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것을 하면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도 하기 싫은 일을 먼저 끝내고 하느냐 아니냐는 너무 다르다.
하기 싫은 일을 먼저 끝낸 후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서 그 후에 시간들이 보너스 시간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휴식이라는 생각이 들고 즐겁게 다른 일에 임할 수 있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미루고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괜히 마음이 무겁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할 일을 미루고 다른 것을 하는 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고 죄의식마저 든다.
이것을 알면서도 나의 미루기는 계속되었다. 도대체 왜 자꾸 미룰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 나의 미루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할 일을 실제보다 크고 어렵게 생각한다.
2. 뭔가를 하려면 그것을 위한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위 말해서 각 잡고 해야 한다고 여긴다. 좀 더 비약하자면 그것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안 하느니 못하다는 착각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3. 잘하려는 욕심 때문에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잘하려고 하다 보면 정말 끝이 없다. 그래서 수행하는데 굉장히 많은 공수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작이 두려운 것이다.
4. 너무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5.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기가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우울감이 생기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한 마음에 늦게 자게 된다. 결국 수면 패턴이 무너지고 피로감이 쌓여서 더 미루게 되는 슈퍼 악순환이 탄생한다.
이러한 추측과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판단했다. 그런데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이라니? 도저히 읽지 않고서 넘어갈 수 없는 제목의 책이다. 심지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미루기'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미루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케이스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각 케이스에 맞는 적절한 처방도 내려준다.
미루기로 인해서 늘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미루기를 자행한 후 내 나름대로 정리한 처방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셀프 처방은 다음과 같다.
1. 할 일에 대한 시간을 정하자.
2. 달성 가능한 작은 단위의 목표를 세우자.
3. 실제로 일한 시간을 측정하자.
4.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한 후에는 편히 쉬자.
놀랍게도 책에서 제시하는 처방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도입부에서 작은 과제를 준다. 미루기 극복을 위한 첫 단계로 이 책을 완독 하고 싶은 이유 세 가지를 적으라는 것이다. 왜냐면 미루는 사람은 보통 책을 읽고자 했던 동기를 중간에 잃기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세 가지 이유를 종이에 적고 책갈피로 사용했다.
1. 미루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2. 미루기를 떨쳐내려고
3.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사람은 누구나 종류만 다를 뿐 미루기를 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미루기에 대한 이유는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감정의 문제이다. 미루는 것이 시간 관리나 자제력이 부족하거나 게으른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떠올릴 때 우리는 압박감, 지루함, 무력감, 부담감 등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 감정을 피하거나 막기 위한 방법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렇게 미뤄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며 얻은 안정감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추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다시 미루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우울증, 불안장애, ADHD, 완벽주의, 가면 증후군 등의 심리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각 케이스에 따른 미루기 원인을 살펴보고 가장 효과적인 미루기 극복 방법도 다룬다.
미루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비판과 정신적 고통이 생기는 순간부터라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책에서 명쾌하게 말해주니 더욱 좋았다. 해결하는 것에 적절한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희망 때문이다.
내가 미루는 이유의 첫 번째 항목인 '할 일을 실제보다 크고 어렵게 생각한다.'라는 말에 포함되는 것에는 시간도 있다. 실제로 집중해서 하면 1시간에 끝날 일도 3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식으로 큰 일로 생각한다. 이것 역시 책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시간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뇌는 시간을 가늠하는데 소질이 없다고 한다. 과하든 모자라든 미루기의 원인이 된다. 모자라는 경우는 10분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과소 평가하며 미루다가 마감 시간 10분 전에 시작하여 결국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항목에 관해서는 목표를 반드시 이루고 싶다면 시기가 적절하지 않더라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할 일을 하기 위해 무한정 여유가 주어지는 시기는 없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완벽한 타이밍은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미루기에 대한 오해 중 내가 미룬다고 해서 피해 볼 사람은 없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함께 생활하는 사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집안일을 미루거나 미루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민함을 발산하게 된다. 그래서 미루기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의 피상담자 중 다수가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이러한 성향의 미루기가 위험한 것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실수를 과하게 염려하고, 일을 잘 처리했을 때에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불안감과 우울감이 생길 수 있고, 미루는 습관이 악화할 수도 있다. 또 완벽주의자들은 얼토당토않은 기준을 세워 놓고 일을 미루기 때문에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과 미뤄서 일을 망친 것에 대한 자기비판을 한다. 나의 미루기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유를 섞은 것과 흡사하다.
미루기를 극복하는데 '일단 해!'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전에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증명된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루기를 극복하려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책에서 소개한 미루기 극복 전략 중에 나에게 도입이 시급한 것 중 하나는 자기 자비를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비판하는 바로 그 순간, 나의 친구나 자녀, 심지어 반려견이 같은 문제를 겪을 때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고 싶은지 떠올리는 것이다. 아마 스스로를 모질게 비판하는 것과 다르게 상냥하게 말할 것 같다.
공감이 된 또 다른 전략은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려면 다섯 가지 기준을 맞춰야 한다. 구체적일 것, 측정 가능할 것, 달성 가능한 목표일 것, 관련성을 지닐 것, 기한을 정할 것. 앞서 나의 셀프 처방과 놀랍게 일치한다고 했던 부분이다. 측정 가능한 것은 실제로 일한 시간을 측정하자와 일맥상통한다. 달성 가능한 목표일 것은 달성 가능한 작은 단위의 목표를 세우자는 것과 같다. 기한을 정할 것은 할 일에 대한 시간을 정하자는 것과 유사하다.
미루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생산성을 해치는 장애물을 최대한 많이 파악하고 접근을 막아 버려야 한다. 가령 집보다 카페에서 더 집중이 잘 된다면 일정 시간 카페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쓸모없는 생각을 포착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내가 미루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에 말도 안 되는 오류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가령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가설을 내놓는다면 그 증거를 나열해 본다. 오늘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고 업무량이 많아서 그렇다. 그러면 그 가설에 반박을 해본다. 책은 10페이지만 읽으면 되는데 1시간이면 될 것 같고 앞으로 1시간 내에 잘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피로를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과업을 수행한 경험이 많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피곤하긴 한데 책을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로를 극복하고 이뤄낸 경험이 있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피곤해서 할 수 없다는 말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 오류가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자신과의 대화로 난관을 극복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막힘이 있다면 자신이 아는 지식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소리를 내어 자신과 대화하면 우리 뇌는 흩어진 정보 조각을 이어 붙여 막힌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타인에게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해결책이 떠오르는 경험과 아주 비슷하다. 특히 프로그래머라면 이런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완벽주의가 미루지 않고 시작하는 것을 넘어서 꾸준함을 유지하는 방법에 "이만하면 됐다." 전략이 좋다고 한다. 완벽에 대한 추구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완벽을 원하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하자.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다. 말 그대로 '됐다'는 뜻이다. 물론 그 기준은 목표에 따라 다르겠지만 완벽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미루기 원인에 따른 다양한 맞춤 해결책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빠르게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과업을 최종 목표와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헬스장에 가겠다.'라는 과업이 있다면 이때 목표가 단순히 헬스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표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헬스장에 가면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며, 건강해진다. 그러면 결국 업무 능률도 오르고 업무 평가도 좋게 받게 된다. 그러면 연봉이 오르고 경제적인 상황도 나아진다. 건강을 챙겨서 더 오래 살게 되는데 경제적인 환경도 좋아져 행복하게 오래 살게 된다. 그러면 헬스장에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과업처럼 느껴지고 그것으로 인해 위대한 결과가 이뤄진다는 생각에 더욱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완독 하고 싶은 이유 세 가지를 모두 달성했다. 미루기는 이유는 감정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미루기를 떨쳐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전략 이미 스스로 셀프 처방을 내린 것이 대다수 유효했다. 그 처방을 좀 더 성실하게 따를 동기부여도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하게 미루기로 고민 중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이렇게 이 글을 썼다. 미루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