억의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보자

 전 국민의 대이동, 구정.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사람들이 떠나고 텅 빈 서울의 가회동 한옥마을. 차량 3대를 타고 도착한 3대 가족이 한옥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집 구경이었다.  

 구정 다음날 하루를 보낸 한옥은 몇 년 전까지 남자아이 셋을 키우던 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아이들이 쿵쾅쿵쾅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서울 곳곳의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 집이 마음에 들어서, 덜컥 구매를 하고 한옥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좀 커서 다른 곳에 살면서 이곳은 가족 손님들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한 가족이 오손도손 즐겁게 살았던 추억이 깃든 집이라 그런지 집안에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집도 희한하게 사람이 살면서 정성껏 가꾼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은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포근함이 다르다. 근데 이 한옥은 정말 집 같았다. 잠시 객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주인집 식구들이 깨끗이 치워놓고 자리를 비워준 것 같은 느낌?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진 공간을 다 빌려서 우리 식구가 머물기로 했다. 사랑채 뒤편 후원은 자그마한 공간인데, 예전에 이 집에 사시던 할머님께서 60여 년 전에 시집을 오셔서 직접 심은 단풍나무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하늘로 곧게 솟지 않고, 할머님의 굽은 허리처럼 나무가 담벼락을 넘어 기울어 자라고 있어, 그 부분만 담벼락을 낮게 파내렸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은 일부러 주인이 빗질을 하지 않아도, 신기하게도 바람이 불면 저절로 지붕 처마 밑에 곱게 쌓인다. 주인 부부가 따로 빗자루질을 할 필요가 없이 겨울인 지금도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소담히 공기를 담아 쌓여 있다고 한다. 가끔씩 부는 잔 바람에 낙엽 더미가 숨 쉬듯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 나름 운치가 있다.


 얼른 외관 구경을 마치고, 다들 안방으로 자리 잡았다. 우선 부모님께 구정 세배를 드리고 온 가족이 덕담을 나누고 방배치를 했다. 네 가구가 모였더니, 안채-사랑채 4개의 방인데도 부족하다. 조카 놈들이 모두 같이 자겠다고 성화를 부려서 지하 TV 방과 사랑채 마루에도 자리를 깔기로 했다.

 '그래 어디 이집 아들 셋만 뛰어놀고 싶을까, 우리 집안 초등학생 개구쟁이 4명도 오랜만에 어른들한테 잔소리 듣지 않고 맘껏 뛰어놀게 내버려 두자'. 그랬더니, 이놈들이 다다다 집안을 휘젓고 다니면서 자기들이 놀 아지트를 찾아 점령하기 시작한다. 계단 턱이 없어서 부모님께는 안채가 아닌 사랑채를 내어드리고, 아이들은 모두 다락방이 붙어 있는 안방으로 몰아넣었다. 다락방!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이모집에 저런 공간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옆집 살던 친구네 집 안방에도 다락방이 붙어 있어 미닫이문을 열면 좁디좁은 나무 계단을 발로 딛고 올라서서 허리를 다 펼 수도 없는 낮은 천장이 있는 이 공간에서 매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두던 창고 같은 공간은 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였다. 어른들은 먼지도 많은데 왜 굳이 거기에 있냐고 내려오라고 성화셨지만, 천장이 야트막하고 낮아서 웬만하면 올라오지 않고 안방에서 어서 내려오라고만 하시는 어른들 말씀에 우린 그냥 버티기 작전으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인형놀이도 다락방에서 했고, 보물도 다락방에 숨겨놨었다. 조카 놈들에게도 이 공간은 똑같은가 보다. 굳이 넓은 마루와 부엌, 방을 내버려 두고 비좁은 다락방에 네 명이 다 올라가서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책도 읽고,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내려오지 않을 기세다.  


 다락방의 쪽창문은 부엌으로 나 있다. 머리 하나 간신히 내밀 수 있는 공간의 창을 열면 바로 부엌이다. 명절이라고 갈비찜, 각종 나물과 전, 김치에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저녁 준비를 하는데, 이놈들이 다락방에서 쪽창문으로 고개만 달랑 내놓고는 장난질들이다. 내심 떨어질까 봐 걱정인데, 말을도 듣지 않고 까르르 저희들끼리 좋단다.


 집안 가득 음식 냄새가 가득하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웃는 소리가 시끄럽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예쁜 집 망가질까 여기저기서 어른들이 "이놈들!"하면서 단속에 나서기 시작한다. 아파트나 여기나 애들이 맘 놓고 뛰어놀 데는 아닌가 보다. 부모님께서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집안에 모여서 큰 상을 여러 개 붙여 놓고 함께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에 마냥 흡족해하신다. 소란스럽고 북적거림 속에 자식들 손주들이 다 한눈에 들어오니 집이 사람 사는 것 같은지 피곤해하시면서도 부모님 얼굴이 밝다.


 집안 여기저기를 만져보시고 짚어보시더니, 집 관리가 참 잘 되었다고 아버진 어린 시절 살던 시골 얘기를 꺼내신다. 그 당시에 초가집이었는데, 동네에서 그래도 백석꾼 정도는 되어서 제대로 지은 좋은 집이었다고. 그런데 그 동네에 딱 한군데 집이 이렇게 나무로 제대로 만든 한옥이었는데, 그 집이 천석꾼 집이었다고 한다. '항상 아버진 우리 집이 동네 제일 가는 부잣집이었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아니었구나.' 속으로 우리 집 역사의 팩트 하나를 수정하고, 또 그렇게 집 탐방을 계속했다.

 예전 집을 살기 편하게 리노베이션을 대대적으로 한 집은 웃풍이 들지 않게 이중, 삼중 창과 겹문으로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운치 있는 조각을 한 유리와 격자 나무 창틀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면 안채에서는 사랑채가, 사랑채에서는 안채 툇마루가 보인다. 'ㄷ' 자 형태의 한옥은 똑바로 걸어가다 보면 꺾어지고, 꺾어져 가다 보면 다락방으로 올라가고 지하방으로 내려가고, 굴곡과 변곡이 함께 자리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손자국이 선명하게 날 듯해서 손을 대기 미안한 새하얀 창호지를 댄 창문을 열면 또 다른 공간이 이어진다. 끊어질 듯 하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어지고 연결되는 공간을 탐험하다 보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손바닥만 한 이 네모반듯한 공간에 뭐 이렇게 많은 공간들이 숨겨져 접혀 있는지 참 신기하다.      

 한옥이 아무리 좋아도 가회동 하룻밤을 집안에서만 보낼 수 없다. 식사 후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자 온 식구가 같이 가회동 투어를 간다. 최근 감기로 기력이 좀 빠진 어머니만 사랑채에 자리를 깔고 좀 누워 쉬고 싶다고 해서, 나는 남기로 했다. 덕분에 식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와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또 한옥 여기저기를 기웃기웃하면서 지하 TV 실 책장에 있는 책도 한 권 가지고 올라와서 읽기 시작했다. 한참 있다 삐거덕하는 소리와 함께 식구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역시 뛰기 좋아하는 조카 놈들이 일착으로 들어오고 어른들이 뒤를 이어 하나둘 집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우리 집처럼 대문 문간에서 문 활짝 열고 어서 오라고, 추우니까 빨리 들어오라고 마중을 한다. 방금 밥을 먹었는데, 돌아오는 식구들 손엔 또 바리바리 간식거리가 잔뜩이다. 하룻밤만 자고 가는 건데 이 음식들을 언제 다 먹으려고 하는 건지... 그렇게 또 도란도란 부엌과 사랑방 마루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번엔 아이들만 놓고 집으로 돌아가 자기로 한 오빠를 마중하러 식구들이 다 일어났다. 밤 마실이다. 가회동 길 언덕길을 내려가 인사동까지 걸어가서 오빠를 택시 태워 보내고, 우리는 삼청동으로 해서 돌길을 타고 언덕을 올라 북촌 8경을 하나씩 거쳐 가회동으로 내려간다. 북촌 언덕 꼭대기에 서보니, 저 멀리 팔각정을 끼고 성곽길에 불빛이 굽이굽이 보이고, 아래로는 삼청동 상점들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불빛을 발한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처마를 달고 있는 한옥집들 고즈넉한 골목 사이로 작지만 나름 뾰족하게 침을 세우고 형광빛을 발하는 남산타워도 그저 예뻐 보인다.

 고개를 숙였더니 돌계단 밑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봉지 하나 흔들면서 터벅터벅 가로등 불에 의지해서 집으로 걸어가는 사람도 보이고, 고개를 들었더니 총총 빛나는 별이 간간이 보이는 밤하늘에 연결된 돌계단 위 한옥들 사이로 가로등 불 하나가 밝게 빛을 발하고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손에도 봉지 하나 들고 있는 건 아닌가?'하고 손을 쳐다본다.

 골목골목 돌고 돌아 다시 찾은 가회동 한옥 우리 집. 오늘 밤만큼은 이 집이 우리 집이다. 골목안 우리 집 대문이 보이자 마음이 설렌다. 문 열고 들어서는 데, 식구들 들어올 때 어둡지 말라고 켜놓은 불빛이 따뜻해서, "저희 왔어요~!"하고 저녁이라 조용해야 하는데도, 소리 내 말하면서 따뜻한 온기와 불빛이 반갑게 맞이하는 부엌으로 들어선다.

 떠나야 하는 아침이 아쉬워, 새벽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혼자 부엌에 앉았다. 맨발에 뜨끈뜨끈한 부엌 바닥이 주는 온기가 좋다. 부엌에서 마당으로 난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쌀쌀한 바깥공기가 훅하고 들어온다. 카메라만 창문 바깥으로 내밀어 사진 한 장 찍고, 식구들 다 잘 자고 있는지 살펴 본 다음, 아이들이 자고 있는 안방으로 가본다. 역시나 밤새 이불을 다 차버리고 베개는 저 멀리 날려버린 아이들의 이불을 만져준 다음, 살짝 다락방 문을 열어본다. 그리고 책 한 권 들고 다락방에 몸을 수그리고 들어가 계단을 올라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깰까 봐 약한 불 하나 켜놓고, 오른쪽 작은 창 하나를 통해 새어들어오는 새벽빛에 의지해서 조용히 책을 읽어봤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번 구정 여행은 가족과 함께 서울 가회동 한옥에 머물면서 우리 가족 모두 "그때 그 시절 "로 돌아간 것 같은 여행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지금 이 시간 "이겠지만... 어쨌든 가족 모두 만족한 한옥 여행. 다음번 우리 가족 여행도 만장일치 한옥으로 정해졌다.




선음재:

1934년에 지어진 한옥을 리모델한 숙소로  제26회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침실은 총 4개. 안채에는 대청, 누마루, 지하 TV룸과 아이들을 위한 다락방이 있다. 사랑채는 대청, 누마루, 아담한 후원 외에도 창문을 열면 부엌처마와 하늘이 보이는 욕조가 있는 욕실이 좋다. 안채, 사랑채 따로 묵을 수도 있고, 전체를 대여할 수도 있다. 가회동 골목에 자리잡고 있어서 하룻밤 머물면서 삼청동, 북촌 등을 걸어서 산책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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