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력에 의심이 들 때면

스키를 타며 배운 것

by 송광용

난 스키를 배우면서 깨달았다.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속도를 제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처음 스키를 배우면 A자 자세를 배운다. 가속도가 붙으면 다리를 A자 모양으로 벌리면서 스키의 마찰력을 키워 속도를 줄인다. 이 초보적인 스킬은 속도 제어에 한계가 있다. 경사면이 가파른 곳에서 A자 스킬을 쓰면 질질 끌려 내려오게 된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급기야 넘어지는 게 제일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스키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


A자 다음 단계인 11자 턴을 배우면서 스키 타기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11자로 내려가는 동안 마찰은 최소화되고 가속도가 붙는다. 그렇게 속도를 살려서 가다가 S자를 그리며 턴을 한다. 그 순간 속도가 확 줄어든다. 속도는 통제 가능해진다.


스키 중급 수업을 통해 11자 턴을 배웠지만 그걸 내 몸에 새겨 넣기 위해서 계속 높은 곳으로 올랐다.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다보면 두려움이 울렁였지만, 결국 두려움을 없애는 길은 그것과 대면하여 넘어서는 것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밤이 되었을 때 쉬겠다는 수강생들을 뒤로하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기어이 경사를 오르곤 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녹초가 될 때까지 슬로프를 오르내렸다. 그걸 극복해야 진짜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파른 경사면에서 속도를 즐기며 내려오는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속도를 온전히 즐긴다는 얘기는, 내가 원할 때 속도를 완벽히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속도와 경사가 두려웠을 때, 내 실력이 어정쩡했을 때, 중급자 코스 정도만 만족했더라면, 속도감을 만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내 능력에 의심이 들 때, 이상하게도 난 스키장을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기술이 몸에 익지 않아 안간힘을 쓴 하루를 뒤로 하고, 욱신거리는 몸을 다시 일으켜 경사를 오르던 밤의 스키장을 말이다. 어쩌면 내가 마주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걸 넘어서지 않는 한, 속도를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계속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결국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기술을, 경사에서 속도를 제어하는 기술을 익혀야 할 것이다.


난 두려움을 느끼는 많은 일에서, 스키 속도를 제어하는 것처럼 익혀야 할 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갑자기 글쓰기가 자신 없어질 때,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내 뜻과 상관없이 해야 할 때,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노곤한 몸을 일으켜 올라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생각한다. 그렇게 이 악물고 시도하면 무슨 일이든, 즐길 수 있을 정도까진 익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스키 타기가 준 환상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난 내 경험과 노력이 작은 보증처럼 빛나는 환상이다.


이따금, 경사는 없지만 불안에 떠는 내게, 눈밭을 구를 일은 없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내게, 나는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리프트에 몸을 싣고 슬로프를 오르라고. 두려운 그 일을 꺼내서 하라고. 미숙한 실력을 한탄하고 싶어질 때면, 바로 그 일을 꺼내보라고. 언젠가 속도를 제어하고 즐길 수 있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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