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관찰자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자.
초등학교 때다. 주번은 급식소에서 수령한 무거운 물통을 교실로 옮겨야 했다. 2인 1조의 업무였다. 그때 나와 함께 했던 몇몇 친구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다른 한 명, 그러니까 내가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이러한 얌체는 공동 작업에서 종종 등장한다.
교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청소 당번 그룹이 있었지만, 그룹 내 모든 사람이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늘 열심히 청소하는 친구들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 요령을 피우는 친구도, 열심히 하는 친구도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그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일 때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볼 때 누군가는 스스로 단역을 자처하는 셈이다.
교실 청소가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청소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빠르게 청소를 끝내면 빠르게 하교할 수 있다. 하교를 방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고구마 100개 먹은 듯 답답함을 유발하는 빌런인가? 빌런이라고 해줄 것까지도 없다. 거대한 메인 스토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역일 뿐이다. 관객들은 그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열심히 미션을 수행하는 톰 크루즈에 눈길을 준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톰 크루즈가 될 수 있다니! 이보다 쉽고 확실한 로또 당첨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